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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라고 답했던 어느 학생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인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비슷한 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인권 없는 세상의 이야기만이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열아홉 살 청년은 혼자 일하다 기차에 끼여 죽었습니다. 강남대로서 화장실에 들렀을 뿐인데 살인의 희생자가 되고 만 젊은 여성도 있습니다. 검찰에서 연극계에서 정치계에서 학교에서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여성들의 소식도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희생에 함께 아파하는 이들일 것입니다. 현장에 가서 조의를 표하는 꽃을 놓고 메모로 애도하는 사람들, 해시태그 미투와 위드유를 다는 사람들…. 길을 가다 멈춰선 모든 이들. 무엇인가를 위해 하려는 사람들.

그 모든 이들과 함께 하는 영화제가 오는 4월 24일부터 3일간, 성동구 곳곳에서 열립니다. 성동구립도서관 '작은영화관'에서의 3일 연속 거점상영은 물론 성동구 곳곳의 사적이고 공적인 공간들에서 영화를 틀겠답니다. 영화를 준비하는 모임에 준비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지난 20일 화요일 오후 성수동 성수복지관에서입니다.

박한희 변호사가 ‘혐오, 인권,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2018 성동인권영화제 준비모임이 개최한 강연회가 지난 3월 21일 성수복지관 6층서 열렸다.
▲ 박한희 변호사가 ‘혐오, 인권,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2018 성동인권영화제 준비모임이 개최한 강연회가 지난 3월 21일 성수복지관 6층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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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희 변호사의 강의를 듣다

박한희 변호사는 트렌스젠더입니다. 성적소수자입니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의 정체성을 느꼈던 그에게 '혐오'와 '차별'은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화제의 슬로건 '방관자_사표'에서 사표를 낼 수 없는 사람일지 모르겠습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활동하는 그의 강연 주제는 '혐오, 인권, 차별금지법'입니다.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이죠. 좁게 보면 혐오는 일단 감각으로 느껴요. 그건 생물학적으로 생존과 관련된 거죠. 그런데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권력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최현철 2017. 혐오 그 분석과 철학적 소고 참조) 거예요. 개인적 편견과는 다르고 반드시 차별을 동반하는 거죠.

혐오는, 피라미드(혹은 사다리)같은 것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피라미드의 아래는 개인의 편견이 차지해요. 그런데 그게 개인행동으로 표출될 수도 있고, 윗 단계로 진전해요. 분리하고 배제하려는 실제적 차별이 그 위에 있고, 제노사이드 같은 극단적 형태의 폭력으로 정점을 이루죠.

나치 독일은 동일혈통 및 명예보존법으로 독일 아리안족과 외국인들 특히 유대계, 집시, 유색인종과는 성관계 혹은 결혼을 금지했어요. 제국시민법을 만들고 유대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체계적으로 제외시켜갔죠. 차츰차츰 단계를 넘어간 뒤에 최종적으로 인종청소가 있었죠.

우리 사회도 위험 경고 신호가 켜졌어요. 2011년 이전 5년여간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혐오관련 언어를 모니터링 해보면 주로 장소 개념이 많았어요. 쓰레기 매립장, 화장장을 보고 혐오를 연상했어요.

2011년 이후로 분석한 자료는 그 키워드가 사람으로 넘어갔어요. 김치녀, 한남충, 맘충, 틀딱도 있고요. 이런 혐오표현(hate speech)은 우리가 그냥 개인간에 서로를 못 믿어서, 싫어해서, 어리석어서  나오는 게 아니예요. 우리 사회가 가진 차별적인 문화, 사회정치적 환경, 이런 것이 배경이 되죠.

차별하는 사람과 차별받는 사람은, 대척점에 있어요. 그런데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은 사실 하나의 잣대만 갖고 있지는 않거든요. 여성이면서 장애인이고 이주민일 수도 있죠. 백인이고 남자지만 노동계층일 수도 있고, 저학력자일 수도 있고요.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차별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각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차별의 세계 또한 매우 복잡한 거죠.  

서울시가 인권시민헌장을 채택하려고 할 때, 극렬한 반대가 있었어요. 동성애자들에게 섹스를 허용하려는 음모가 있단 거죠. 거기서도 굉장히 많은 혐오 발언이 나왔어요. "국민이란 표현은 예스지만, 사람이란 표현은 안 된다." 현재 논의되는 헌법 문구에 대해서도 이런 반대가 있어요. 이슬람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예요. 합리적인 방법, 토론을 통한 합의를 이루려고 해도, 그것도 반대하죠.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을 반대한 사람이 하는 말을 어떻게 믿느냐 그런 식인 거죠.

혐오표현 금지에 대한 논의는 여러 번 국회에서도, 법적으로도 진행돼 왔어요. 예로 이종걸 의원 등이 발의한 적이 있어요. 종교나 인종에 대한 혐오표현을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거기 '국가에 대한 반대'같은 내용도 들어있어요. 그러면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마 그런 의도는 아닌 것 같지만, 우리들이 섬세한 표현과 구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죠.

