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 미스 마플, 그리고 코난, 김전일, 몽크까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가는 곳에서는 '언제나 살인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살인을 몰고 다니는'이라는 수식어가 이들 앞에 붙기도 할까.

이제 거기에 한 사람을 더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추리의 여왕2>의 유설옥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배방동에 살 땐 배방동에서 자꾸만 사건이 터지더니, 이제 경찰 고시 준비를 위해 노량진으로 근거지를 옮기니 그곳에서 '살인 사건'이 터져 공부를 해야 하는 그녀의 발길을 잡는다. 심지어 한술 더 떠서 '이번에는 기필코 붙으리라' 단호한 결심을 하고 떠난 기숙 학원에서까지 사람이 죽어 나가니, '살인'을 부르는 내공에 있어서는 앞서 언급한 탐정들에 밀리지 않는다.

조금만 늦어도 학생들이 빼곡히 들어차는 강의실에서 '인강'을 보는 것보다도 못한 자리에서 강의를 들어야 하는 노량진. 뒤늦게 이곳에 합류한 유설옥(최강희 분)은 골목에서 웅성거리는 경찰들과 그곳에 둘러쳐진 폴리스 라인을 보고도 두 눈을 질끈 감고 지나친다. 하지만 '범죄'가 어디 유설옥을 가만두겠는가. 겨우겨우 한 자리 차지해서 공부 좀 해보겠다고 하던 강의실까지 하완승(권상우 분)이 나타나고야 만다.

사랑의 '밀당'을 하는 분위기로 유설옥은 '지나친 관심'이라 주의를 돌려보지만, 저돌적으로 돌진한 하완승은 가장 앞자리에 앉은 윤미주를 체포한다. 팔꿈치와 신발에 확연하게 묻은 피, 도대체 피할 수 없는 이 증거 앞에서 당장 경찰 고시를 앞둔 윤미주는 '살인할 시간'도 없다며 절규한다. 하지만 그녀의 해명에 대한 답은 유치장뿐이다.

 <추리의 여왕> 시즌2

<추리의 여왕> 시즌2 ⓒ KBS2


<추리의 여왕2>는 첫 회 하완승과 유설옥의 결혼 사기 사건 잠입에 이어, 하완승이 옮겨 간 서동서에서 벌어진 방화 사건으로 두 번째 시즌의 개막을 선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즌의 장점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가정 주부 유설옥의 동네 탐정 버전은 아직 겉돌았고, 서동서의 등장인물들은 우후죽순 불협화음을 냈다.

'아파트 벽돌 투척 사건'의 변주와도 같았던 '아파트 화염병 투척 사건'은 사건 초반만 해도 마치 '어린 사이코패스'의 등장인가 싶게 의미심장했다. 그러더니 '반성-화해-교훈' 순서로 갑자기 사건이 해결되면서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해버려 아쉬움을 남겼다.

범죄와 공간의 절묘한 조합, 노량진 살인 사건 

그렇게 서주를 끝낸 <추리의 여왕2>.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듯 유설옥이 노량진에 고시생으로 등장하며 시리즈 본연의 맛을 살려내기 시작한다. 우 경감도 유설옥의 동네 주민도 없지만, 노량진이라는 동네의 '블루스'한 정서를 고스란히 사건에 투영시켜 낸다. 노량진에서 탐정 유설옥의 활약에 방점을 두며, 비로소 '추리의 여왕'다운 서사를 보여준다.

새벽 3시에 일어나야 강의실 제일 앞자리를 앉을 수 있는 노량진. 윤미주는 그곳에서 언제나 제일 앞자리를 놓치지 않던 학생이다. 그날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늦어 빠른 길로 '인강' 강의를 귀에 꽂은 채 서둘러 골목을 달린다. 그녀는 그 골목에서 '멘톨'향을 강하게 발산하던 한 남자와 부딪칠 뻔한 기억은 있지만, 자신의 발을 붙잡던 노인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이곳은 오로지 시험합격만을 위해 편재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윤미주의 독서실 책상은 오로지 시험만을 위해 그 흔한 연예인 사진 한 장 없이 정리된 사아태다. 하늘 한번 주변 한번 둘러볼 여유의 필요조차 없는 그녀는 '살인할 시간조차' 없다고 할 지경이다.

