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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가운데, 마당이 없는 콘테이너 옥탑방 보인다.
▲ 만리동 전경 사진 가운데, 마당이 없는 콘테이너 옥탑방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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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상경해 처음 자리 잡은 곳은 고시원이었다. 구로구 오류동 우리고시원 44호실, 한 평 남짓 크기에 창문도 없는 방에서는 밤낮을 구별할 수 없었다. 2006년, 고시원보다는 낫지 않겠냐며, 군대에서 만난 선임이 자신의 신림동 단칸방으로 나를 초대했다. 참 고마웠다.

비좁은 단칸방이었지만 곧 선임의 고향 친구도 함께 살게 되었다. 강남, 서초, 송파구 인근에서 발레파킹(valet parking) 일을 전전하는 창석 형과, 강남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학원을 다니는 용수 형과 함께 복작복작 아웅다웅 1년을 살았다.

두 번째로 살았던 오류동의 청원고시원. 한 평 남짓한 크기의 방이지만, 첫 번째 고시원과 달리 창문이 있는 방이어서 다행이었다.
▲ 청원고시원 두 번째로 살았던 오류동의 청원고시원. 한 평 남짓한 크기의 방이지만, 첫 번째 고시원과 달리 창문이 있는 방이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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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여동생이 상경했다. 머나먼 남쪽 바다에서 태어난 우리는 왜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에 왔을까. 둘이 고시원비 18만 원씩을 내느니, 돈을 모아 전세방을 구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릴 때부터 평생 모은 돈 500만 원씩을 합해 1천만 원짜리 반지하방을 구했다.

곱등이가 뛰고 바퀴벌레 기어 다니는 공동화장실을 써야하고, 방에는 여름마다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그 지하 단칸방에서 우리는 대학을 다니고, 쉴 새 없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도 서울은 우리에게 과연 자유와 기회의 땅이었나.

여동생은 대학을 중단하고 여행을 떠나 태국에서 집시 밴드의 보컬이 됐다. 그가 종종 보내는 여행지의 엽서는, 지하방에 홀로 남은 나에게 자유와 해방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태국에서 Asto na Pai 공연 모습
▲ 예슬과 집시밴드의 공연 태국에서 Asto na Pai 공연 모습
ⓒ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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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행 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2013년 겨울 공덕역 1번 출구 경의선이 다니던 공유지에 생겨난 사회적경제 생활놀이장터 늘장에서 북카페 담당으로 일하게 됐다. 그 인연이 이어져 다음 해 봄 인근의 만리동 옥탑방으로 이사를 왔고 지금까지 4년 넘게 살고 있다.

옥탑방이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낭만적인 옥탑방과는 다르다. 평상을 놓아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마당이 없고, 좁은 건물 옥상을 막아 컨테이너 자재로 만든 방으로, 부동산법에 따르면 무허가 주거지라고 한다. 여름엔 40도가 넘는 찜통이고, 겨울엔 실내온도가 영하로 내려가기도 하는 방이다.

그래도 도시가스가 들어오니 고향 시골집에 비하면 온수를 쉽게 쓸 수 있고, 여유가 있을 때는 보일러도 세게 틀 수 있다. 관리비도 따로 없다. 혹서, 혹한기를 제외하면 나름 괜찮은 방이다.

멀리 언덕 너머로 남산타워가 보이고, 고갯길을 내려가면 서울역, 염천교를 건너면 남대문이 나온다. 40분 쯤 걸으면 서울시청이다. 남쪽 바다 섬에서 태어난 '촌놈'이 국보 1호 남대문 지척에 살다니, 이 정도면 나름 출세한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괜히 빙그레 웃어 보기도 한다.

여름엔 찜통 겨울엔 얼어붙지만 가끔은 별이 보이는 옥탑방
▲ 만리동 옥탑방 여름엔 찜통 겨울엔 얼어붙지만 가끔은 별이 보이는 옥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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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방에서 옥탑방까지 십 년이 걸렸다, 정확히는 12년이다. 1,000만 원 전세방이 2,700만 원 전세방이 되었다. 나름 열심히 일을 하며, 아끼며 살아도 생활은 크게 나아질 수 없는 세상이다. '전세대란'이라는 뉴스를 자주 듣는다. 낡았지만 저렴한 전셋집들이 사라져간다.

2000년대 초반 서울에 와서 보았던 아현동 언덕의 작은 집들과 골목들은 10년 만에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공덕동에도 아현동에도, 효창동에도 청파동에도, 삼성 래미안, 롯데 캐슬, 엘지 자이, 대기업이 만드는 아파트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서울 어디든, 경기도 어디든, 전국 어디든, 비슷비슷한 아파트 세상이다. 끔찍하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유력 정당의 후보들은 하나같이 '만리동 지하철' 준공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하철이 들어서면 땅값이 치솟고, 동네가 '개발'되어 살기가 좋아질 거라고, 그들은 말한다.

만리동 주민인 나는 '기어코' 지하철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말이 참 공포스럽다.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소위 그 '개발'이라는 것은 언제나 돈 없는 사람들을 몰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낮은 집들이 없어진 자리에 순식간에 생겨나는 아파트들
▲ 만리동 고개에 들어선 새로운 아파트들 오래된 낮은 집들이 없어진 자리에 순식간에 생겨나는 아파트들
ⓒ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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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동에 지하철이 들어서면, 개발 자본이 몰려들고, '역세권'을 광고하는 대기업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아현동 달동네처럼 옥수동 달동네가 사라진 것처럼, 만리동 달동네, 청파동 달동네도 서서히, 그리고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아현초등학교 앞 포차 거리의 상인들은 대기업 아파트가 들어선 후 주민들의 지속적인 항의로 인해 오래된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났다. 개발주의 대한민국을 평생 겪어온 만리시장 노인들은 이미 우리 동네 개발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젊을 때 얼른 부지런히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벌어' 떠나라고 그들은 나에게 충고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밀어내는 아파트 건설, 불도저 같은 개발 자본주의의 폭력이 부디 멈춰지길 바란다.

"이제 그만. 아파트 짓지마 지하철 뚫지마!"


태그:#아파트공화국, #달동네, #사라져가는것들, #재개발, #만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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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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