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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투명성기구일로 핀란드에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핀란드는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하고 있는 부패인식지수에서 거의 매년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 1위를 차지하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핀란드의 국방부, 감사원, 국회, 시민단체, 언론사, 검찰청 등을 방문했다. 특히 핀란드가 국방 분야에서 가장 낮은 부패지수로 세계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그 답을 찾고자 하였다.

핀란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징병제 국가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만난 모든 핀란드 남성들에게 "군대 생활이 어땠나?"라고 물었다. 그런데 이들의 답변이 모두 한결 같이 "너무 좋았다. 유용한 기술도 배우고,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재미있는 추억도 많았다"였다. 나는 혹시 이들이 내가 방문한 기관들에서 일하는 남성들이라 그렇게 좋게만 이야기 하는가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동 중 만난 택시기사, 버스기사, 식당종업원, 전철기관사, 거리의 행인들에게도 "군대 생활이 어땠나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이들의 답변도 한결같이 "너무 너무 좋았다"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한국 군대에서 입에 담지 못할 무자비한 '국가폭력'을 수없이 체험한 나로서는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이때 나는 한국 국방부 담당자들이 꼭 핀란드에 와서 '핀란드 남성들이 군대에 대해 왜 그렇게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지' 그 비결을 꼭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 생활의 추억이 너무 좋았다"는 핀란드 사람들

당시 내가 만난 핀란드 국영 방송국(YLE)의 한 폭로 전문기자는 국방부에 대한 국민들의 긍정적 인식 때문에 자신의 고충(?)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자신이 핀란드의 방산 비리 의혹을 폭로했는데도 부패 사건에 관심이 많은 핀란드 국민들에게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이유는 국민들이 국방부에 대한 인식이 너무 좋아서라는 것이었다. (이 기자도 젊은 시절 군대를 다녀왔고 '군대 생활의 추억이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 했다)

핀란드 남성의 군 생활은 본인의 선택 하에 그 유형과 기간이 결정된다. 일반적인 경우 6개월, 기술병의 경우 9개월에서 1년, 장교의 경우 1년 정도 군복무를 한다. 징병제지만 1년 정도의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도 있다.

또한 핀란드 군은 복무기간 중 가정문제, 교우문제, 학교문제 등 사회에서 발생한 문제를 상담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군대를 사회훈련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군부대 급식은 유명한 핀란드의 외식업체 페이저(Fazer)사에서 공급하며, 내무생활도 자유로운 편으로 주말 외출은 허가되고 특별한 경우 평일에도 일과가 끝난 저녁 이후로는 외출이 허가되는 등 군 생활은 훈련을 제외하고는 일상생활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핀란드인들의 청년기 군 생활의 경험은 국방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핀란드 국방부의 정책 추진에 있어 핀란드 국민의 군 복무 경험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군복무 이후 형성된 국방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이후 국방 분야 정책 수행에 있어 국민들의 무한지지를 받게 된다.

책표지
 책표지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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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방부는 과연 핀란드 국방부처럼 될 수 없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최근에 읽은 책이 <이등병의 아빠>다. 이 책은 지난 2015년 현역 제대한 아들 고충열과 그런 아들을 보냈던 군인권 운동가 아버지 고상만이 쓴 '대한민국 군대 인권 에세이'다.

특별히 고상만은  지난 2017년 군 의문사 연극〈이등병의 엄마〉를 제작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쓴 <이등병의 아빠>가 우리나라 군대를 핀란드 군대처럼 만드는 데 공헌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지난 한 달간 고씨 부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 아들(아버지)과 함께 책을 낸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 심정이 어떤지?
상만 : "아들이 군에 입대한 때가 2013년 10월이었다. 그때 보충대로 아들을 데려가면서 뭐라도 한마디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 말이 군 복무하면서 있었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 아버지와 함께 군 인권 책을 하나 쓰자고 했다. 그런데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바람처럼 괜찮은 책이 나온 것 같아 매우 기분이 좋다."

