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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아파트 투기가 불붙고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강력한 토지공개념제도의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발언했다. 실제로 그는 임기 중에 종합부동산세 도입, 개발이익환수제도 강화, 개발규제 강화 등 토지공개념 성격이 강한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기득권과 용감하게 싸웠던 노무현 대통령도 공식적으로 토지공개념을 도입한다고 선언하지는 못했다.

노무현을 능가하는 전략가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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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정부 개헌안을 발표하면서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목적도 분명히 밝혔다. "토지에 대한 투기로 말미암은 사회적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토지공개념의 핵심 정책인 부동산 보유세 강화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서 정말 답답했다. 한참 답답하게 만들다가 엄청난 감동을 주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특기인 모양이다.

자유한국당은 사회주의 헌법이니 뭐니 하면서 대통령의 개헌안을 부결시키려 하겠지만, 설사 이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한국 사회는 토지공개념 논의를 회피할 수 없다. 유턴이 불가능한 도로 위에 올라선 셈이다. 토지공개념을 압도할 수 있는 논리를 새로 개발해서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는 한, 실제 개헌이 이뤄질 때까지 토지공개념은 계속해서 수많은 논의의 테이블 위에 주요 의제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일부 인사들이 생각하듯이 문재인 대통령은 본인이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이든지, 그런 사람을 측근에 두고 있든지 둘 중 하나인 듯하다.

토지공개념이 필요한 이유

토지와 자연자원은 사람이 만든 물건과는 성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천부자원이어서 공급이 고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위치도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 수요가 생긴다고 해도 그 위치에 필요한 만큼 공급할 수가 없다.

토지의 특성들 가운데 공급고정성은 특히 중요한데, 그로 인해 노동과 자본, 그리고 일반 생산물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특이한 경제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더 가지면 다른 사람들의 소유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토지 소유는 제로섬 게임이며, 따라서 원래부터 독점의 성격을 갖는다.

일반 생산물이나 자본의 경우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이 따라 증가해서 사회 전체의 복지를 증가시키지만, 토지는 공급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요 증가가 오로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토지 소유자만 이익을 본다. 이 이익은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얻는 불로소득이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과 헨리 조지가 지대에 무겁게 세금을 부과하여 공적으로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에는 3800만 개의 토지 필지가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것들이 면적이나 모양, 위치나 환경 면에서 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개별성이다. 이 성질 때문에 일반 생산물에 적용하는 수요-공급의 원리는 토지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한 토지단위는 다른 토지단위들과 붙어 있어서 한 곳에서 행하는 경제행위가 필연적으로 인근 토지에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연접성이다. 이 성질 때문에 토지시장에서는 이른바 외부효과의 문제가 일상화되는데, 이는 시장에 맡겨둬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일반 생산물이나 자본은 시간이 지나면 물리적으로 마모되고 경제적으로 감가되지만, 토지는 시간이 가도 물리적으로 마모되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감가되지도 않는다. 영속성을 갖는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사용하는데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토지 외에 없다. 그 때문에 토지는 가치저장 수단으로 활용되기 쉽고, 적절한 제도를 마련하지 않으면 투기의 제물로 전락하기도 쉽다.

천부성, 공급고정성, 위치고정성, 개별성, 연접성, 영속성 등 토지의 특성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토지의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면서도 일반 재산에 비해 강한 공공성을 함께 규정하는 것은 바로 토지가 갖는 특성들 때문이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제헌헌법에서부터 재산권의 사회적 구속성을 규정했고, 현행 헌법에서는 소위 '토지공개념 조항'(제122조)을 두어 토지 재산권에 대해서는 일반 재산권에 비해 더 강한 사회적 구속성이 인정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공개념을 구현하기 위한 정책이 시행될 때마다 위헌 논란이 붉어졌고, 실제 주요 법률들이 위헌 판정이나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아서 무력화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헌법재판소는 여러 판결에서 토지공개념 정신을 총론적으로는 일관되게 지지하면서도, 과세 기술 등의 문제를 들어 세부 규정에 위헌 또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일부 언론은 이를 빌미로 '토지공개념은 위헌'이라는 거짓 정보를 줄기차게 유포했다. 국민들 사이에 '토지공개념은 위헌'이라는 착각이 만연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9년을 집권한 새누리당(한나라당) 정권은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개발이익환수 완화 등 반(反)토지공개념적 정책을 적극 추진하여 착각을 강고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헌법 정신과 실제 정책이 심각하게 괴리되는 모순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토지공개념 외면의 결과는 지대추구 사회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21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지방분권'과 '경제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21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지방분권'과 '경제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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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공개념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경제적 결과는 심각하다.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으며, 토지 불로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내가 몇 사람과 함께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07~2015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부동산 소득은 GDP의 30%를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노력소득 때문에 불평등이 심해져도 문제인데, 불로소득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이다.

