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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보면 우리가 정말 외국어를 참 많이 쓰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외국어는 버스, 컴퓨터, 피아노처럼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네이버 국어사전)를 의미하는 외래어와는 구별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용어를 정리하고 넘어가자. 앞에서 설명한 외래어와 외국어가 있는데, 외래어는 라디오, 텔레비전, 커피처럼 우리말로 대체할 말이 없어서 아예 외국어를 그대로 우리말처럼 사용하는 것을 이른다. 외국어는 우리말로 대체가 가능한 경우이다. 스커트를 치마로, 뮤직을 음악으로 대체 가능하다.

아무튼 요즘엔 이런 외국어를 쓰지 않고서는 생활은 물론이거니와 글을 쓰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우리말 속에 외래어를 포함한 외국어가 너무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한자어를 포함해 우리말의 70%가 외래어라는 얘기도 있다. 한자어를 뺀 외래어는 5% 정도 된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 말 속에서 외래어·외국어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한자어권이라는 점과 일본 식민지의 영향, 그리고 글로벌 시대에 따라 서양의 말이 그대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글을 쓸 때 외래어는 달리 대체할 말이 없으므로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외국어 사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첫 번째 답은 당연히 우리말로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외국어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고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공자 말씀을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나친 우리말화는 전달하려는 의미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거슬린다. 북한 축구 중계에서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표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말한다는 얘기도 들어봤을 것이다. 어떤가. 그 의미가 확 와 닿는가.

물론 말글살이라는 게 오래 사용하여 토착어가 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긴 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백번 양보해서 이해해도 아닌 건 아니다.

언어란 원래 언어로 얘기될 때 그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사실 여기서 '느낌'을 '뉘앙스'라는 말로 대체하면 어떨까. '느낌'이 어감이란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는 '뉘앙스'를 대체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외국어는 필요하다면 써야 한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의식하며 외국어를 안 쓰려고 하는 과정에서 되레 문장이 뒤틀리기 쉽다. 나아가 의미 전달이 꼬이기도 한다.

다만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남용이다. 뭐든 지나치면 해롭다는 것은 상식이다. 외국어 사용 역시 꼭 필요한 경우에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말로 써도 되는데 굳이 외국어를 쓰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외국어를 섞어서 표현하면 뭔가 있어 보이고 유식해 보인다는 의식의 발로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외래어를 어떻게 써야 할까.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외래어 표기 원칙을 보면, "외국어의 발음을 될 수 있는 대로 살리는 원지음주의 입장에서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외래어 표기 원칙을 보면 무척 복잡하게 설명되어 있다).

문제는 원지음에 가깝게 표기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빠리'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어느 것을 따라야 할까. 답은 한글맞춤법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파리이다(외래어 표기 원칙에 경음과 격음을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일부 출판사의 경우 원지음을 중시하여 빠리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자장면처럼 실제 생활에서 쓰이는 '짜장면'을 표준어 표기로 복수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외국어를 사용할 때 남용하지 말자는 얘기다. 가령 "나는 오늘 아침 미팅에서 그 비즈니스 파트너를 컨택해서 반드시 컨펌받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는 말처럼 쓰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나는 오늘 아침 회의에서 그 사업 협력사를 접촉해서 반드시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라고 써도 무방하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어가 입에 배어서 그대로 글쓰기에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에서 예로 들었던 '얼음보숭이'처럼 억지스럽게 쓸 필요는 없지만 가능하면 우리말로 하는 것이 그 의미를 전달하는데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의식은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말에 더 최적화되어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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