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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책표지.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책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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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카메라를 가지게 된 2005년 가을부터 한동안,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카메라에 담고 말겠다는 기세로 눈에 보이는 것 무엇이든 찍어대곤 했다.

그동안 무심코 먹어왔던 짜장면 한 그릇, 국밥 한 그릇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식당에서 찍은 사진들을 훑어보던 어느 날 그동안 별 다른 생각 없이 마주하곤 하던 스테인리스 밥공기가 새삼스럽게 보였다.

나머지 반찬들을 어떤 그릇들에 담았든 상관없이, 그리고 어떤 종류의 음식(점)이든 상관없이  밥만큼은 어김없이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있곤 했다. '밥은 어떤 일이 있어도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담아야 한다'는 철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혀 이질적인 소재임에도 매우 자연스러운 어울림에 스테인리스 밥공기의 폭 넓은 사용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음식들이 까만색 도자기 그릇에 담겨 나와도 밥만큼은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담아 나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끼니 해결보다 술이 목적인 음식점이나 접시에 덮밥 같은 형태로 제공되는 중식당에서도 스테인리스 밥공기는 매우 유용하게 쓰이는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궁금했다. 우리 대중음식점들은 언제부터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애용해 왔을까. 사회적 어떤 흐름이나 사용자의 필요에 의한 일종의 유행 같은 현상일까. 아니면 일반인인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까. 음식인문학자 주영하가 지은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휴머니스트 펴냄)에 그 이유가 등장해 흥미롭게 읽었다.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한식 음식점에서는 스텐 밥공기가 필수품처럼 확산되었다. 그 당시 식량 수급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찾던 정부 관료들은 음식점의 스텐 밥공기에 주목했다. 스텐 밥공기를 쌀밥의 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1973년 1월, 대통령이 임명한 서울시장은 표준식단을 제시하고 시범대중식당을 정한 후 밥을 반드시 돌솥밥이 아닌 공기에 담아 먹도록 적극 계몽에 나섰다. 당시 서울시에서 제시한 스텐 밥공기의 크기는 내면 지름 11.5cm,높이 7.5cm였다. 그러나 이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는 업주들은 아주 드물었다. 그러자 중앙정부에서는 1974년 12월 4일부터 음식점에서 돌솥밥 판매를 금지하고 스텐 밥공기에만 밥을 담도록 행정 명령을 발동했다.

그 뒤 1976년 6월 29일 서울시에서는 7월 13일부터 음식점에서 스텐 밥공기에만 밥을 담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요식협회에 시달했다. 스텐 밥공기의 규격을 내면 지름 10.5cm, 높이 6cm로 정하고, 이 그릇의 5분의 4 정도 밥을 담도록 한 것이다. 만약 서울시 소재 음식점에서 이 규정을 위반하면 1회 위반에 1개월 영업정지, 2회 위반에 허가 취소의 행정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이후 보건사회부에서는 1981년 1월부터 과거 1976년 7월 13일 서울시에서 규정했던 스텐 밥공기의 규격을 전국으로 확대·적용하는 행정조치를 내놓았다. (…)그것이 21세기의 초입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7~199.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을 때는 '한꺼번에 많은 밥을 해놓을 수 있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삶을 수도 있어 위생적인데다가 이가 나가거나 깨지지도 않아 실용적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는 식당의 밥그릇으로 여러모로 매우 적합한 그릇이다?' 정도로 추측하곤 했다.

우리나라 대중음식점들이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애용한 것이 스테인리스 그릇만의 장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식량난 해결책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이유로 밥공기가 작아진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 대부분의 한식점에서는 1981년 보사부 권장 규격인(내면 지름 10.5cm, 높이 6cm)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조금 적은 '내면 지름 9.5cm, 높이 5.5cm' 크기의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사용하는 집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탄수화물을 적게 먹어야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2012년부터 생산, 보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30년 넘게 한식과 거리가 좀 있는 중식당을 운영해오고 있는 우리 언니는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얼마나 애용할까?

