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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인문학> 김태영 저자
 <출퇴근 인문학> 김태영 저자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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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인문학>을 쓴 김태영은 "책을 읽는다는 게 사치이자 가식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눈코 틀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여유롭게 앉아 책을 읽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또 책이 삶에 도움이 될까.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엉뚱한 순간에 찾아왔다. 멍하니 연예 기사를 훑다가 모니터를 통해 보게 된 저자 자신의 초점 없던 눈빛 때문. "일상에 찌든 직장인, 생각 없는 중년 아재의 표본이 떡하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김태영은 생각해 봤다. 30대 중반, 이 나이쯤 되면 세상에 관해, 나 자신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그런가. 하나도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러다 늘상 봐오던 생각 없는 아저씨들처럼 되면 어쩌지. 혹, 지금 나는 시간을 잘못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회사에서 일만 하다가, 술만 마시다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문제는, 회사 생활이 재미있지도 않았다. 승진에 목매달기도, 동료들과 매일같이 어울리기도. 

초점 없는 눈빛으로 연예 기사를 훑던 저자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 책을 펴 든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그만 대기로 했다. 사놓고 모셔만 두었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 읽은 칸트 철학에 매료됐다. "인간을 절대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는 문장을 삶의 지표로 삼았다. 수단으로 다루지 말아야 할 인간에는 저자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1년에 100권의 책을 읽는 다독가가 됐다. 책을 읽을 땐 밑줄을 긋고, 밑줄 그은 문장은 옮겨 적었다. 옮겨 적은 문장에 의견을 보태 서평을 썼고, 서평은 블로그에 공개했다. 사내에 독서동아리를 결성하고, 도서관도 꾸렸다. 이어 유명인이 아니면 내기 힘들다는 서평집까지 낸 서평가가 됐다. 콕 찍어 직장인을 대상으로 서평집을 낸 김태영 저자를 3월 중순 만났다.

"50분 일하면 10분 글 생각... 회사에 있는 시간 활용"

- 서평집인데 직장인을 대상으로 냈다는 게 독특해요. 저자 본인이 직장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런 콘셉트를 생각한 건가요?
"아무래도 그래요. 책을 다 쓰고 나서 콘셉트를 잡긴 했는데요. 여기 있는 책들엔 제가 출퇴근하면서 읽은 책도 있어요. 또 제가 실제로 출퇴근하면서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요. 예전엔 버스에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요. 저희 집에서 회사까지가 종점에서 종점까지였어서 제일 뒷자리 오른쪽에 항상 앉을 수 있었거든요. 40분 정도 책에 몰입할 수 있었고요."

"속되고 거친 직장생활의 풍파에서 책이 버팀목이고, 해방구가 될 수 있음을 글로 보여주고 싶었다. 책 읽는다고 세상이 달라지냐고 말하는 이에게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도 나는 바뀔 수 있다'라고, '나를 바꾸는 일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책의 힘을 믿고 그 힘의 실천력을 믿는다." – 서문, <출퇴근 인문학>

- 정신없이 바삐 사는 직장인일수록 더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직장인이 책을 읽으면 뭐가 좋을까요?
"매몰되지 않는 것 같아요. 직장에서 십수 년 일하다 보면 눈 앞의 조그마한 세상에 빠져버려요. 매일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데, 그 사람들이 다 비슷한 생각을 하거든요. 뭔가 낯선 것, 다른 것, 다른 사람을 접할 기회가 없다 보니 어제도 오늘도 같은 생각을 하는 거죠.
책이 낯선 것, 다른 것을 보여주잖아요. 다른 생각을 하게 해주죠. 책을 통해서 매일 똑같이 반복되던 생각이나 세계에서 벗어나면 삶이 든든해져요. 경제적으로 나아지는 건 아닌데,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이 생긴 느낌이 들어서요."

