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 정범식 감독 정범식 감독

영화 <곤지암>의 정범식 감독. 해당 작품은 배우 7명이 직접 카메라를 달거나 들고 촬영한 영상을 활용했다. ⓒ 이정민


호러마니아들의 성지인 곤지암 정신병원에 얽힌 이야기를 영화화 하는 것에 애초 정범식 감독은 부정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제작사 대표에게 제안 받은 정 감독은 또 다른 케이퍼무비를 준비 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났고, 정 감독은 다시 제의를 받는다. 그때 구미를 당긴 지점이 있었으니 바로 '새로운 호러'를 해보자는 제작사 대표의 말이었다. 그렇게 <곤지암>이 기획됐고 완성됐으며, 오는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 새로움의 정체를 감독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7명의 호러마니아들이 폐쇄된 병원에 침투해 직접 자신들의 활약을 생중계한다는 콘셉트. 이를 위해 감독은 배우들에게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게 했다. 사용자가 실시간 중계하는 영상물은 유튜브 등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매체에서 최근 쉽게 볼 수 있는 콘텐츠기도 하다. 10대 20대를 중심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인터넷 생방송과 공포영화의 결합, 정범식 감독은 "무모했지만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체험형 공포물의 정의

이런 시도는 곧 관객들에게 실시간으로 영화 캐릭터들과 같은 경험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정범식 감독은 <곤지암>을 두고 '체험형 공포물'이라 정의했다. 이미 영화를 본 기자와 평론가들 중 일부는 이 영화를 두고 실제 영상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 것처럼 구성한 '파운드 푸티지' 장르물로 정의하기도 했다. 정범식 감독은 "보다 새로운 정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렇게 분류되는 게 맞다고 보지만 우리 작품은 병원으로 침투하기 직전까지는 파운드 푸티지 같아도 침투한 이후엔 사건이 실제 러닝타임과 같은 시간으로 제시된다. 흔들리는 카메라에 이야기가 담긴다는 파운드 푸티지가 처음엔 신선했지만 요즘엔 좀 식상한 면이 있다. 미국에선 이미 많이 만들어졌고, 이젠 소재 자체를 비틀며 다양한 작품이 나오고 있는데 관객들도 아마 거기에 익숙할 것이다. 한국 내에선 아직 제대로 된 파운드 푸티지가 나온 적이 없는데 차별성을 위해 우린 이야기 자체를 체험에 가깝게 변형시킨 셈이다." 

 영화 <곤지암>의 한 장면.

영화 <곤지암>의 한 장면. ⓒ 쇼박스


이미 영화팬들은 기성 매체보단 유튜브 콘텐츠로 정보를 접하는 세상이다. 전통적인 기성 매체의 권위가 무너지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스타 유튜버들은 이렇다 할 특별한 구성이나 서사 없이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큰 관심을 얻는다. <곤지암>도 그 특징을 차용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걸 상업영화 문법에 안착시키려 했다는 사실.

"저 역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필름에 대한 선호가 당연히 있다. 고전영화에 대한 존경심도 크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를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 전에 당연히 수용해야 하는 현상이라고 본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태도가 바뀌고 있다는 걸 충분히 감지했지. 그래서 이번 영화로 두 가지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하려 했다. 

이전 공포물은 서사에 집착했잖나. 근데 유튜버들의 먹방 영상을 보면 별거 없이도 충분히 즐길 거리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영화도 인물의 서사, 관계성을 다 빼버리고 공포물로만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서사를 단순하게 하는 대신 공포감을 주기 위한 요소를 위해 고전영화들의 방식을 차용했다. 사운드의 크기와 배치를 고민하고, 영화적 리듬을 조절하는 식이다.

영화를 기획하면서 차별화를 위해서 산 하나는 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애초부터 배우들에게 직접 촬영을 시킨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콘티 작업을 해 나가다가 이래서는 미국 영화와 다를 바 없겠다 싶어서 바꾸게 된 것이다. 작업을 마친 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마지막 말이 이거였다. '영화는 어떤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옆집 아이가 찍은 걸 영화로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 말이 그땐 체감이 안 됐는데 이렇게 플랫폼이 변하는 양상에서 확 떠오르더라. 가장 미니멀한 방식으로도 영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시도를 하는 중이다."

