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조남주 작가가 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밝혔다. 이후, 일부 팬들은 아이린의 포토카드를 불태우는 인증을 하는 등의 논란이 일었다. <82년생 김지영>이 무슨 내용이길래 그럴까?

<82년생 김지영>은 그 당시에 흔했던 이름인 김지영의 삶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남아선호사상이 있었던 시대에 태어나 알게 모르게 차별당하며 살았던 여자 김지영의 삶 말이다. 한 명의 남자로서 읽은 감상을 요약해 말하자면 조금 생소했다. 평범했던 일상에서도 나와 조금씩 달랐던 그녀들이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혼자 타는 것을 무서워하는 여자 친구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던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82년생 김지영>이 소설일 뿐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추천하고 싶은 다큐멘터리를 다시금 소개해보려고 한다. 바로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제 '김지영' 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큐멘터리다.

엄마가 돼버린 '김지영'

 엄마가 된다고 직장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시선은 부정적이었다.

엄마가 된다고 직장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시선은 부정적이었다. ⓒ SBS


생후 10개월 시은이를 키우고 있는 87년생 김지영씨. 그녀는 교사를 꿈꿨고 착실히 자신의 길을 밟아갔다. 기간제 교사로 일을 하기도 했던 그녀는 현재 육아에 전념하는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결혼과 임신의 벽은 김지영씨의 생각보다 높았다. 첫째 자녀 출산 전후 6개월 간 여성의 44.6%가 경력단절을 경험한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6)의 통계자료처럼 면접에서부터 날카로운 질문들이 날아왔다.

"아기가 아프면 어떻게 할 거냐"
"학기 중에 임신을 하면 내가 곤란하지 않겠냐"

엄마가 된다고 직장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시선은 부정적이었다. 전업주부가 된 지영씨의 삶은 어땠을까.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지영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일이었다. 아이의 이유식 준비, 집 청소, 빨래하기, 그리고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는 일까지. 게다가 도중마다 보채는 시은이를 돌보기까지 해야 했다. 통화를 끊을 때 하는 남편의 "응. 집에서 쉬어"라는 한마디는 서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남편도 잘 알아주지 않는 '그림자 노동(해도 티가 안 나는 일로, 주로 살림을 말한다)'은 끝이 없었다. 이 대목을 보면서 주변 선배들이 많이 떠올랐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여자 선배는 결혼과 임신으로 인해서 활동을 멈춰야 했다. 술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즐겼던 사람이었지만 선배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가 조금 성장하여 외출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그 횟수는 전에 비해 엄청 줄었다. 육아로 인해 선배의 삶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 컸다.

결혼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육아도 엄마만의 문제가 아니건만 떠맡겨지듯 엄마가 된 그녀들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아기에게 삶을 맞춰야 했다. 열심히 육아를 '돕겠다'는 남편들을 보면서 말이다.

남자가 중요했던 그 시절, '김지영'들은

1980년대는 남자아이를 선호하는 시대였다. 얼마나 심했던지 나라에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구호까지 내걸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이 합법화되면서 비슷했던 출생성비는 무너지고 남아의 수가 훨씬 많아지게 됐다. 당시를 살았던 지영씨들의 남편들은 남자아이들이 우대받았던 경험을 인정한다. 좋은 것은 남동생에게 갔던 기억, 맛있는 반찬은 항상 남자들에게 몰려 있던 경험 등 말이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차별을 깨고 평등을 물려주고 싶었던 어머니들의 노력도 있었고 남녀차별금지법 등의 변화도 있었다. 여성들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보장되었고 사회 진출의 기회도 더 많아지게 됐다.

 그녀는 처음으로 취업했던 회사의 차별적인 부당함을 깨고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능력으로 유리천장을 깨는 것, 그녀가 더욱 열심히 일하는 이유다.

그녀는 처음으로 취업했던 회사의 차별적인 부당함을 깨고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능력으로 유리천장을 깨는 것, 그녀가 더욱 열심히 일하는 이유다. ⓒ SBS


여자라서 못하지 말고 다 해보라는 어머니의 지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86년생 김지영씨. 그녀는 정말 평등하게 대우받으며 일하고 있을까? 굉장히 업무 강도가 높은 컨설팅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3명의 팀원을 데리고 있는 팀장이다. 사내 최연소 팀장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그녀에게는 하나의 전설이 있다고 한다. 김지영 팀장님의 방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전설이다. 그녀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처음으로 취업했던 회사의 차별적인 부당함을 깨고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능력으로 유리천장을 깨는 것, 그녀가 더욱 열심히 일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걱정은 계속 남아있다. 막막한 결혼과 출산이다. 열심히 하면 다 된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차이는 그녀를 답답하게 만든다.

남자인 나는 어땠을까

방송을 보는 내내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여자 선배들이 결혼을 하고 삶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마음들이 더욱 커지는 느낌이었다. "여자들은 저래서 안 돼"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남들의 두 배, 세 배는 더 열심히 일하고 육아까지 잘하는 슈퍼맘이 되어야 하는 현실. 오랫동안 키워온 꿈을 내려놓고 한 가정의 엄마로서 살아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더욱 답답했던 것은, 이 방송을 보면서 여자 친구, 여동생이 걱정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남자인 나는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불편함과 걱정들이었고 지금도 여자 친구나 여동생의 걱정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물론, 여러 가지 노력들로 인해서 더욱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많은 사람이 이제 우리나라는 평등한 사회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조명했던 많은 지영씨들의 삶은 소설이 아니었고 우리 바로 옆의 이야기였다. 여전히 진행 중인.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봤으면 좋겠다. 단지 나처럼 주변 여성들에 대한 걱정이 될 뿐이더라도, 조금은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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