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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아. 오늘 너에게 보르헤스라는 작가가 쓴 책을 소개하려는데 넌 이 사람을 전혀 모를 게다.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를 유명하게 만든 <장미의 이름>을 읽지는 않았지만 들어는 본 적이 있을 거야. 14세기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쓴 <장미의 이름>은 영화로도 제작되었지. 네 엄마가 좋아하는 '숀 코너리'가 맡아서 더욱 유명해진 영화야.

<장미의 이름>의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격이 되어서 미안하다만 수도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은 호르헤 수도사란다. 이단으로 분류된 책을 수도사들이 읽지 못하게 하려고 벌어진 사건이었어. 오늘 내가 이야기 하려는 주제와 다소 벗어나긴 하는데 분명 호르헤 수도사가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읽게 하지 않으려고 한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이란다.

우리가 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1권은 비극을 소재로 했는데 시학 2권은 희극과 행복을 이야기 한다는 구나. 호르헤 수도사는 인간을 웃게 만들고 심지어 신을 풍자하는 희극이 엄숙히 생명인 수도원과 신학과는 상극이라고 생각한 거야.

필사적으로 수도사들이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2권을 못 읽게 한 이유지. 여기서 또 궁금증이 생길 텐데 시학 2권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책이란다. 다만 시학 1권에서 '서사시와 희극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라고 밝혔으니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2권을 썼을 확률은 높아.

<장미의 이름>의 내용처럼 소실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여기서 내가 던진 첫 질문으로 되돌아가야겠구나. 저 유명한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호르헤 수도사가 바로 보르헤스를 모델로 삼은 것이란다. 보르헤스와 호르헤 수도사는 둘 다 스페인 출신인 데다 시각장애인이고 도서관을 관리한 공통점이 있어. 호르헤 수도사가 관리하는 도서관 자체도 보르헤스가 쓴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 나오는 도서관을 모델로 한 것이야.

세계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움베르토 에코가 소설의 소재로 삼을 만큼 존경한 작가가 바로 보르헤스란다. 아빠가 너에게 말하려는 것은 보르헤스가 가진 작가로서의 위대함이 아니고 열렬한 독서가로서의 면모와 그의 독서 방법에 대한 혜안이야.

말하는 보르헤스 표지
▲ 말하는 보르헤스 표지 말하는 보르헤스 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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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지독한 독서가란다. 평생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시력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지. 물론 그가 시각장애인이 된 것은 독서 때문이라기 보다는 유전적인 요인 때문이긴 해.

보르헤스는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도 끊임없이 책을 사 자신의 집을 책으로 가득 채웠어. 읽을 수는 없지만, 책이 자신의 집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행복했던 사람이야. 독서가로서 그가 가장 선망했던 꿈을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이뤘어.

시각장애인이 된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 관장이 되었단다. <말하는 보르헤스>에는 평생을 책과 함께 산 보르헤스의 책에 대해 사랑과 독서법이 잘 나타나 있어. 그렇단다. 아빠는 보르헤스의 책에 대한 사랑과 독서법을 말하고 소개하고 싶어.


"인간이 만든 다양한 도구 중에서 가장 놀랍고 굉장한 것은 당연히 책입니다. 그 나머지는 인간의 육체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력을 확장한 것이며 전화는 목소리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쟁기와 칼은 팔을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책은 다릅니다. 책은 기억과 상상을 확장한 것입니다." 말하는 보르헤스. 11쪽.

아빠는 이 글을 인간이 쓴 다양한 책에 대한 찬사 중에서 가장 놀랍고 굉장한 것으로 생각해. 가만히 생각해보면 보르헤스가 말하는 것처럼 요즘 주목을 받는 문명의 이기라는 것이 모두 인간의 육체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아.

자동차는 인간의 발을, 인터넷은 눈과 발이 했던 기능을 좀 더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잖아. 옛날엔 발로 직접 걸어가서 다른 사람의 말을 귀로 듣고 손으로 적어서 정보를 얻고 입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던 것을 요즘은 인터넷으로 그 일을 쉽게 하잖아.

그러고 보면 책이야말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그럼 보르헤스가 주장하는 독서법을 한 번 읽어보겠니?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말 훌륭한 시를 읽을 때에는 큰 소리로 읽어야 합니다. 훌륭한 시는 작은 소리나 속으로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읽을 수 있는 건 가치 있는 시가 아닙니다. 시는 항상 큰 소리로 읊을 것을 요구합니다. 운문은 그것이 문자 예술이기이전에 구어 예술이었음을 , 또한 노래였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말하는 보르헤스. 111쪽.

