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에는 좋은 음악이 있다. 적재적소에 곁들인 멜로디는 머릿속 자기만의 필름에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남는다. 최근 극장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성과 오락성을 모두 인정받은 영화들에서도 역시 탁월한 음악의 힘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한 경우를 만날 수 있다. 줄거리도 알고 감독도 알지만 영화 속 음악은 몰라 궁금한 이들을 위해 최근 개봉한 영화들 속 좋은 노래들을 소개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복고풍의 기묘한 로맨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속 한 장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속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음악상까지도 거머쥐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음악은 영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시리즈,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OST를 담당했던 프랑스 태생 베테랑 영화 음악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가 만들었다.

그는 1960년대 냉전 시기의 기이한 러브 스토리를 신비로운 클래식 선율과 친숙한 재즈 음악으로 풀어냈다. 메인 테마 'The Shape Of Water'와 더불어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Renne Flemming)이 부른 주제가 'You'll never know'의 오묘한 매력은 순식간에 관객이 영화에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복고의 향수는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1930~40년대 할리우드의 고전기 영화 음악과 재즈, 샹송을 통해 한층 강화된다. 스윙 재즈의 최고 스타 글렌 밀러(Glenn Miller)의 'I know why'와 유명 뮤지컬 배우 카르멩 미란다(Carmen Miranda)의 'Chica chica boom chic', 1960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La javanaise'와 이탈리아계 싱어 카테리나 발렌테(Caterina Valente)의 'Babalu'까지 놓치지 말길 바란다.


<팬텀 스레드> 라디오헤드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의 오싹하고 우아한 선율

 영화 <팬텀 스레드>의 한 장면.

영화 <팬텀 스레드>의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2007년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부터 영혼의 파트너를 찾았다. 이제는 너무도 거대한 이름이 되어버린 록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멀티 아티스트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고전 클래식과 재즈의 감성, 여기에 앰비언트의 불안정성을 가미하는 그의 음악은 내면의 욕망을 탐구하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 세계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더욱 깊은 감상을 이끈다.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팬텀 스레드>에서도 조니 그린우드의 재능은 고고하게 흐른다. 우아하고 철두철미한 드레스 디자이너 레이놀즈(다니엘 데이 루이스 분)의 세계를 고풍스러운 피아노 선율로 투영한 'House of woodcock'이 대표 테마다.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뮤즈 알마(비키 크리엡스 분)와의 팽팽한 긴장을 상징하는 'Phantom thread' 4부작은 들을수록 감탄이 나온다. 하나의 선율을 바이올린, 피아노 솔로, 장엄한 오케스트라, 비올라 독주로 각기 다르게 편성하면서 각 장면마다 역전되는 위태로운 러브 스토리를 소름 끼치게 그려낸다.


<아이, 토냐> 팝 마니아들 환호할 추억의 밴드 음악

 1994년 피겨스케이팅계 스캔들을 다룬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1994년 피겨스케이팅계 스캔들을 다룬 영화 <아이, 토냐>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1990년대 미국 피겨 스케이팅계를 뒤집어 놓았던 토냐 하딩 사건을 다룬 영화 <아이, 토냐>에서도 음악은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가난한 시골 동네에서 학대에 가까운 어머니의 훈육 하에 스케이트를 타는 토냐 하딩(마고 로비 분)은 고급스럽고 우아한 심사위원들의 취향과는 정반대로 투박하고 거칠다. 캐릭터와 시대상을 반영하듯 1970~80년대 히트 밴드들의 싱글로 꾸려진 사운드트랙은 토냐 하딩의 비극적인 성장기와 주위 인물들이 이끄는 몰락의 길을 서럽고도 흥겹게 증폭한다.

고풍스러운 클래식이나 컨템퍼러리 팝 대신 1970년대 히트한 블루스 밴드 지지 탑(ZZ Top)의 1985년작 싱글 'Sleeping bag'을 선택한 메이저대회 데뷔무대도 인상적이다. 또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배드 컴퍼니(Bad Company), 슈퍼트램프(Supertramp),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 하트(Heart)의 보석 같은 노래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중 핵심은 악당 '셀러브리티'의 기구한 삶을 아프게 환기하는 도리스 데이(Dorris Day)의 'Dream a little dream of me'다.


<로건 럭키> 고즈넉한 컨트리와 블루스, 이곳이 미국 남부다!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시작부터 정겹게 흐르는 멜로디가 전체를 지배한다. 미국 남부 열악한 하루를 살아가는 형제의 한탕 작전을 그린 영화 <로건 럭키>는 그 배경과 캐릭터를 뒷받침하는 삽입곡을 통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작품의 핵심이 되는 'Take me home, country roads'는 그중에서도 가장 저명한 곡이다.

'미국의 목소리'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컨트리 스타 존 덴버(John Denver)를 대표하는 이 노래는 2017년 개봉했던 <킹스맨: 골든 서클>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가사에 등장하는 웨스트 버지니아주를 배경으로 한 <로건 럭키>에선 아예 영화의 시작과 끝에 이 노래를 삽입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따스한 테마를 형성한다.

<로건 럭키>는 미식축구 유망주였지만 부상을 당해 막노동을 전전하는 형과 이라크에 파병되어 한쪽 팔을 잃은 동생의 어설픈 금고 털이 작전을 그린다. 영화는 레드넥(Redneck)이라 불리는 오늘날 백인 하위계층의 고난과 아픔을 소박한 유머로 전달한다. 이들을 어루만지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Take me home, country roads'로 대표되는 컨트리와 블루스 송이다.

'수지 큐'로 유명한 1960년대 블루스 밴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dence Clearwater Revival)의 'Fortunate sun'은 물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닥터 존(Dr.John), 로큰롤 밴드 마크 앤 더 에스코츠(Mark & The Escorts)와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로 전설적인 존 파헤이(John Fahey)등 다양한 곡을 통해 전원(田園)의 한적함을 강조하고 느슨한 강도 계획에 재미를 더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순수한 사랑의 열병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멜로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 코리아


10대 소년의 첫사랑 열병을 그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신비로운 테마송 'Mystery of love'으로 그 찬란함을 먼저 내비쳤다. 미국 포크 싱어송라이터이자 2000년대 인디신의 중요한 인물인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는 뜨거운 여름날 운명처럼 상대에게 빠져들며 사랑의 감정을 배우는 소년을 부드러운 목소리와 기타 선율로 연주한다.

본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수프얀 스티븐스에게 영화 내레이션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하는 대신 가장 아름다운 러브 송을 선물한 셈이다. 이 곡은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제가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영화는 각색상 부문을 수상했다.

전체 사운드트랙을 훑어보면 섬세한 감정선에 걸맞은 간결한 구성이 귀에 들어온다. 명실상부한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는 'M.A.Y in the backyard'와 'Germination'에서 가녀림과 긴장감을 오가고, 바흐와 에리크 사티(Erik Satie),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을 오가는 고전 음악 선곡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14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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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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