드라마는 이처럼 '수사' 이전에 시즌 1의 장기처럼 공간의 정서를 한껏 부풀어 올린다. 컵밥을 들고 걸어가면서 먹는 학생들, 누군가의 체포가 또 다른 누군가의 앞자리 '득템'으로 이어지는 무한 경쟁, 그리고 그곳에 웅크리며 살아가는 갖가지 인물들. 용의자 윤미주가 진범이 아닐 거라고 확신한 유설옥이 하완승의 수사에 참여하면서, '노량진'에 사는 사람들이 수사 선상에 등장한다.

이미 '몰카범'으로 유설옥 콤비에게 찍혔던 인물이자 공시생인 척 노량진을 배회하는 박기범(동하 분), 살해당한 노인이 운영하던 고시원의 총무 고시환, 그리고 공시생들을 상대로 돈을 모아 빌딩을 세운 노인의 유학생 손자 이인호. 노량진이란 공간 속의 인간 군상들이 사건의 용의선상에 등장한다.

결국 사건은 공시생과 노인의 손자가 모의한 사건으로 결론이 나면서 '노량진 블루스'다운 완결을 낸다. 공시생을 겁박하며 돈을 갈취하다시피 살아온 노인으로 인해 오랫동안 공들였던 기회를 놓친 공시생과 마약으로 인해 협박을 받았던 손자의 공동범행이었던 것이다.

노량진이라는 우리 사회의 무한 경쟁을 상징하는 한 공간에서 '경쟁'으로 인해 살인을 외면했던 사람이 용의자가 되고,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악의 수단을 선택한 사람이 범인이 된다. 그리고 그 '경쟁'을 부추기며 기생해 왔던 이가 희생자가 된다. 결국 드라마에서는 '경쟁의 공간' 자체가 살인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우의적 결론에 이른다. 거기에 덧붙여 혐의가 풀린 윤미주가 비로소 하늘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죽어가는 노인의 마지막 손길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신이 경찰이 될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이 질문은 곧 '수단이 목적을 삼켜버린' 노량진이란 공간에 던지는 드라마의 교훈이기도 하다.

이렇듯 <추리의 여왕2>는 노량진 살인 사건을 통해 비로소 추리의 여왕 본연의 틀을 완성시킨다. <추리의 여왕2>는 유설옥이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경찰 고시를 위해 기숙학원으로 근거지를 옮기는 것으로 시즌을 변주해 나가고자 한다. 그와 함께 '김과정'이란 의문의 인물이 부상하고, 그저 동네 제과점 사장인 줄 알았던 정희연(이다희 분)의 의미심장한 활약, 그리고 비로소 하완승의 팀장으로 등장한 우 경감(박병은 분)과 함께 시즌 2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갖춰진다.

 <추리의 여왕> 시즌2

<추리의 여왕> 시즌2 ⓒ KBS2


슬로우 스타터, 늦은 김에 시즌 3까지?

7회에서야 갖춰진 체제라니, 슬로우 스타터라도 이렇게 늦을 수가 있나 싶다. 늦은 체제와 함께 시즌2에는 여전히 남겨진 숙제가 있다. 우 경감이 등장하면서 하완승-우 경감-유설옥의 수사 라인이 갖춰지고, 이와 함께 그들의 개성 강한 조력자로 황재민 팀장(김민상)이 강력하게 부상한다. 하지만 아직도 서동서의 신장구 서장을 비롯하여 조인호 과장, 계성호 팀장, 공한민 경장, 신나라 순경까지 감초라 하기엔 씬스틸을 할 만한 조역들의 비중이 높다.

시즌 3까지 노린 야심찬 포석이라기엔 시즌2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할 눈 앞의 산이 아직 높은 상황이다. 여기서 다수의 출연진들에게 제 몫을 배정하며 유설옥-하완승 콤비의 수사극을 제대로 그려내는 것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부디 이 화려한 출연진들을 제대로 살려내 <추리의 여왕>이 공중파 미니 시리즈 최초 시즌 3까지 순항하기를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추리의여왕2 최강희 권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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