- 직장 다니면서 일 년에 백 권의 책을 읽는 것만도 힘들 텐데 글도 쓰려면 시간을 아껴 써야 했을 것 같아요. 시간은 어떻게 내셨나요?
"글 쓰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저는 회사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어요. 일을 하다가 스스로 휴식 시간을 줬어요. 제 마음대로요. (웃음) 일 하는 틈틈이 잠시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 메모를 해두고, 집에 와서 저녁때 마무리하는 식으로 글을 썼거든요. 다른 사람들 담배 피우러 나가거나 커피 마시며 잡담할 때, 저는 글 생각을 했던 거죠. 50분 일하면, 10분 글 생각, 뭐 이런 식으로요. "

- 책을 읽지 않다가 읽는 과정이 쉽지 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책을 읽으려는 분들에게 '이렇게 읽으면 조금 쉬울 거예요'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의지는 있어야 할 거예요. 드라마를 보면서 책을 읽겠다, 이건 불가능하죠. 직장인 이라면요.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는 없고요. 평소에 하던 걸 안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고요.

출퇴근 시간만 잘 활용해도 한두 시간은 확보할 수 있거든요. 저는 예전에 점심시간에 밥을 빨리 먹고 인근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기도 했어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책을 읽는 재미를 본인이 느끼는 거예요.

저도 예전엔 의지로 읽었지만, 읽다 보니깐 점점 재미있어져서 이젠 어떻게 하면 책을 더 읽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전화 통화도 줄고, 술자리도 되도록 피하려고 노력하고, 1차만 하고 도망 나오게 됐어요."

"책 한 권 읽는다고 삶이 엄청나게 변하진 않겠지만"

- 책이 총 3부로 나뉘었어요. 각각 '출근길', '점심에', '퇴근길'에 읽으면 좋은 책으로 추천돼 있는데요. 나눈 기준이 뭔가요?
"출근길에 너무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읽으면 저도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출근길엔 조금 수월한 책, 점심에는 소설을, 퇴근길에는 집으로까지 이어지면 좋을 책을 골랐어요."

- 선택된 책들이 마냥 쉽지는 않아요.
"그렇죠. 제가 읽고 좋았던 책들이에요. 제가 읽고 좋았으니까, 여러분도 읽으시면 좋으리라 생각했어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삶을 놓고 벌이는 마음의 온갖 소동이다." (29쪽, <상처받지 않은 영혼>에서 재인용)

- "서평 쓴 책의 독자가 한 명이라도 늘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다"라고 말하셨는데 전 1부나 3부는 서평 그 자체만으로도 좋더라고요. 2부는 소설을 읽고 읽으면 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특히 1부 첫 번째 서평이 기억에 남아요. 마이클 A. 싱어의 <상처받지 않은 영혼>을 읽고 '평정심'을 얻으셨다고요. '평정심' 중요하잖아요. <상처받지 않은 영혼>에서 하는 말은 뭐였나요? 
"제가 너무 연연하는 거예요. 인생을 제로섬 게임처럼 살고 있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고, 10초 후가 됐든, 10분이 됐든, 1 시간이 됐든, 제 초점은 늘 미래에 꽂혀있었고요. 내가 미래에 벌어질 거라 예상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도 않는 데 말이요. 그러다가 이 책을 읽었는데요. 이 책에서 말하더라고요. '걱정하는 나'는 '나'가 아니라고요.

저는 이 말에 정말 후련해졌어요. 그래서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면 "나 또 걱정하네? 이 걱정도 곧 사라지겠네? 걱정하는 나는 나가 아니니까 잊자"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오늘 저녁부터 내일 아침 회의를 걱정하게 되는데,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잖아요. 어차피 내일 아침이 되면 잘 할 거면서, 잘 하지 못하더라고 지금 걱정한다고 더 잘 하게 될 것도 아니면서, 하고 생각하게 된 거죠."

- 첫 번째 서평이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이유는 '아, 이 서평집엔 말 그대로 진짜 서평이 실려있구나' 싶어서였어요. '본격 서평'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처음부터 이렇게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벗어나려 해도 저한테 FM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서평의 근본은 객관적인 진실을 전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느낌을 전하기 보다는요. 개인적으로는, 저는 서평으로 제 기억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줄거리를 넣어야 하는데, 줄거리를 넣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구조가 갖춰지더라고요."

