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은 늘 예고 없이 찾아든다

부상은 늘 예고 없이 찾아든다 ⓒ 이근승


부상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일생의 꿈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착실하게 준비를 마치고 최고의 몸 상태에 도달했을 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등 시기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 과도한 긴장과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기에는 더하다. 이럴 때일수록 선수들은 '부상'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도전조차 해보지 못하고 주저앉는 것처럼 서글픈 일은 없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FIFA 랭킹 59위) 축구 국가대표팀이 24일 오후 11시(아래 한국시각) 영국 벨파스트 윈저파크에서 FIFA 랭킹 24위 북아일랜드와 평가전을 치른다. 이번 유럽 원정 2연전(북아일랜드-폴란드)은 사실상의 마지막 시험 무대다. 내달에는 A매치가 없다. 대표팀은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둔 5월에서야 다시 모인다.

큰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현 대표팀 선수들이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무대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경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주장' 기성용과 '에이스' 손흥민, '대들보' 김민재를 제외하면 주전은 확실치 않다. 이번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석현준과 권경원, 고요한 등도 호시탐탐 월드컵 본선을 꿈꾸고 있다. 

지금은 대표팀 내 긴장감과 경쟁이 최고조에 달할 시기다. 선수들은 신태용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야 한다. 유럽 원정 2연전을 통해 자신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월드컵의 꿈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주전에서 후보로, 후보에서 예비 명단으로 밀려날 수 있다.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투혼'으로 포장된 '무리'를 불러올 수 있다. 이는 매우 큰 확률로 '부상'으로 이어진다.

    부상으로 인해 두 번째 월드컵 본선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동국

부상으로 인해 두 번째 월드컵 본선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동국 ⓒ 이근승


불운한 역사는 반복됐다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에 눈물 흘린 스타는 수두룩하다. 지난 대회에선 '인간계 최강자'라 불린 라다멜 팔카오가 부상(왼쪽 무릎 십자인대)으로 월드컵 출전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프랑스 대표팀 에이스였던 프랑크 리베리, 독일의 희망 마르코 로이스, 네덜란드 중원의 핵심이었던 케빈 스트루트만 등도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인해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우리 선수들도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눈물을 삼킨 경험이 있다. 1998년 황선홍이 대표적이다. 황선홍은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치러진 중국과 평가전에서 상대 골키퍼의 거친 반칙에 쓰러졌다.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차범근 감독은 황선홍을 전력의 50%라 칭했을 정도로 그의 부상은 뼈아팠다.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월드컵 최종 명단에 합류했지만, 기적은 없었다.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로 손꼽히는 이동국도 부상에 피눈물을 흘렸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둔 이동국의 몸 상태는 최고였다. 2006시즌 K리그 10경기에서 7골을 몰아쳤다. 2002 한-일 월드컵 최종 명단 탈락의 아쉬움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병역까지 마치면서 몰라보게 성장한 모습이었다.

당시 안정환과 조재진 등 만만찮은 경쟁자들이 즐비했지만, 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는 이동국이 유력했다. 그런데 부상이 찾아들었다. 월드컵 개막을 2개월여 앞둔 2006년 4월, K리그 경기 도중 혼자 몸의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쓰러졌다. 전방십자인대 파열이었다. 절정의 몸 상태였던 만큼 충격이 컸다.

사상 첫 원정 16강이란 역사를 쓴 2010 남아공 월드컵 직전에도 부상에 눈물 흘린 선수가 있었다. 이정수, 조용형 등과 대표팀 후방의 무게감을 더했던 중앙 수비수 곽태휘였다. 곽태휘는 2010 남아공 월드컵 개막을 2주 앞둔 시점에 치러진 평가전(vs. 벨라루스)에서 왼쪽 무릎을 다쳤다. 꿈의 무대를 밟을 날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지만, 함께 할 수 없었다. 

부상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우리 대표팀을 괴롭혔다. 홍명보 전 감독의 큰 신뢰를 받으며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한 왼쪽 풀백 김진수가 발목 부상으로 쓰러졌다. 대표팀은 막판까지 김진수의 부상 회복 속도를 지켜봤지만, 기적은 없었다.

최근에도 부상이 아쉬운 선수가 있다.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 중인 스트라이커 석현준이다. 석현준은 올 시즌 전반기에 부활을 알렸다. 지난해 11월 리그 첫 골을 시작으로 3경기 연속골을 폭발시켰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른 프랑스 리그의 강호 AS 모나코와 맞대결에선 멀티골까지 기록했다. 대표팀 복귀가 확실해 보였다.

지난 1월, 석현준은 앙제와 리그 맞대결에서 발목을 다쳤다. 교체 투입된 지 10분 만에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한 달 동안 재활에 몰두했다. 그사이 김신욱과 황희찬 등 대표팀 경쟁자들은 승승장구했다. 지난달 그라운드 복귀에 성공했지만, 신태용 감독은 석현준을 부르지 않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했던 김진수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했던 김진수 ⓒ 이근승


첫째도 둘째도 '부상' 조심

부상을 100% 방지하기란 불가능하다. 축구는 전쟁이다. 승리를 위해 그라운드에 나선 선수들은 매 경기 격투기를 방불케 하는 몸싸움을 벌인다. 심판의 시선이 향하지 않는 곳에선 부상으로 직결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철강왕'이라 불리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도 부상으로 쓰러질 때가 있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 위에선 누구보다 건강한 모습을 자랑했던 박지성도 부상에 주저앉곤 했다. 경기에만 집중하고 조심해도 발목을 잡곤 하는 것이 부상이고 축구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뻔한 얘기지만, 과도한 긴장과 치열한 경쟁을 지혜롭게 이겨내야 한다. 최악의 조에 속했다 평가받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팬들이 원하는 것은 16강 진출이 아니다. 누구와 싸우든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부상으로 인해 최선을 다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너무 잔인하다.

지난 2016년, 황선홍 현 FC 서울 감독은 국내 매체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나는 중국전(1998 프랑스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냉정하지 못했다. 의욕이 앞서 무리한 플레이를 했다. 중국 골키퍼 앞에서 내가 멈추거나 피했어야 했다. 1994년 실수(아쉬움)를 만회하겠다는 의지가 컸다. 이 시절이 내 축구 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이번 월드컵에서만큼은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낙마하는 선수가 없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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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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