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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을 살펴보면 종종 해당 지역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순왕후 송씨의 사릉이 있다 해서 '사능리'로 불렸으며,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궐리사가 있다고 해서 '궐동'으로 지명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석촌동(石村洞)' 역시 백제 고분인 적석총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사적 제243호로 지정된 석촌동 고분군은 하남 위례성을 도읍으로 했던 한성백제 시기의 왕과 귀족들의 묘로 추정된다.

특징점이라면 고구려에서 집중적으로 보이는 '적석총(돌무지무덤)'이 일부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1910년대의 지도를 보면 석촌동과 가락동, 방이동 일대에 300기가 넘는 고분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개발로 인해 일부만 남아있다. 오늘은 석촌동 고분군을 통해 백제는 어디에서 왔는지, 묘제 양식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와의 관계 등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적석총을 통해 살펴보는 고구려와 백제의 친연성

석촌동 고분군은 비교적 다양한 형태의 묘제 양식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적석총이다. 적석총은 고구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묘제로, 서울 한복판에서 적석총이 확인된다는 점은 고구려와 백제가 같은 출신인 것을 드러내는 지표 유물로 평가할 수 있다.

석촌동 고분군의 적석총은 출토된 유물을 통해 대략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도학 교수는 이를 두고 만주에 있던 백제의 세력이 남하를 해 조성된 것이라는 '만주백제설'의 견해를 제기한 바 있다.

석촌동 고분군 중 3호분, 넓이로는 집안의 장군총보다 더 큰 고분으로, 축조 연대를 고려하면 근초고왕의 능으로 여겨진다.
▲ 석촌동 3호분 석촌동 고분군 중 3호분, 넓이로는 집안의 장군총보다 더 큰 고분으로, 축조 연대를 고려하면 근초고왕의 능으로 여겨진다.
ⓒ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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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백제가 왕릉을 어디에 조성했는지는 <삼국사기> 개로왕조의 기록을 통해 알 수가 있다. 고구려의 첩자였던 도림과 개로왕이 나누는 이야기를 보면, '선왕의 해골이 들판에 가매장되어 있고, 홍수로 인해 백성들의 가옥이 자주 허물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즉 한강과 가까운 곳에 왕릉이 조성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지금의 풍납동토성과 석촌동 고분군 일대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도림의 말을 듣고 개로왕이 명을 내려 '욱리하(郁里河, 한강)'에서 큰 돌을 캐어 관을 만들고, 아버지의 유골을 장사지냈다고 하고 있다. 즉 돌로 만든 관이 있는 석실분 형태의 고분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옛 지도를 보면 석촌동과 가락동, 방이동 일대에 300기가 넘는 고분이 분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석촌동 고분군 안내문 옛 지도를 보면 석촌동과 가락동, 방이동 일대에 300기가 넘는 고분이 분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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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동 고분군은 1970년대 이후 강남권의 개발과 함께 발굴조사가 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당시까지 많이 남아있던 고분은 현재 일부만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석촌동 고분군이 중요하게 인식이 되는 건 한성백제 시기 왕릉으로 볼 수 있는 고분인데다, 적석총을 통해 고구려와의 관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온조왕조의 기록을 보면, 온조는 고구려에서 남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본래 부여의 출신인 주몽은 대소와 다른 왕자들의 시기와 질투에 생명의 위험을 느껴 오이, 마리, 협보와 함께 부여를 탈출했다. 이때 주몽은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정했다. <삼국사기> 온조왕조의 기록을 보면 졸본 지역에는 '졸본부여'라는 나라가 있었으며, 당시 졸본부여의 왕이 '연타발'로 등장하고 있다. 주몽은 연타발의 세 딸 중 소서노와 결혼했고, 졸본부여 왕의 사위가 되어 고구려를 개국 할 수 있었다.

