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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에 큰 의미를 두고 살아오지는 않았다. 당연한 듯 미역국을 먹고, 선물을 받고,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 더 커서는 '또 한 살 먹는구나' 하면서 지나가고….

엄마가 되고나서는 내 생일보다 오히려 아이의 생일을 보내면서 나의 나이듦을 돌아보게 되었다. 강아지 발처럼 조그맣던 아이 신발이 내 사이즈를 앞지른 길쭉한 신발로 변해가는 것을 볼 때면 대견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울 엄마도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우리의 생일이면 집 떠난 우리를 그리워하고, 당신의 나이듦을 안타까워 하셨을까?

한 해 한 해 아이의 생일을 보내고, 별 기억조차 없이 흘려보낸 수많은 내 생일을 뒤로 하고서야 생일이 갖는 의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 '내 생일은 나를 낳으시느라 고생한 우리 엄마를 위한 하루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낳느라 고생한 엄마를 위한 하루

한 해 한 해 아이의 생일을 보내고, 별 기억조차 없이 흘려보낸 수많은 내 생일을 뒤로 하고서야 생일이 갖는 의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해 한 해 아이의 생일을 보내고, 별 기억조차 없이 흘려보낸 수많은 내 생일을 뒤로 하고서야 생일이 갖는 의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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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준비를 한다. 미리 전화해서 '엄마, 나 11시 기차 타고 갈게'라고 말한다면 '힘들게 뭐 하러 오냐' 하실 분이다. 전화는 도착할 즈음에 하기로 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SRT를 타고 엄마 집에 도착해서는 '엄마, 내가 미역국 끓이고 김치볶음밥 해서 점심 차려드릴게. 좀 있다 바로 갈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잠깐 있을 거면 뭐 하러 왔냐? 그 비싼 기차까지 타고' 하실 것이다. 차라리 '나가서 사 먹자'고 하실지도 모른다. 엄마가 말리실 수 없도록, 만들어 가기로 한다.

평소보다 미역국을 좀 더 뻑뻑하게 끓인다. 양지에 불린 미역을 넣고 볶다가 멸치육수를 붓는 것까진 비슷하지만, 맑은 국물보다 미역건더기가 다발처럼 딸려 올라와서 몇 숟갈 뜨자면 손목이 아파올 것 같은 미역국. 다른 재료들 틈에서 다진 마늘 냄새가 확 올라오는 마늘 반 미역 반으로 이루어진, 미역을 한없이 건져먹어야 겨우 국물 한 숟갈 구경할 수 있는 밀도 높은 미역국이 바로 우리 엄마의 스타일이다. 국물이 적지만 적은 만큼 한없이 진한,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 없는 미역국이 완성된다. 

햄, 소시지, 베이컨 등 가공식품은 사지도, 드시지도 않는 우리 엄마 덕분에 각종 볶음밥을 좋아하시는데도 60년 가까운 결혼생활 동안 볶음밥을 거의 드시지 못한 우리 아버지를 위해 햄을 넣은 김치볶음밥도 준비했다. 건강하고 좋은 재료 대신 평소 못 드셔보신 햄을 데쳐서 김치랑 한데 볶았다.

김치찌개, 김치 전골, 김치 찜, 김치부침개, 김치로 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을 두루 섭렵하시면서도 김치볶음밥은 드실 수 없었던, 그렇다고 손수 음식을 해 드시는 분도 아니라서 다른 집에서라면 아무 때고 먹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김치볶음밥을 아버지를 위한 메뉴로 준비했다.

집에 안 계시면 경비실에라도 두고 올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전화를 받으신다.

"엄마, 나 ○○역. 지금 엄마집에 가는 길!"
"뭐어? 여기 왔다고?"

반가움과 놀라움이 겹친 목소리가 핸드폰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다.

"그것보다 점심 먹었어? 안 먹었지?"
"교회에서 막 먹고 왔지."
"이제 1시인데 벌써? …. 그럼 아버지는?"
"사우나 갔다. 한번 가면 한 3시간씩은 있다 오셔."

아무래도 점심이 아니라 이른 저녁을 먹게 생겼다. 