- 서평 쓰는 프로세스가 궁금해요.
"보통 서평 쓰는데 8시간이 걸리는데요. 책을 다 읽으면 감명 깊었던 문장을 다 발췌해 놔요. 그 문장들 사이사이에 공간을 미리 마련해두고,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그 공간에 제 생각을 채워 넣고요. 생각을 적어 넣으면서 다른 파일에다가는 서평을 쓰기 시작해요. 이 두 작업을 번갈아 하다 보면 서평 하나가 다 써지더라고요. 서평 마무리는 보통 애들 다 자고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했고요."

- 서평의 목적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이 책을 읽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효용은 그렇고요. 개인적 효용은 책을 계속 기억하기 위해서. 서평은 책을 오래 읽는 방법인 거죠. 한 번 읽고 고민하고 쓰고 떠올려 보는 과정을 거치면 확실히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리고 서평을 쓰다 보면 또 다른 책에 흥미를 갖게 돼요. 글을 쓰려다가 막히면 다른 책을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결국 그 책을 읽게 되죠. 그래서 서평이 책을 계속 읽게 되는 원동력이 돼요."

- 책을 왜 읽어야 할까요.
"책 한 권을 읽는다고 삶이 엄청나게 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책을 읽으면 대부분 기억하지도 못하잖아요. 저는 그보다는 책 읽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순간, 내가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때론, 불현듯 예전에 읽은 책이 기억나기도 해요. 몸이 기억하는 거예요. 나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예전에 읽은 그 책이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몸으로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내가 그때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지금 이런 사고를 하고, 이런 말을 하고, 이런 생활 태도를 가질 수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될 때도 있어요."

- 책을 읽다 보면 책이 작가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예상이 돼요. 그렇다면 글을 쓰면서 달라진 점은 뭔가요?
"나를 알아간다는 것. 너무 뻔한 대답인가요. (웃음) 내가 누구인지는 쓰지 않으면 몰라요. 뭔가를 아는 것도 같은데 막상 쓰려하면 아무것도 못 쓰거든요. 이건 모르고 있는 거예요. 글을 쓰면서 깜짝깜짝 놀라요. 내가 이 정도까지 생각했어? 하며 좋을 때도 있고, 안 써지면 내가 이건 모르는구나, 하며 아쉬워할 때도 있고요. 글쓰기는 나한테 솔직해지는 방법인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걸 알고, 어떤 걸 모르고, 어떤 걸 알아야 하는지를 쓰기가 알려주는 거죠."

-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할게요.
"책 한 권 들고 다니기가 얼마나 쉬워요. 가볍게 들고 다니다가 책을 읽으면 성장하고 변화하고 성숙할 수 있잖아요. 더더군다나 서평 쓰기는 책 읽기보다 더 쉬워요. 연필 한 자루랑 종이 한 장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쓸 수 있잖아요. 여하튼, 저는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큰 재미를 느꼈거든요. 여러 분도 한 번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 이 책에서 꼭 소개되었으면 하는 문장이 있나요.
"삶은 여전히 내 맘대로 되지 않을 것이고, 예상과 기대에서 끊임없이 비껴 나갈 것이다. 그것이 삶의 속성인 걸 어쩌겠는가? 중요한 건 태도와 마음가짐이다. 닫지 않고, 힘을 빼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일을 대하리라. 삶을 밀쳐내거나 붙잡지 않고 그냥 즐기는 여유를 가지리라." 22쪽, <출퇴근 인문학>

덧붙이는 글 | <출퇴근인문학>(김태영/ 책하루/ 2018년 02월 11일/ 1만3천8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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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인문학 - 3태 타파! 3심 소환! 직장인 독서 처방전

김태영 지음, 책하루(2018)


태그:#출퇴근인문학, #김태영, #책하루, #직장인을위한서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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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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