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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이 강원도 교육 현장을 찾아가 직접 취재해서 작성한 것입니다. 민 교육감은 틈나는 대로 기사를 작성해 올릴 계획입니다. 민 교육감은 기사쓰기를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자신이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더 많은 교육 구성원들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편집자말]
이 반 아이들은 정말로 글쓰기를 좋아하고, 선생님을 좋아한다. 비결이 뭘까?
▲ 탁샘과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 이 반 아이들은 정말로 글쓰기를 좋아하고, 선생님을 좋아한다. 비결이 뭘까?
ⓒ 민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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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힘들지 않아요?"

"왜 힘들어요? 그냥 쓰면 되는데..."
"재밌고, 신나고, 설레요."
"내가 쓴 글이 작품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해요."
"서운한 일, 기뻤던 일, 우울했던 일을 파고들게 되고, 화난 마음도 다 풀어져요."

이처럼 신통방통한 대답을 하는 아이들은 다름 아닌 강원도 양양의 상평초 4학년 학생들. 이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 이름은 탁동철, 흔히들 '탁샘'이라고 부른다. 글쓰기 영재반도 아닌 탁샘 반 아이들이 이처럼 글쓰기를 좋아하는 비결은 뭘까?

최근 한글교육책임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우리 교육청에서는 다음 단계로 교과 수업 시간에 '제대로 읽고 쓰기'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특히 '글쓰기'는 사고력을 담는 그릇이다. 당연한 것 같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글쓰기 교육에 대한 많은 방법론이 있지만, 요새 아이들은 '글 쓰는 즐거움'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평이 많다.

조언을 듣고 싶어 찾아간 길, 탁샘에게서 기대보다 더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새 학년 시작,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귀담아 듣는 일로부터

교사들이 가장 바쁜 3월 초, 탁동철 선생님은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갑작스러운 교육감의 방문에 당황하면서도 조곤조곤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의 모습들이 하나 둘 그려졌다.

"3월 첫 날 올해 해보고 싶은 걸 아이들한테 물었더니, 자전거여행, 배낭여행, 낚시하기, 강아지랑 고양이 키우기를 하고 싶대요. 하고 싶다는 것, 말 안 들어줄 까닭이 없잖아요. 대신 교과 공부와 알맞게 연결을 시켜야죠.

배낭 메고 양양의 바닷가 마을, 농촌 마을, 산골 마을 돌아다니려면 사회시간에 지도 보는 법, 지역의 역사, 고장의 지형 공부해야 할 테고, 강아지 키우려면 집 지어야 하니까 곱셈 나눗셈 도형의 각도와 넓이 배워야 하고, 망치질 톱질 배워야 해요. 개 사료 사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까 텃밭에 농사지어야 하고, 농사지은 것 팔아야하니 계산 공부도 해야 하죠. 아이들이 공부해야 하는 까닭을 찾아주고, 생활을 어떻게 학습으로 이어갈지 잘 찾아보는 중이예요."

탁샘의 수업에서는 삶과 공부가 분리되지 않는다. 그것을 존중해주는 교사의 자세와 학습으로 연결하는 교사의 전문성.
▲ 아이들과 함께 배낭여행 탁샘의 수업에서는 삶과 공부가 분리되지 않는다. 그것을 존중해주는 교사의 자세와 학습으로 연결하는 교사의 전문성.
ⓒ 민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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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교육과정이 탁동철 선생님과 만나 개구쟁이 아이들의 삶 속에서 흥미진진하게 재구성된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학습'을 활용하는 것 - 그야말로 진정한 학생중심 교육과정이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수업을 펼쳐내기가 그리 녹녹치 않을 것 같아 던진 우문에 현답이 돌아온다.

"쉽게 되지 않으니 공부 아니겠어요. 고민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고 방법을 찾아가면서 하는 거죠. 요즘은 예전보다 선생 노릇하기 참 좋아졌어요. 돈 관리는 행정실에서 해주고, 교무행정사가 따로 있어서 공문 처리를 대신 해주죠. 청소하는 분이 화장실 청소를 해줍니다. 예전에는 늘 불안했죠. 내가 미처 못해낸 공문은 무엇인지, 내가 잊고 있는 사무는 없는지. 문서 작성 틀리면 교장 교감한테 불려가 혼났고, 걸핏하면 교육청 장학사한테 공문 독촉 전화를 받았어요. 