충열 : "상당히 영광스럽다. 군인권 전문가인 아버지와 함께 병영 길잡이 책을 쓴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모든 군 정책은 군인을 위해 짜야 한다"

고상만 고충열 부자(가운데는, 김용민씨)
 고상만 고충열 부자(가운데는, 김용민씨)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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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대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개선이 필요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느끼는지?
상만 : "나는 의무복무제 나라인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군 정책의 중심은 의무복무 중 군인을 위해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가 예산의 10%를 국방비로 쓰면서 의무복무 군인을 위해 쓰는 비용은 터무니없이 적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이전까지는 20만 원이었던 병장 월급을 40만 원으로 늘리는 등 변화는 있지만 여전히 기대치에는 못 미친다.

나는 의무복무를 위해 입대하고자 자기 스스로 머리를 깎고 보충대에 들어선 순간, 그 청년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서 자기 의무를 다 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또 다른 의무가 있다. 그것은 그 군인이 죽든 살든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명예가 회복되지 못한 많은 군인들이 하루속히 명예회복이 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날을 기대한다."

충열 : "병사를 소모품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문제다. 이러한 이유로 군대가 충분히 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장비 하나면 금방 끝날 일을 병사 30명의 노동력으로 때우는 모습을 자주 봤다. 제설의 경우에도 멀쩡한 제설차량이 있음에도 병사 수 백 명을 동원해서 새벽까지 눈을 쓸게 했다. 이런 점을 본다면 일본 군대문화의 잔재가 여전히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 군인권문제와 군의문사 전문가로서 아들을 군에 입대시킨 후 경험하면서 느낀 군의 문제점이 있을 것 같다. 어떤가?
상만 : "고백하건대, 군 인권 운동가로서 여러 트라우마가 내 안에 있구나를 느꼈다. 그간 내가 만나온 500여 군의문사 유족 사례 하나 하나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또 하나는 군복무중인 아들을 면회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이다. 여전히 많은 부분에게 우리 군은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다.

아들을 군인으로 보낸 부모는 모두 이 나라의 애국자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런데 군은 그런 부모에게 자부심은 고사하고 뭔가 죄인 취급하듯 대하는 것을 느꼈다. 군인은 내 아들인데 그 부모 역시도 지휘관의 졸병처럼 대하는 일부 군인들의 태도는 정말 문제가 아닐까 싶다. 바꿔야 한다."

"병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고충열
 고충열
ⓒ 고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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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대 후 보충대에서 매트리스와 모포를 각각 2장씩만 준 후 3명이 함께 자라고 했다는 책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세계경제 10대 대국이고 해외원조를 해 주는 부유한 우리나라에서 왜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처우를 했다고 보나?
충열 : "병사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입대 장병 대다수가 이러한 점을 불편하게 생각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본다. 이런 잘못된 폐단이 악습을 이어오게 만든다고 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군의 문제를 민간에 개방하여 병사 출신의 민간 감찰관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우리나라에서 한해 평균 130여 명의 군인이 복무중 사망하며(2013년 당시) 그중 평균 2/3 정도가 자살로 처리되고 있다. 그리고 자살로 처리된 군인의 죽음을 두고 그 가족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후 군의문사로 이어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상만 : "거칠게 보면 의문사는 밝혀지지 않은 죽음이다. 특히 유족 입장에서는 군 헌병대 수사에 대해 불신감이 깊다.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 중 헌병대 수사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간 잘못된 군 수사의 원죄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4년 사망한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이다.

군은 사건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허 일병이 자살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어느 국민도 좌우 가슴에 각각 한발씩, 그래도 죽지 않자 자신의 이마에 한발 더 쏴서 자살했다는 국방부 주장을 믿지 않는다. 나는 헌병대 수사보다 민관 합동의 외부 수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군의문사를 주장하는 불신이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다."

"군에 오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 군대생활을 하면서 "모병제 도입의 절실함을 느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충열 : "군에 오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을 많이 봤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신체적으로도 군대 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특히 피부질환자들의 경우는 위장크림도 바르지 못하더라.

