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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풍광좋은 절, 진관사.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풍광좋은 절, 진관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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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능선과 계곡을 곁에 품은 절 진관사(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진관길 73). 조선시대 집현전 학사들이 단체로 휴가를 와 쉬면서 글을 읽었을 정도로 풍경이 좋은 곳이다. 1011년 고려 8대 왕 현종(992~1031)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津寬)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절이다.

이후 조선의 건국과 왕권을 다지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왕실주관의 수륙재도 이 절에서 치렀다. '숭유억불'을 기치로 삼은 성리학의 조선시대였지만 오랜 종교에 기대고자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현대에 들어서도 매년 벌어지는 진관사 국행 수륙재는 무형문화재 126호다. 수륙재(水陸齋)의 본래 목적은 천지에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 다니는 외로운 넋을 위로하고 도량에 모셔 장엄한 법의 음식을 베풀어 주는 불교 의식이라고 한다.

사찰안에 있는 편안한 쉼터.
 사찰안에 있는 편안한 쉼터.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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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함이 느껴지는 사찰 소품가게.
 섬세함이 느껴지는 사찰 소품가게.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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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교를 지나 절에 들어서면 오래된 역사를 지닌 천 년 고찰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휴전 후 10여년이 지나서야 다시 절을 건립해서다. 전쟁의 상흔으로 폐사지가 되다시피 한 자리에 현재의 사찰로 재건한 사람은 젊은 비구니 최진관(崔眞觀)스님이었다.

세심교(洗心橋) 앞 종무소에는 전통차를 맛볼 수 있는 연지원이 있다. 진관사의 카페이자 쉼터로 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연꽃을 형상화해 만든 쿠키도 맛있다. 소담한 한옥을 연상하게 하는 공간으로 누구나 와서 향기로운 차를 마실 수 있다. 종무소 안 불교 소품가게에서 파는 제품들은 하나하나가 정성을 들인 예술 작품 같았다. 고운 수건에 새겨진 글귀가 눈길을 머물게 했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경건해지는 예배 장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경건해지는 예배 장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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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으로도 유명한 진관사.
 사찰음식으로도 유명한 진관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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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곳곳에서 진관사 특유의 섬세함과 아늑함이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이 절은 10여명의 비구니(여승)들이 가꿔가는 사찰이었다. 볕이 드는 양지에 널찍한 장독대가 눈길을 머물게 했다. 진관사는 사찰음식의 본가로 꼽히는 곳으로, 사찰음식체험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사찰음식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밋밋하지 않고, 분명 싱겁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느낌은 아닌 맛이라고 하니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일반인은 매주 일요일 점심때 공양 시간에 사찰음식을 먹을 수 있다. TV 다큐멘터리 방송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진관사 절밥도 먹고 마음수양도 하고 싶다면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면 되겠다.

칠성신이 있는 불전에 숨겨져 있던 옛 태극기

민간 무신을 모신 진관사 칠성각 - 왼편에 축소된 옛 태극기가 보인다.
 민간 무신을 모신 진관사 칠성각 - 왼편에 축소된 옛 태극기가 보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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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태극기에 담긴 사연이 적혀 있는 알림석.
 진관사 태극기에 담긴 사연이 적혀 있는 알림석.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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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절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산신각이라는 작은 불전이다. 사찰마다 있는 전각으로 산신령 혹은 무신(巫神)을 모시는 곳이다. 불교가 전래되기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믿어오던 무신을 배척하는 대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 포용한 것이다. 절마다 산신령이나 무신 그림이 달라 절을 하면서 유심히 보게 된다.

어릴 적엔 꿈에 나올까봐 무서웠는데 어느새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진관사에도 대웅전, 명부전, 나한전 등 여러 전각들과 함께 산신을 모신 칠성각이 있다. 1907년 지어진 칠성각은 불교에 흡수된 민간신앙인 칠성신(七星神 : 사랑, 재물, 성공, 행운, 무병장수, 소원성취, 복을 관장하는 신)을 모신 건물이다.

일장기 위에 덧칠해 그린 진관사 태극기.
 일장기 위에 덧칠해 그린 진관사 태극기.
ⓒ 진관사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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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의 칠성각은 더욱 특별한 공간이다. 지난 2009년 5월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던 중 낡은 태극기와 독립운동사료들이 발견됐다. 독립신문, 신대한신문을 비롯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태극기에 싸여 있는 상태로 불단 안쪽 기둥 사이에 수십 년간 숨겨져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총 6종 20점에 이르는 사료들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칠성각으로 들어가면 칠성신 그림 옆에 작게 축소된 옛 태극기가 숨겨진 것처럼 놓여 있다. 칠성신들이 태극기를 보호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진관사 독립운동 유물의 발견은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독립의지와 항일투쟁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견된 태극기는 현재의 태극기 모습과 다르다. 특히 중앙에 있는 태극무늬 모양은 보다 조화롭고 신묘하게 느껴졌다.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정한 태극기 모습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건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위에 덧그려졌다는 점이다. 일장기를 거부하는 마음,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이 느껴졌다.

삼각산 마루에 새벽빗 비쵤제 / 네 보앗냐 보아 그리던 태극기를
네가 보앗나냐 죽온줄 알앗던 우리 태극기를  오늘 다시 보앗네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니네 / 이천만 동포야 만세를 불러라
다시 산 태극기를 위해 만세 만세 다시 산 대한국
-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독립신문 제30호에 실린 <태극기> 시(詩) 일부


덧붙이는 글 | 교통편 및 기타 정보 : www.jinkwansa.org
지난 3월 24일에 다녀왔습니다.
서울 은평구 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진관사, #칠성각, #태극기,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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