부동산 투기는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과 기업가들의 기업심을 저해하고, 경쟁력을 갖춘 사람들의 창업을 방해하며, 지가 상승기 건설 부문을 중심으로 과잉투자를 유발하고, 금융시장에서 자금 배분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등 경제 효율을 저해하기도 한다. 작금의 저성장과 경기침체는 한국 정부가 토지공개념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아서 초래된 측면이 다분하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농지개혁에 성공함으로써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사회를 실현했었다. 1960년대 이후 장기간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것도 농지개혁이 실현한 평등의 힘 덕분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개발 붐이 일면서 여기저기서 부동산 불로소득의 기회가 생겨났고, 국민들이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면서 대한민국은 노력소득이 중시되던 활력 넘치는 사회에서 지대추구 사회로 변질되고 말았다. 밤낮없이 일하고 사업해서 소득을 얻고, 그것을 아껴 저축해서 재산을 불리거나 자식 교육에 몰두했던 한국 국민이 어느 사이엔가 강남 불패와 부동산 불패를 신봉하며 불로소득을 탐하는 베짱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은 투기와 불로소득을 차단할 수 있는 법률과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거나 도입했다가도 끝까지 지속시키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로 계속 가면 불평등은 한층 심화되고 저성장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종국에는 사회가 몰락할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도 '지대추구의 덫'을 걷어내지 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토지공개념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가 위태로워지는 단계에 왔는데, 현행 헌법으로는 역부족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 향한 길 끝까지 걸어가시라

대통령 개헌안의 토지공개념 조항은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2006년 8월 토지정의시민연대가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기하자는 주장을 우리 사회에서 최초로 제기할 때 제안한 내용은, 헌법 122조를 "①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를 효율적이고 균형 있게 이용·개발·보전하고 투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토지공개념 등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구체적인 수단은 시장친화적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로 개정하는 동시에, 제119조에 "국가는 토지와 천연자원으로부터 소유자의 생산적 노력 및 투자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이익을 환수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항을 신설하자는 것이었다.

나도 최근 한 논문에서 제122조를 다음과 같이 개정하여 토지공개념을 명기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①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보전을 도모하고 토지 불로소득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은 시장친화적인 것을 우선한다.
③ 제1항과 제2항은 국토 외의 자연자원과 환경에도 적용한다.


그런데 아무렴 어떤가? 목적이 일치하고 뜻이 같으니 쌍수 들어 환영할 따름이다. 나는 2017년 8월 19일자 <오마이뉴스 칼럼> '부동산 공화국' 해체하는 방법, 정부는 외면 마시라'에서 이렇게 썼다.

"감히 문재인 대통령께 권면한다. 부동산 공화국을 해체하여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진정 공정하고 공평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길은 활짝 열려 있다. 이 길은 노무현 대통령이 종부세의 깃발을 들고 가보려 했으나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끝까지 가지 못하고 좌절한 길이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의 깃발을 들고 그 길 끝까지 걸어가시라. 그 길 끝에는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나 같은 백면서생과는 생각의 차원이 다른 모양이다. 몇 가지 정책 따위가 아니라 근본 철학의 깃발을 들고 가려 하니 말이다. 대통령이 먼저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향한 걸음을 뗐다. 이제 국민이 호응할 차례다.

덧붙이는 글 | <허프포스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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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헨리 조지 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