젊은 층의 숫자가 줄어드니 이런 사람들까지 억지로 끌고 오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본다. 마구잡이식 징병으로 무슨 전쟁을 수행할까 싶다. 그러니 모병제를 통해 우수한 인적자원을 선발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책에 쓴 그 문제의 사병 같은 이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 지난 2월 말까지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으로, 그리고 현재는 국방장관으로부터 위촉받아 <국방개혁 자문위원회> 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우리 군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 잡고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상만 : "군의 적폐를 청산한다는 일은 정권교체의 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017년 9월에 <국방부 적폐청산위>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후 많은 군 관계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 역시 우리 군의 문제점을 바꾸고자 진심을 다한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발상의 전환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활동 초기의 일이었다. 뭘 바꾸자고 제안하면 전부 안 되는 사유만 찾아와 나의 제안을 반대하곤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안 된다며 가져온 그 사유 하나 하나를 적극 반박하며 개념을 바꾸자고 설득했다. 그 후부터 실무자의 태도가 달라지더라. 이런 부분이 희망이었다. 더 좋아지리라 믿는 이유다."

- 책에서 "국군의 날만 되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상만 : "이 책은 모두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현역으로 군을 다녀온 아들이 자기가 생활하며 느낀 에피소드를 담았고 2장은 그런 아들을 군에 보낸 후 느낀 아버지의 심정과 지금까지 만나온 군의문사 피해 유족의 사연을 담았다. 그중에 한 에피소드에 담긴 사건인데 사연은 이렇다.

아들을 군에 보낸 후 처음 맞이한 국군의 날, 아들에게 뭔가 이벤트를 선물하고 싶었던 내가 오히려 뜻하지 않게 피해를 입힌 사연을 적은 것이다. 여기서 다 밝히면 책을 사 보지 않을 것 같아 이만큼만 여기서 공개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 책에서 그 재미있고 슬픈 사연을 꼭 읽어주시기 바란다."

"'오히려 일을 만드는 명령'을 많이 봤다"

- 책에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병사가 있어야 건강한 군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충열 : "탁자 위에서 지도를 보는 사람과 실제 야전에서 싸우는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와 같다. 지시를 내리는 간부와 그것을 이행하는 병사의 입장은 차이가 있다. 간부가 불합리한 명령, 비효율적인 명령을 내린다면 현장에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군대에서 '오히려 일을 만드는 명령'을 많이 봤다. 그런데 병사는 '까라면 까야' 한다. 결국 인력은 인력대로 쓰면서, 일은 진전이 전혀 없다.

당시 사단에서도 '생각하는 병사가 되어야 한다'고 운운했는데, 정작 간부들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을 오히려 만드는' 모 부사관은 병사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니가 뭔데?"라는 식으로 나왔다. 이래서는 군에 발전이 없다고 본다.

2차 대전 당시에 히틀러도 다 이긴 전쟁을 본인 독단으로 망친 것이 여러 번이다. 맥아더도 한국전쟁 당시에 승기를 잡았음에도 본인 독단대로 공세를 지시하여 오히려 패퇴했고 결국 불명예스럽게 군을 나가야 했다. 물론 두 지휘관이 벌여서 생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병사들에게 쏟아졌다."

- 군에 간 아들을 만나려면 '국보법 처벌 서약하라'는 군대의 요구사항과 관련한 일화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
상만 : "부대 개방 행사를 한다며 연락이 왔다. 사실 아버지로서 아들이 어떤 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기대를 안고 부대를 찾아갔는데 도착하자마자 군 부대에서 내미는 한 장의 각서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너무도 참담한 심정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각서는 내가 아들을 만나 이러이러한 잘못을 하면 처벌을 받겠다는 각서였다. 나는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에게 군이 해주는 예우가 이런 것인가 싶었고 강력히 항의했다.

아들을 만나러 온 부모가 그 아들을 만나기 전 스스로 처벌받는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면 나는 이대로 그냥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결국 군이 나에게 사과했고 그동안 다른 부모에게 받은 각서도 돌려주게 되었다. 그 사연을 담은 이야기인데 이후 국방부에 이런 각서가 정당한 것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뒷이야기는 또 책에서 살펴보시면 좋겠다."

- 책에서 군대에서 "내가 군인이 아닌 교도소의 재소자가 된 느낌이었다"고 했는데 예를 들어 설명하면?
충열 : "모든 병사들을 잠재적인 탈영자로 본다는 점이다. 휴가나 외출, 외박시에 부대 내에 꼭 연락을 취해야만 한다. 그것도 하루에 3번이나. 휴가나 외출, 외박을 어디로 가건 군법에만 저촉되지 않고 복귀만 제때 하면 그만 아닌가? 이런 감시를 하는 이유를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반면에 간부들은 굉장히 자유롭다. 병사들은 취침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간부들은 자신의 숙소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보고 컴퓨터도 한다. 또한 부대 밖으로 운동도 나갈 수 있는 등 자유롭게 산다. 그렇다고 나는 간부들의 처우를 병사급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병사들도 간부들처럼 '최소한 인간처럼' 대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왜 우리가 교도소의 재소자처럼 감시를 받고 살아야 하는가."

