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조상연

관련사진보기


시를 외운다는 건 입으로 덕을 쌓는 일이다.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그네

김말봉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한 번 구르니 나무 끝에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대지)가 발 아래라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그네'의 시를 지은 김말봉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 한글 성을 쓴 금수현 선생의 장모님이시다. 또한 금수현 선생은 금난새 선생의 아버지시다.

두 달 전, 너의 사촌 결혼식을 다녀오며 너희들 앞에서 막말을 해가며 흥분한 적이 있었다. 건방지게 손님을 가려서 초대를 했다는 사실이 아버지의 비위를 몹시 상하게 했는데, 물론 지금도 그때의 화가 다 가라앉은 건 아니지만 창피하게 너희들 앞에서 그럴 일은 아니었다.

왜 이 이야기를 먼저 하느냐면 오늘 아버지가 네게 들려줄 시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버지가 생각하는 시란 무엇인가? 시인이 아버지 얘기를 들으면 웃을지 모르나 시인은 시인의 몫이 있고 독자는 독자의 몫이 있지 않겠느냐.

'좋은 말도 한두 번, 길면 병이 되거늘
하물며 나쁜 말도 여러 번씩 함이랴
만약에 좋지 않은 남의 말을 들었다면
내 입에 옮기지 말고 다물고 말을 말라'

우리 선시 삼백수 584쪽의 선시다.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자꾸 하면 욕이 되니 좋은 말이라고 덧없이 되풀이 하지 말라. 하물며 남을 헐뜯는 나쁜 말이야 오죽하랴. 입으로 쌓는 악업이 크니 험한 말은 듣지도 말하지 옮기지도 말라. 그러나 세상을 어찌 모 아니면 도라고 딱 잘라 말하랴. 입으로 쌓는 악업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덕도 있다는 게 아버지 생각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가 지혜를 가르치는 선생이 그렇고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가수가 그렇다. 선생은 나쁜 이야기를 해주며 이렇게 살면 안 된다 가르치고 가수는 아름다운 노랫말을 반복해 부르며 사람의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또한 시인이 옹알옹알 읊조리는 시는 사람의 마음을 출렁이게 하는 묘한 힘이 있으니 이들은 모두 입으로 덕을 쌓는 사람이라 하겠다.

아버지가 예닐곱 살 때 외할아버지가 오셨는데 십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이라는 걸 구경했는데 지폐는 어머니가 가져가고 대신 일 원짜리 동전 두 개를 주시더구나. 일 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니 아무리 이가 튼튼한 사람도 깨지 못하는 돌사탕을 한웅큼 주더구나. 50년 전의 화폐가치가 그랬다.

과연 요즈음 돈 만 원으로 아버지가 외할아버지에게 받았던 십 원만큼 커다란 즐거움을 살 수 있을까?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논 열두 마지기가 있으면 다섯 마지기에 벼를 심고 나머지 일곱 마지기에 연꽃을 심고자 하는 아버지는 가능한 일이다.

만 원도 안 하는 시집을 한 권 사는 일이다. 그리고 동무 앞에서 시집을 펼쳐놓고 옹알이를 하듯 시 한 편 읽어주며 입으로 덕을 쌓는 일이다.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으랴. 언젠가 실제로 그렇게 해봤더니 동무가 아버지 이마를 짚어보며 그러더라.

"미쳤군!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졌냐? 쩟쩟."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전화하면 제일 먼저 달려와 아버지가 읊어주는 시를 고개 끄덕이며 들어주고 아버지의 공부를 복돋아주는 동무란다. 허허.



태그:#모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