석촌동 고분군 중 2호분, 고분의 주위로 지대석을 둘렀음을 알 수 있다.
▲ 석촌동 2호분 석촌동 고분군 중 2호분, 고분의 주위로 지대석을 둘렀음을 알 수 있다.
ⓒ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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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소서노는 북부여왕의 서손인 우태와 사별을 했는데, 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온조와 비류였다. 하지만 부여에 있던 주몽의 아들 유리와 예씨부인이 주몽을 찾아 고구려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온조와 비류는 왕위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결국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남하해서 한산의 '부아악(負兒嶽, 북한산)'에 올랐다. 이후 온조는 '하남 위례성'을 도읍으로 하고, 비류는 '미추홀'에 도읍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개 무덤은 그 변화의 양상이 크지 않고, 보수적인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적석총의 존재는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이와 함께 고구려와 백제의 공통된 뿌리는 '부여'로, 주몽의 출신이나 온조와 비류의 아버지 역시 북부여 해부루왕의 서손인 우태였던 것을 보면, 고구려와 백제 모두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북사>에는 개로왕이 북위에 올린 표문에서 백제와 고구려가 부여에 근원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백제의 성왕 때 국호를 '남부여'로 바꾼 점이나, 왕의 성씨 역시 부여씨를 칭할 만큼 백제는 부여 출자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온조와 비류가 올랐던 부아악, 지금의 북한산이다.
▲ 부아악 온조와 비류가 올랐던 부아악, 지금의 북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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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동 고분군 중 넓이로는 중국 집안에 위치한 '장군총'보다 더 큰 석촌동 3호분이 있는데, 적석총의 축조 연대와 규모를 생각할 때 근초고왕의 능으로 추정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적석총의 형태가 잘 남아있는 2호분과 4호분을 통해 피라미드 형태의 방형분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이외에 백제 초기의 묘제 양식인 움무덤 3기와 원형봉토분의 형태가 잘 남아 있는 5호분을 비롯해 1기의 내원외방형 묘제 등 좁은 공간에서 비교적 다양한 묘제 양식을 함께 볼 수 있다.

석촌동 고분군 중 4호분, 피라미드 형태의 적석총으로, 이와 유사한 형태의 고분을 고구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 석촌동 4호분 석촌동 고분군 중 4호분, 피라미드 형태의 적석총으로, 이와 유사한 형태의 고분을 고구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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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석촌동 고분군에서 진행된 발굴조사를 통해 초대형 적석총의 존재와 '빈전(殯殿)'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은 큰 의미가 있는 연구 과제로, 이를 통해 백제 역사의 빈 공백을 복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시기의 고분인가? 방이동 고분군의 이해

서울 석촌동 고분군과 함께 또 다른 백제 고분으로 알려진 서울 방이동 고분군은 석촌동 고분군과 달리 석실분의 형태로, 한성백제의 후기와 웅진 천도 시기에 해당한다. 대개 귀족이나 지방 세력 등의 높은 신분의 피장자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방이동 고분군의 모습, 좌우로 4기식 군집을 이루고 있다.
▲ 방이동 고분군 방이동 고분군의 모습, 좌우로 4기식 군집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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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방이동 고분은 총 8개의 고분이 자리하고 있으며, 좌우로 4개씩 군집을 이루고 있는 형태다. 그동안 백제 시기의 고분으로 알려져 왔으며, 최초 방이동 백제 고분군으로 불렸던 곳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묘제 양식이 석실분으로 확인 되었으며, 현재 1호분을 통해 석실분의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다.

2호분과 3호분의 경우 미발굴 상태였으나, 이 중 3호분은 발굴조사가 진행이 되어 그 결과가 주목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분이 도굴을 피하지 못했고, 출토 유물 역시 미미한 편이다. 이마저도 백제의 유물보다는 신라의 유물이 더 많이 출토가 되고 있어 방이동 고분군을 백제의 고분으로 볼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방이동 고분군 중 1호분의 내부, 석실분의 형태를 직접 볼 수 있다.
▲ 방이동 1호분 방이동 고분군 중 1호분의 내부, 석실분의 형태를 직접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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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백제의 고분으로 알려졌지만, 발굴조사를 통해 그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지금은 명칭에서 백제가 사라진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서울에 남아있는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을 통해 한성백제 시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인근의 풍납동토성과 몽촌토성과 함께 둘러보면 좋은 역사의 현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포스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백제역사문화, #석촌동 고분군, #적석총,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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