일본에서 혐한 시위가 있었어요. 재일 조선인(한국인)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재일조선인의 특혜를 반대하는 시민모인(재특회)에선가 며칠을 두고 과격한 언사들을 쏟아냈어요. 기물도 파손하고. 결국 학교가 임시휴교까지 했고요. 결국 소송을 통해서 이들을 제재했어요. 헤이트 스피치 규제법의 단초가 되었죠.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은 수정헌법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폭 넓게 인정하는 편이고, 유대인 학살을 경험한 유럽은 엄격하게 규제해요."

성동인권영화제는 지난 2015년부터 꾸준하게 인권을 환기하고 공감하는 영화제를 진행해왔다. 좌측위로부터 순서대로 2015, 2016, 2017 포스터 및 2016년 6월 서울숲에서의 영화제.
▲ 성동인권영화제는 지난 2015년부터 꾸준하게 인권을 환기하고 공감하는 영화제를 진행해왔다. 좌측위로부터 순서대로 2015, 2016, 2017 포스터 및 2016년 6월 서울숲에서의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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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가던 인도 출신 보노짓 후세인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습니다. "개××냄새 난다, 너 어느 나라서 왔냐!" 이 발언을 듣고 말리던 그의 친구에게도 그 젊은 한국인은 똑같이 욕합니다. "조선×, 아랍놈이랑 같이 있으니까 좋냐?" 이 사건을 명예훼손 그리고 명백한 인종차별로 문제 삼아 경찰서에 검찰에 갔을 때, 후세인과 그 친구가 들었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인종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인종차별이 없습니다."

후세인이 하얀 피부였다면, 양복을 입은 그 젊은 남성은 '냄새 난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후세인의 옆에 있던 친구가 남성이었다면, 또 저런 방식으로 욕하지 않았겠죠. 피부색만 보고 행한 차별적 발언이었고, 여성이라서 당한 곤욕이 분명했을 이 사건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적어도 우리가 방관하지 않아야할 이유는 되죠.  

"혐오 발언에 대해 대항 표현(counter speech)이 필요해요. 일본에서 인종차별 시위를 조직했던 시위대들이 20여 명쯤 있었어요. 수백 명의 시민들이 그들을 둘러쌌죠. 그리고 그런 혐오발언을 금지하라고 외쳤어요. 그들이 행진하면 여기도 같이 따라갔죠. 결국 그들 혐오시위대는 말도 몇 마디 하지 못하고 해산하고 말았어요. 낙인과 폭력에 반대하고, 어떤 사유로도 타인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차별금지법을 만들어내는 힘이 될 거예요."

강의를 마치고 공개 질문과 답변 시간이 있었습니다. 청중이 물었습니다.

- 우리들이 일상에서 차별을 해소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떤 것부터 시작해 갈 수 있을까요?

"먼저 드러내 놓는 일이 필요한 거 같아요. 우리들은 주변에 장애인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요. 동성애자가 없는 거 같죠. 그런 사람들은 어디 저기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처럼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저 같은 사람을 포함해서, 있거든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들과 그냥 함께 하는 것부터죠."

-언젠가 작은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곳 주최측 참여자 분이 아토피가 심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동석했던 참여자 분께서 "처녀 피부가 저래서 얼마나 불쌍하냐" 하시는 거예요. 근데 저는 '불쌍하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마음이 불편해지더군요. 왜 마음이 불편했을까요? 그런 문제를 어떻게 봐야하는 걸까요?
"장애인들에게도 불쌍하다 그러시는 분들이 있으세요. 에구 불쌍하다 하면서 돈도 주고 그러세요. 그게 측은지심이 있긴 해요.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여성을 창녀 아니면 성녀로 보는 태도도 그런 거예요. 여성을 극단적인 두 개의 색으로만 보는 거죠. 장애인이어서 불쌍한데, 혹시 집이 잘 산다고 하면, 그럼 불쌍하다고 안 봐요. 그런 감정은 내가 일방적으로 우수하다, 그는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낮게 보고 구별하는 거죠. 그들을 대상화하는 거예요. 곧바로 차별이 될 수 있죠. 그들이 가진 아주 많은 다른 특성들이나 환경들을 보지 못하니까 그렇게 반응하는 거거든요. 장애인들은 시위하면서 기물 파손을 해도, 경찰이 그냥 봐주는 게 있어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그게 또 차별인 거거든요. 장애인 활동가들은 그러죠. 우리도 좀 잡아가!(웃음)"

2018년 성동인권영화제의 주제는 ‘방관자_사표’다.  미투, 위드유를 넘어 내가 먼저 미퍼스트다.
▲ 2018년 성동인권영화제의 주제는 ‘방관자_사표’다. 미투, 위드유를 넘어 내가 먼저 미퍼스트다.
ⓒ 성동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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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중에 마사 누수바움 '인류의 정치'에서 본 구절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그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에게 동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를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 그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도 우리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보는 일을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방관자_사퇴'를 주제로 하는 성동인권영화제는 4월 24일부터 3일간 성동구의 곳곳에서 열립니다. '해시태그(#) 방관자_사퇴'를 달아주세요. '빨간 데 아니야? 시끄러운 데 아냐?' 마시고 네 번째로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 참여자로 등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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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