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다큐페스티발 2018 개막작 <관찰과 기억>(2018) 한 장면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 개막작 <관찰과 기억>(2018) 한 장면 ⓒ 인디다큐페스티발


이솜이 감독의 <관찰과 기억>(2018)은 8년 전 누군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던 감독이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지난날 사건을 재구성하는 단편 영화다. 대부분의 성범죄는 누군가에 의해 목격되거나 기록되지 않는 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때문에 성범죄는 법정에서 죄의 유무를 입증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관찰과 기억>처럼 피해자의 기억조차 흐릿해지는 경우라면 더더욱 밝히기가 어렵다.

<관찰과 기억>은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미투 운동(#MeToo)과 맥락을 같이 한다. <관찰과 기억>은 가해자의 실명은 언급하지 않는다. 사건 당시 가해자의 대략적인 신원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푸티지만 짧게 등장한다. 8년 전 성추행을 당한 기억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감독은 자기 혼자 오랫동안 끙끙 앓아왔던 기억과 마주하고 이를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조금씩 용기를 얻고자 한다.

여성 신진 감독들이 만든 두편의 단편 다큐영화가 나란히 상영된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 개막작은 크게 '미투'와 '퀴어'로 압축될 수 있다. 지난 22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열린 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식에 상영한 <관찰과 기억>, <퀴어의 방>(2018)은 각각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성소수자에 주목하며 이들의 그간 세상을 향해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기억과 목소리를 영상으로 담고자 한다.

권아람 감독의 <퀴어의 방>은 영화에서 목소리로만 등장 하는 네명의 인터뷰이와 그들이 살고있는 집과 방의 풍경을 보여준다. 제목에서 암시 하듯이 인터뷰에 참여하며 자신이 거주하는 집을 공개한 4명의 인물들은 모두 성소수자들 이다. 채식주의자 이며 동물보호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디올을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들은 일찌감치 부모의 집을 떠났고, 하나의 주거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셰어 하우스'에서 자신만의 방을 만들고 있다.

여성과 성소수자, 약자들의 기억과 목소리들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 개막작 <퀴어의 방> 한 장면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 개막작 <퀴어의 방> 한 장면 ⓒ 인디다큐페스티발


나이가 들면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지만, <퀴어의 방> 등장인물들이 '독립'을 선택한 이유는 더 분명해보인다. 성소수자인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하고 아늑한 공간이 필요하지만, 불행히도 그들이 부모와 함께 거주 했던 집은 인터뷰이들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못했을 뿐더러, 성적 지향 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규범을 기반으로 한 부모의 집에서 나와 타인과 함께 사는 '세어 하우스'에서 둥지를 튼 인터뷰이들은 그제야 온전히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다. 아직 집에서 떠나지 못한 디올을 제외하고 그들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세어 하우스 역시 온전히 독립된 공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퀴어의 방> 인터뷰이들은 자신만의 영역이 보장되는 공생의 공간에서 안식을 얻고 퀴어 로서 정체성을 다듬어간다. 웹다큐멘터리로 기획된 <퀴어의 방>은 성소수자들이 살고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퀴어의 기억, 가족, 미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한다.

<관찰과 기억>, <퀴어의 방>에 등장 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성애,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당한 공통점이 있다. 가해자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관찰과 기억>의 '감독-나'는 잊을 만 하면 탱탱볼처럼 튀어 올라오는 8년 전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퀴어의 방>의 인터뷰이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가족들이 안겨준 상처를 호소한다. 좋지 않았던 기억을 완전히 떨구어낼 수는 없겠지만, <관찰과 기억>, <퀴어의 방>은 인물들이 경험 했던 피해 사실을 카메라 앞에 고백한다. 그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카메라를 빌러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내어 말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진 힘이다.

각각 11분, 29분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관찰과 기억>과 <퀴어의 방>은 오는 29일까지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진행하는 인디다큐페스티발 2018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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