1970년대 활약했던 윤형주라는 가수가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윤동주 시인의 6촌 동생이란다. 가수이다 보니 윤동주 시인의 시를 노래로 작곡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고 해. 윤형주의 생각을 들은 부친이자 영문학자인 윤영춘씨는 아들의 생각을 막으면서 이렇게 말했다지. "시도 노래다" 시가 이미 노래인데 뭐하러 작곡을 또 하려는 것이냐고 반대를 한 것이란다.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잖아? 인문서라든가 소설은 굳이 소리를 내서 읽을 필요도 없지만 시는 다른 장르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소리를 내서 읽도록 의도된 경우가 많단다. 소리를 내서 읽는 것과 소리를 내지 않고 읽는 것 중에 어떤 것이 효과적인 독서방법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아. 또 개인의 취향 문제일 수도 있지.

도윤이 네가 이제 막 글을 배울 때는 소리를 내서 읽었잖아? 어떤 내용을 학습할 때는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더구나. 또 정보가 담긴 글을 읽고 본인의 머릿속에서 체계화하고 싶을 때도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이 유리하다고 해.

반면 소리를 내서 읽으면 아무래도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단점이 있지. 음독과 묵독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시는 역시 보르헤스의 말처럼 큰 소리로 읽어야 제 맛이란다. 시는 노래니까 말이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영국 문학 교수로 있으면서, 가능한 한 문학사를 염두에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학생들이 참고 문헌을 부탁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참고 문헌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쨌거나 세익스피어는 세익스피어 비평에 관한 참고 문헌을 하나도 모르니까요." "존슨은 자기에 대해 쓰일 책들을 예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작품을 직접 읽으세요. 그 작품이 마음에 들면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만 읽으면 됩니다. 억지로 책을 읽으려 하는 것은 황당한 생각입니다. 그것은 강요된 행복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시란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시를 느끼지 않는다면,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 없다면, 여러분이 어떤 이야기를 읽고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작가는 여러분을 위해 그 작품을 쓴 것이 아닙니다. 그럼 그 책을 그냥 한쪽에 놔두십시오. 문학 작품은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을 끌 작가는 또 있습니다." - 말하는 보르헤스 219쪽.

도윤이 네가 나중에라도 아빠 서재를 살펴보면 '주석 달린 ~' 책들을 몇 권 볼 수 있을 게다. '주석 달린 오즈의 마법사', '주석 달린 안데르센 동화집', ' '주석 달린 허클베리 핀', ' 주석 달린 월든' 이런 책들 말이다. 모두 본문보다도 주석이 훨씬 더 많은 책이야. 물론 이미 읽은 고전이지만 좀 더 자세히 읽어보겠다는 포부로 산 책들인데 너한테만 고백하지만, 저 책들의 의도대로 본문과 주석을 모두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단다.

본문 양쪽으로 빼곡히 있는 주석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본문마저도 읽히지 않더구나. 주석과 참고문헌은 애초에 작가가 쓴 것이 아니잖아. 우리는 작가가 남긴 글을 읽고 공감을 하고 즐기면 그만이지 주석에 매몰되어서 읽는 즐거움을 반감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재미가 없는 책을 억지로 읽을 필요가 없다는 보르헤스의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아빠 서재를 처음 본 사람들은 감탄하면서 '와 저 책을 모두 읽으신 거에요?'라고 물으면 아빠는 대답을 잘 안 해. 그냥 빙긋이 웃을 뿐이지. 왜냐면 어려워서 읽지 않는 책이 정말 많거든.

보르헤스의 글을 읽자니 내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겠구나. 어려운 책을 억지로 마지못해서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어. 그 작가는 너를 위해서 그 책을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만이란다.

사실 아빠도 어려운 책을 그냥 덮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죄책감도 들어서 억지로 두어 달씩 들고 다녔는데 다른 재미있는 책을 열 권도 넘게 읽을 시간이잖아. 아빠가 좋아하는 소설 <나스타샤>를 읽을 때 어디 볼일 본다고 밖에 있을 때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안달이 나더구나. 독서는 항상 즐거운 것이어야 해. 보르헤스처럼 말이다.


말하는 보르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민음사(2018)


태그:#보르헤스,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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