요즘은 학교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선생님은 업무보다는 수업연구를 하라고 하고, 각각의 교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개성대로 교육활동을 펼쳐보라고 하고, 놀이가 중요하다며 아이들이랑 잘 놀아보라고 합니다. 그 무엇보다 아이들을 우선하라는 원칙이 있으니 큰 힘이 되죠."

탁샘같이 느끼는 선생님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물론 그렇지 못한 학교 이야기도 계속 듣는다. 학교업무정상화를 더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
▲ 교사 노릇 하기 수월해졌다? 탁샘같이 느끼는 선생님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물론 그렇지 못한 학교 이야기도 계속 듣는다. 학교업무정상화를 더 정교하게 진행해야 한다.
ⓒ 민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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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말이 글이 됩니다. 잘 들어주고 멋지다 해주세요"

아이들이 발 딛고 서있는 곳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탁동철 선생님. 아이들 말이 세계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그의 교육 철학은 어떻게 글쓰기 교육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글은 말에서 시작해요. 아이들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말하죠. 아이들의 말에 '잘 들었다', 아이들 손으로 한 일에 '멋지다' 해줘요. 아이들이 성공의 경험을 자주 쌓을 수 있도록.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아이들은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 한 일을 귀하게 여기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죠. 더 자세히 보려 하고 더 귀 기울여 들으려 해요. 그것을 기억하려 하고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죠."

그는 아이 하나, 하나의 자리를 찾아주고 인정해주는 일이 글쓰기 뿐 아니라 모든 교육의 핵심이라 말한다.

"남보다 못하거나 느린 아이는 느리기 때문에 보는 게 있어요. 전깃줄 위 빗방울을 보고 개 밥 그릇에 빗물이 고이는 걸 보아요. 폭력성이 있거나 날카로운 아이는 순간적으로 무당개구리가 물에서 대가리를 얼마큼 내놓았는지를 또렷하게 보아요. 아이들마다 보는 힘이 달라요. 공평하죠. 다그친다고 나아지지 않아요. 사납고 느린 것도 개성으로 인정해주면 자기 자리를 찾아가요."

이 아이들은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자기 말을 글로 옮기는데 두려움이 없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
▲ 거침 없이 쓰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자기 말을 글로 옮기는데 두려움이 없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
ⓒ 민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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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중요하다면서 글쓰기를 싫어하게 만드는 습관들

자기 자리가 분명하게 있는 아이라야 남의 자리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기에, 탁동철 선생님은 아이들이 자기 것으로 말하고, 듣고, 쓰게 해주자고 조언한다.

"글자를 모르는 것보다 표현할 내용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글자 틀리게 쓰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 때문에 표현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죠. 마음대로 말하게 하고, 말 나오는 대로 쓰게 하고, 이런 식으로 글자를 쓰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 글자 모르는 문제는 보통 쉽게 해결됩니다. 흔히 학교에서 받아쓰기 하는 내용만 보더라도 아이들과는 상관없는 문장들이예요. 급수대로 아이를 끌고 가서 고치겠다고 다그치는 것이지요.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받아쓰기. 받아쓰기도 나름의 기술이 있겠지만, 정해진 급수에 따라 수없이 반복하고 암기만 하다가 글쓰기와 멀어지는 아이들이 많다. 배우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해야 하지만 글을 잘 쓰게 하겠다는 목표가 그 과정을 힘들게 만들어버리는 전형적인 예다. (비단 글쓰기 교육만의 문제는 아닐 터)

"글쓰기 교육의 목표를 '잘 쓰는 것'으로 두면 안돼요. 아이들이 글쓰기가 얼마나 즐거운가는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을 글쓰기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해요. 밭에서 일하는 것과 비슷해요. 땀 흘려 일하는 것의 소중함을 가르치겠다며 아이들한테 일만 시키면 아이들은 일을 싫어하게 됩니다. 일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망쳐도 된다. 풀밭이 되어도 좋다. 너희가 심고 가꾼 걸로 요리해서 먹을 거고 너희가 농사지은 것 팔아서 돈 벌 거다.' 그러면 아이들은 교실보다는 밭으로 먼저 출근할 겁니다. 글자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죠. 아이들 글의 쓸모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말이 그 둘레를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이게 해요"

더 자세히 듣고 싶어지는 탁동철 선생님의 소소하고 진솔한 학교 이야기는 그가 쓴 책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탁 선생님은 <달려라 탁샘>, <하느님의 입김> 두 권의 책을 냈다) 그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어떤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책을 쓴 것은 아니에요. 아이들이랑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한 내용들이예요. 이야기를 모아보니 한 아이의 말이 둘레를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이는 이야기, 가르치지 않고 가르키는 이야기, 민주주의 이야기 이렇게 모아지네요."