"(밥을) 어차피 난 다 먹을 수 없어서 그동안 네 형부한테 반절 덜어주고 먹곤 했거든. 그런데 언제부턴가 반절까지 덜어주기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거야. 나이 들어가면서 먹는 양이 줄었는데도. 그래서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좀 작아진 것 같기도 하더라. 그러다가 어떤 집에 갔는데, 크기가 다른 밥공기로 주는 거야. 남자라고 더 큰 것을 준 거지. 물어보니까 어느 날 요식협회에서 나눠주며 권장했다는 거야. 그 이야기 듣기 전까지 식당에서 재료 줄이려고 그러나 보다 하기도 했거든. 그런데 아니었던 거지. 솔직히 여자들이야 좀 덜 먹으니 상관없겠지만, 남자들은 좀 적은 양이다 싶어 아쉽긴 해."(중식당 운영하는 큰 언니)

모르면 알려도 줄 겸 물어보니 "스테인리스 밥공기 자체로 손님에게 제공되진 않지만 짜장 볶음밥 등을 할 때 양을 쟤는 데 좋고, 한꺼번에 많이 해놓을 수 있어서 좋다"는 말 끝에 이처럼 말한다.

남편도 예전에 몇 번 "공기밥이 많이 적어진 것 같다"고 이상해 한적이 있다. 밥공기 하나를 다 먹지 않는 편이라 크게 실감하지 못했는데 남편이 그리 느끼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백반 음식점에서는 1981년 규격의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국밥집에서는 2012년 이후 더욱 작아진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선호하는 편. 국밥집의 손님들은 보통 밥을 국에 말아먹기 때문에 스테인리스 밥공기의 규격이 작아도 개의치 않는다(200쪽)'라고 한다.

1940년대 일본 제국주의가 태평양 전쟁에 쓸 병기를 만들기 위해 일반 가정을 대상으로 놋그릇을 강탈해가자 온 나라가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놋그릇으로 된 제기와 가장의 식기를 땅에 묻어서라도 강탈당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랬던 한국인들이 1960년대 중반에 '스테인레스 스틸 그릇'이 나오자 일거에 놋그릇을 버렸다.

당시 '스테인레스 스틸 그릇'을 처음 접했던 한국인들은 이 그릇을 그냥 '스텐' 혹은 스텐 그릇'이라고 불렀다. 따지고 보면 '스텐'은 '녹슬다'는 뜻을 가진 영어 'stain'으로, '녹이 슬지 않는다'는 뜻의 '스테인레스(stainless)'와는 정반대 의미의 단어다. 그런데도 '스텐' 혹은 '스텐 그릇'이라는 용어가 민속어휘로 굳어진 것은 그만큼 스테인레스 스틸 그릇이 대중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스텐 그릇의 원료인 스테인레스 스틸은 크롬과 니켈 등이 포함된 강철 합금이다. 스테인레스 스틸은 영국의 발명가 해리 브리얼리(1871~1948)에 의해서 1913년 8월에 개발이 시작되어, 1920년대에 상용 제품으로 출시되었다.(…) 한국의 가정에서 스텐 그릇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플라스틱 식기가 사용된 시기와 비슷한 1960년대 초반부터다. - 192~193쪽.


이 외에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명칭인 공기는 한자로 '空器', 한자 그대로 '빈 그릇'을 뜻하지만, 밥그릇을 뜻하는 명칭으로 굳어 버린 이유와 스테인리스 그릇이 한참 유행하던 1967년 당시 10개로 구성된 오첩 반상기나 16개로 구성된 칠첩반상기를 사려면 문경소재 광부의 한 달 치 급여인 4694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500~4000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 값비싼 제품이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그런데도 많은 가정에서 반상기는 물론 제기까지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바꿀 정도로, 놋그릇에 도금을 해서까지 파는 사람들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인기 품목이었다는 것 등 스테인리스 그릇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려준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별다른 생각이나 의심없이 당연한 듯 해오고 있는 우리의 식사 방식으로 우리의 음식 문화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음식 문화를 이해하는데 참고로 알아야만 하는 것들까지 소소한 듯하지만 결코 소소하지만은 않은 비중으로 들려주고 있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그밖에도 ▲왜 신발을 벗고 방에서 식사를 할까? ▲왜 양반다리로 앉아서 식사를 할까? ▲왜 낮은 상에서 식사를 할까? ▲왜 집집마다 교자상이 있을까? ▲왜 회식 자리에 명당이 따로 있을까? ▲왜 그 많던 도자기 식기가 사라졌을까?▲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할까? ▲왜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먹을까? ▲왜 밥·국·반찬을 한꺼번에 먹을까? ▲왜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실까? ▲왜 술잔을 돌릴까? ▲왜 반주를 할까?의 주제로 우리의 음식들과 도구, 풍습 등 우리의 음식문화 전반을 이야기한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주영하) | 휴머니스트 | 2018-01-15 ㅣ정가 22,000원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

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2018)


태그:#음식문화, #스텐 밥공기, #스테인레스 스틸, #주영하(음식인문학자),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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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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