정리하면 서사는 젊은층이 즐기는 방식으로 단순화시키고, 공포 조성 방식은 영화적 방법을 택한 셈. 겉으로 보이는 형식과 달리 영화의 내피엔 1950, 60년대 유럽영화와 1970년대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정범식 감독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곤지암> 속 음악의 비밀

'곤지암' 정범식 감독 정범식 감독

ⓒ 이정민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다른 특징은 바로 음악의 사용이다. 많은 공포물이 괴기스러운 음향과 각종 소음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줘 왔다면 <곤지암>은 오히려 그런 인위적 음악을 최소화했다. 대신 병원 내 원장실, 실험실, 샤워실 등 공간마다 다르게 들리는 공간 소음을 살려냈다. "우리 영화는 공간이 또 하나의 캐릭터였다"던 정 감독의 생각이었다. 연극 음악과 작곡 등을 두루 공부한 감독의 특기가 반영된 지점이다. 정범식 감독은 자신의 전작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와 <워킹걸>의 일부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먼저 전한다.

"작곡을 좀 배웠던 덕에 스태프 분들과 같이 디테일을 찾아 간 것이지. 대학 진학 전에 음악을 하면서 영화를 할지, 영화하면서 음악을 할지 고민이 있었다. 결론은 후자였다(웃음). 좀 더 제가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겠더라. 이번 영화에선 앰비언트 음악(멜로디나 리듬을 최소화 한 채 공간감이 강조된 장르)을 활용하려 했다. 음악 감독님이 가장 많이 고민했지. 1데시벨씩, 한 프레임씩 조절해가면서 편집하고 믹싱을 해나갔다.   

또 (7명의 배우들에게 각각 장착된) 19대의 카메라로 찍었으니 일반 상업영화보다 4배 정도 많은 양의 소스가 있었다. 그걸 찾아내서 세공하고 보정해나갔다. 몇 배의 공을 들였다. 후반 작업하시는 여러 스태프들이 고생하셨다(웃음). 예산이 크지 않음에도 그 이상의 노력을 해주셨다."

이 지점에서 정범식 감독은 데뷔작 <기담> 음악에 얽힌 사연을 공개했다. 특유의 슬픈 정서와 영상미로 주목받은 해당 작품의 음악 역시 당시 독특하다는 평을 받았다. 정 감독은 "본래 류이치 사카모토(영화음악의 대가) 선생과 조율하다가 잘 안 돼서 한 현대음악가를 소개받았는데 그 분이 박영란 선생이었다"고 운을 뗐다.

"당시 녹음실에 모든 아티스트를 모아놓고 음 하나 하나를 다 녹음하시더라. 피아노 현을 도부터 때리게 하고, 플루트, 각종 현악기의 음 하나 하나를 녹음했다. 그 소스를 기반으로 선생께서 작업한 것이다. <기담>의 오프닝 등 몇 개 장면은 제가 그 소스를 이리저리 만져서 밤을 새서 작업하기도 했다." 

이야기 발굴가

'곤지암' 정범식 감독 정범식 감독

ⓒ 이정민


대형 투자배급사 일색의 대작이 명멸하면서 한국영화도 점차 감독의 개성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취향을 고려한 안정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만큼 각 감독 고유의 재능이나 특기가 많이 증발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영화의 하향평준화의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요즘 흐름에서 정범식 감독의 시도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엎어질 뻔했다가 급하게 맡게 된 데뷔작 <기담>부터 정 감독은 자신만의 배짱을 잃지 않으려 했다. 어쩌다보니 공포 장르를 꾸준히 보이고 있지만 그는 "공포 장르의 장점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사실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하기 전까진 제 미학이 담긴 독립영화 형태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어쨌든 2007년 기회가 닿아 상업영화로 데뷔하게 됐는데 외피는 상업영화지만 내피는 제가 선호하는 것들로 조합하려 했다. 그 이후 호러 장르에 애착이 생겼다. 보통의 상업영화였으면 제 시도가 아마 (투자사 등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러 장르는 일단 무서운 장면만 잘 만들어 놓으면 나머지 부분에선 감독이 하고 싶은 시도를 할 수 있다. 관객 분들 역시 다른 장르에 비해 보실 때 쉽게 지루해하지 않고 일단은 집중해 주신다. 그래서 그런 시도들을 선보일 수 있다. 항상 호러 장르를 할 땐 장르물로서 지켜야 할 것들과 제가 하고 싶었던 걸 접목하는 방식으로 임했다."

'곤지암' 정범식 감독 정범식 감독

ⓒ 이정민


유년시절 외할아버지에게 들었던 각종 이야기들이 어쩌면 지금의 정범식 감독을 있게 한 바탕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유학파였던 그의 외조부는 중국 고사에서 한국 민담, 심지어 일본 유학 당시 겪은 일들을 손자에게 들려주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별개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궁금했다"며 정 감독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세세하게 되묻는 편이다. 아, 난 이야기를 찾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그의 기질과 이종교배에 대한 호기심. 이변이 없는 한 정범식 감독의 작품 정체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답습보다는 그런 안 어울릴 듯한 조합을 통해 새로운 걸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그가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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