탁샘 반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말이 되고, 글이 되고, 책으로 엮인다. 아이들이 살아간다. 공부한다.
▲ 신이 난 아이들 탁샘 반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말이 되고, 글이 되고, 책으로 엮인다. 아이들이 살아간다.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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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탁샘을 그렇게 표현했다. '선한 눈, 수줍은 모습, 꾸미지 않은 매무새에 머리털 쥐어뜯으며 비틀비틀 저 혼자 힘들어할 뿐 누구를 미워할 줄 모르는 선생님'. 만나보니 정말로 딱 그런 탁샘에게 강원도 선생님으로 힘든 점은 없는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산이 있고 들이 있고 바다가 있는 곳, 물 좋고 공기 좋은 곳, 자연이 살아있는 이곳 강원도가 아이들 가르치기에 가장 좋은 곳 아닐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들이 공부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교사의 전문성을 맘껏 발휘하는 곳, 그곳이 강원도 학교이길 바란다.

"선한 눈, 수줍은 모습, 꾸미지 않은 매무새에, 머리털 쥐어뜯으며 비틀비틀 저 혼자 힘들어할 뿐 누구를 미워할 줄 모르는 선생님" 누군가의 소개가 딱 들어맞는 선생님.
▲ 탁샘과 함께 "선한 눈, 수줍은 모습, 꾸미지 않은 매무새에, 머리털 쥐어뜯으며 비틀비틀 저 혼자 힘들어할 뿐 누구를 미워할 줄 모르는 선생님" 누군가의 소개가 딱 들어맞는 선생님.
ⓒ 민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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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아이의 글 하나만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2학년 때 수도권 어느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다가 시골 할머니네 집에 와서 살려고 전학 온 아이가 있었어요. 부모가 이혼하면서 심하게 다퉜다고 하구요. 이 아이는 자기가 힘드니까 다른 아이를 괴롭히기도 하고 잘 삐치고, 선생님들한테 야단맞는 게 일이었어요. 공부는 못 했지만 시 쓰는 걸 좋아했고,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이 아이는 나중에 대안고등학교를 갔어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 해요. 다들 자기보다 더 힘들더라고. 다른 아이들 말 들어주고 마음도 풀어주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남의 마음 읽고 이해하는 힘이 또래들 중 누구보다 크고 강했던 거죠. 열심히 돈 벌어서 생활 꾸려가고 있어요. 가끔 연락이 옵니다. 얼마 전에는 여자 친구 생겼다며 데려와 인사도 시켰구요. 그 아이가 썼던 글입니다."

할머니 콩
                     -최OO

할머니가 바쁘게 감을 깎는다.
안방에 할아버지가 꾀병처럼 쇼를 하며 누워있다.
할머니가 말했다.
"내일 비 오니깐 저기 우리 창고에 콩 좀 비닐로 덮어."
할아버지는 들은숭만숭
할머니의 말을 씹는다.
정택이가 할아버지가 씨끄럽다 했다고 전해주니깐
할머니가 말을 한다.
"이미 XX, 감을 죽어라 깎는데
저 영감탱이는 능구렁이처럼 퍼자네.
아유우 XX."
그러고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안방문 열었다 닫았다 하며 싸운다.
문이 열릴 때마다 욕이 나온다.
그날 할아버지 혼자 따로 잤다.

(XX는 편집자 삭제)

추신. 탁동철 선생님과 강원도 선생님 몇몇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학교 종이 땡땡땡>에 출연 요청을 받았다. 갑작스런 인터뷰에 응해주었으니 무조건 나와야 한단다. 선생님들과 나누는 학교 이야기, 그 어떤 인터뷰보다 즐거울 것 같다.


태그:##강원도교육감, ##민병희, ##강원도교육청, ##탁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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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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