"위수지 폐지는 시대적 추세"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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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군인 외출외박 지역 제한 폐지(위수지 폐지)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를 권고한 당사자가 고 위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그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지 궁금하다?
상만 :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라면, 그리고 아들을 군에 보낸 후 외박 면회를 다녀온 부모라면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 원성에 대해 처음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해 9월부터 외출외박을 작은 휴가 개념으로 바꾸는 방안을 모색했다.

군부대가 위치한 지역에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처럼 자유롭게 외출 외박을 보낸 후 정해진 시간에 부대 복귀만 하면 되도록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비록 1박 2일이라도 원한다면 자기 집에 가서 엄마가 지어준 밥 먹고 잠을 잔 후 다음날 부대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외출외박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2월에 참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외박 나온 군인 3명이 모텔에 들어가 추우니 난방을 더 해달라는 말을 했다가 모텔 주인에게 폭행당한 사건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이 사실을 알고 격분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군 문화를 완전히 바꾸자는 생각으로 이 제안을 했는데 접경지역 상인들이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반발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무복무 군인이 왜 지역 상인들의 이익을 위해 정당한 자기 권리를 인정받지 않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안을 제기할 때 어느 지역에 가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지금은 화천은 화천만, 양구는 양구 군인만 대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데 이제는 다른 지역의 군인을 대상으로도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풀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군인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고 예우하여 마음을 얻으면 되는데 이런 노력은 외면한 채 엉뚱하게도 자기들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억지를 부린다. 단언하건대 군인 위수지 폐지는 시대적 추세다. 일부가 반대한다고 계속 이렇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위수지 폐지를 철회하라고 국방부 앞으로 와서 머리띠 묶고 시위하는 분들은 아셔야 한다. 이 일은 장관과 차관이 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인 병사들의 마음이다.

그들을 잘 예우하여 병사들의 마음을 산다면 위수지 폐지는 위기가 아니라 또 다른 기회가 되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은 우리의 아들이다. 그 아들에게 더 좋은 밥과 잠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면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이것이 이등병의 아빠로서 내가 해야 할 당연한 싸움 아니겠나?"

* 고상만: 1970년 경기도 판교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이후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어 왔다. 1992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석방 공대위 간사를 시작으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연합 인권위, 천주교인권위원회, 인권연대, 반부패국민연대 등에서 상임 활동가로 일해 왔다. 2002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 조사관으로 일했고 2006년에는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했다. 이후 서울특별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에서 시민감사관으로 각각 일하며 교육비리 근절을 위해 노력했고, 2016년에는 대한변협 인권위 재심법률지원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억울한 이들의 구제를 위해 노력했다.

지은 책으로는 <니가 뭔데>,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다시, 사람이다>, <고상만의 수사반장>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 2014년 국민라디오 〈고상만의 수사반장〉을 진행했고 〈김용민 브리핑〉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했다. <오마이뉴스>에서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등 다수의 기자상을 받았으며 2017년 군 의문사 연극〈이등병의 엄마〉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8년 현재 고양시 인권위원,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며, 상지대학교 외래교수로 '현대사회와 인권'을 강의하고 있다.

* 고충열: 1993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났다. 2000년 경기도 안산시 매화초, 경기도 고양시 화수중, 능곡고를 거쳐 우송대 철도경영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10월 육군 입대 후 만기 제대. 2016년부터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실(정무위)과 김영진 의원실(행정안전위)에서 입법보조원 등으로 경험을 쌓은 후 2017년 12월부터 정춘숙 의원실(보건복지위)에서 인턴 근무 중이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군대 문제 등을 기고해 왔으며, 국회에서 입법전문가로 일하는 게 꿈이다.


이등병의 아빠

고상만.고충열 지음, 내일을여는책(2018)


태그:#고상만, #고충열, #김성수, #국방부,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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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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