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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대화에 이어 북미 대화까지 예정돼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남북미 정상회담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대한 국회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동의를 얻어 '정상회담 합의 국회 비준'에 대한 박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위 2차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진전 상황에 따라서는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문 대통령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위 2차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진전 상황에 따라서는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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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4월 4일 오전 10시 16분]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 참석해 다가오는 남북정상 간 합의에 대해 국회 '비준동의'를 받도록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것은 남북정상 간 합의를 단순한 정치적 합의가 아닌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그렇게 해야 향후 정치상황이 바뀌더라도 정상 간 합의가 영속적으로 추진될 거라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생각만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그런 절차를 밟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청와대가 충분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파심에 그 고려사항이 무엇인지 이곳에 쓴다.

문재인-김정은 합의는 국가간 체결 조약일까

물론 문 대통령 지시에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보면 거기엔 분명히 남북합의에 대해 비준절차를 취할 수 있는 규정이 나온다. 즉, 제21조는 남북합의에 대해 대통령이 체결 비준하며 특별히 중요한 합의(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며 입법사항에 관한 것)는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도록 돼 있다.

이 조항은 남북합의에 헌법상 조약비준 절차를 적용시킬 수 있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있다고 해서 남북 합의를 반드시 조약과 같은 비준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 이 법률의 적용은 매우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남북합의를 이 법률에 따라 비준절차를 밟는 것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원래 조약 비준(ratification)이란 국가 간 체결하는 조약에서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그 기속적 효력을 인정하기 위한 의사표시이고, 국회 동의는 비준대상 조약 중 중요 조약에 대해, 비준 전에 국회 승인을 받는 절차다.

과연 남북 정상 합의를 국가 간 체결되는 조약과 같은 지위를 주어 위 법률에 따라 비준절차를 밟아야 할 것인가?

남북한은 대외적으론 국가적 실체로서 서로 인정해야 하지만, 직접 남북 간 접촉할 때는 국가 간 관계가 아닌 특수한 관계라고 했던 게, 우리 정부의 오랜 정책이었다(이것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의 명문 규정도 있다. 즉 동법 제3조1항은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개성공단을 만들 때, 그것에서 비롯되는 교류가 국가 간 무역관계가 될 수 없다고, 국제사회를 설득한 우리 정부의 논거이기도 했다.

따라서 남북정상 간 합의를 국회 동의의 대상이 되는 중요 조약으로 보고 비준 절차를 진행한다면, 남북관계에 대한 그동안의 정부 대외 정책을 수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일까?

국회 '비준동의' 받을 경우 비롯되는 불안요소

여의도 국회.(자료사진)
 여의도 국회.(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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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남북정상 간 합의를 중요 조약으로 보고 국회 동의를 받을 경우 거기에서 비롯되는 불안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실 여기에 있다. 이게 가장 우려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 합의를 조약발효 절차에 준해 비준절차를 진행하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해야 한다.

남북 정상의 합의문 서명 → 국회 비준동의 → 비준서 교환(단,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규정을 보면 비준서 교환과 같은 절차는 없는 것으로 보아 비준절차는 단순히 대한민국의 절차로만 보인다)

여기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정상회담 합의에 비준절차를 적용시키면, 두 정상이 합의에 이른 다음 서명을 한다고 해도, 그 합의는 바로 효력을 발생하지 못한다.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를 밟는 것이 예정돼 있다면 정상회담을 할 때, 합의 서명 후 국회 동의절차에 넘겨지고 그 동의 여하에 따라 효력이 발생한다고, 북에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일반적으로 조약의 경우도 국가 대표가 조약문에 서명을 한다고 해서 바로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국내 비준절차를 밟는 것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남북정상이 역사적인 합의에 서명하면서 북에 이런 조건을 달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다(북에선 김정은이 한 합의는 그 이상 다른 국가기관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사실상 최상의 규범력을 갖는 것이다). 더욱 정상 간 합의 후, 야당이 반대해 결국 국회 동의를 못 받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이것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 비준동의 절차를 추진한 걸 크게 후회할 것이다.

정쟁 대상이 돼 합의 의미를 퇴색시켜선 안 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사진은 지난 5일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 등 특사단과  면담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에 면담에 배석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앉아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사진은 지난 5일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 등 특사단과 면담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에 면담에 배석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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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생각하면, 남북 정상 간 합의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남북한 및 국제 정세에 따라 수시로 흔들릴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경우 합의에 법률적(조약적) 지위를 부여했다고 해도 그것을 상호 준수하긴 어려울 것이다. 북쪽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지키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남쪽만 법률적 효력을 주장하면서 준수를 고집할 수도 없다(그래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3조도 남북합의서를 효력을 일방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는 장치를 갖고 있다).

남북정상 간의 합의는, 비록 그것이 조약적(법률적) 합의가 아니라 해도 의미가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누가 뭐라 해도 역사적으로 엄청난 의미의 정치적 합의이며, 남북이 어떻게 실천해나가느냐에 따라, 조약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결코 정쟁의 대상이 돼 그 합의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정상 간 합의도 조약의 방법으로 체결된 게 아니다. 대부분 정상들이 정치적 합의를 한 이후 그것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조약이 체결됐다.

청와대가 역사적인 남북정상 간 합의를, 조약에 준해 국회 비준동의를 추진한다면,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런 고려와 대비 없이 접근하면 국회 비준동의 추진은 안 하는 것만 못할 수 있다. 아무쪼록 이런 우려를 충분히 검토하기 바란다.


태그:#문재인, #김정은, #남북정상회담, #국회비준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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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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