현관문을 여니 볼륨을 높여놓은 TV 소리가 엄마보다 먼저 나를 맞이한다. TV를 보시면서 양말을 개고 계셨다. <인간극장>과 <나는 자연인이다>를 합쳐놓은 듯한 프로그램이다.

켜놓은 TV도 잊으신 채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혹은 낮잠을 주무시기 전까진 끝나지 않을 엄마의 옛날 이야기. 집중해서 들어도, 올 때마다 들어도 늘 헷갈리는 대 서사시이다.

나이 드신 친척 어르신들과 그분들의 생로병사, 그 자제 분들 사는 이야기, 이웃사람, 특정사건에 관련된 사람들까지 수십 명이 등장한다. 엄마가 태어나던 해인 1938년부터 8.15 광복, 6.25때 미숫가루 만들어 산으로 피난 간 이야기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부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근의 사건들까지 80년의 역사를 종횡무진 하시기 때문에 난이도는 최상급이다.

다행히 아버지가 예상보다 빨리 오셔서 엄마의 옛날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그래도 저녁을 먹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교회 일정에, 사우나에 피곤해지신 아버지는 나를 잠시 반기시더니 낮잠을 자러 들어가시고, 엄마는 하다만 옛날 이야기를 마저 이어가시다가 소파에서 잠이 드시고, 잠이 오지 않는 나는 엄마의 안마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오늘 오지 않았더라면 전화기 너머로 사라져버렸을 내 부모의 오후 한때를 지금 내가 함께 하고 있다. 꼭 미역국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일 없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참 좋구나 싶었다.

직접 만든 김치볶음밥, 부모님은 말이 없었다

김치볶음밥 위에 노른자가 익을랑말랑한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끓여온 미역국에 들깨가루를 넣어서 다시 끓였다
 김치볶음밥 위에 노른자가 익을랑말랑한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끓여온 미역국에 들깨가루를 넣어서 다시 끓였다
ⓒ 이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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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쯤 지나서 두 분 다 일어나셨다. 이미 다 만들어온 거니까 데우고 담기만 하면 된다. 평범한 음식이지만 이렇게 내 생일에 와서 내 부모에게 음식을 차려드린다고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좋은 걸, 그동안엔 왜 생각을 못했을까?

김치볶음밥 위에 노른자가 익을랑말랑한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끓여온 미역국에 들깨가루를 넣어서 다시 끓였다. 접시에 예쁘게 담아 상을 차렸는데, 웬일인지 두 분 다 별 말씀도 없이 드시기만 하신다.

'별로구나. 좀 더 간을 세게 할 걸 그랬나?'

혼자서 두 분의 표정을 살피면서 밥을 먹는데, 반쯤 드시고는 아버지가 "맛있게 먹었다"고 "이건 그냥 김치볶음밥이 아니다"고 말씀하셨다. 양이 많은 것인지 두 분 다 남기셨지만, 엄마, 아버지도 뭔가 들뜨신 것 같았고, 생전 받아보지 못한 딸 생일의 미역국 선물에 감동하신 듯했다.

그리고 기차를 타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내 생일에 대해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난 날 새벽에 날씨는 어땠는지(음력 1월, 징그럽게 추웠다고 하심), 미역국은 누가 끓여주었는지(나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태어났고, 엄마의 육촌언니가 나를 받아주었는데, 이 분이 끓여 준 것 같다고 기억하심), 위로 언니들도 있는데 내가 또 딸이어서 아버지는 서운하지 않으셨는지(두 번을 물어도 그건 아니라고 하심^^),

내가 태어나던 순간에 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유일하게 두 분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인데, 엄마는 아버지가 '식당 방[부엌 옆에 딸린 조그만 방을 그렇게 부르신다]에서 잤다'고 하시고, 아버지는 '나도 뭐라도 했을 것이다'고 하심), '뭔지 모르게 흥분돼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수선하게 몰려다니던 기억이 난다'는 언니의 얘기까지. 나의 출생과 관련된 가족들의 기억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치 태어나던 순간을 내가 기억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빛바랜 민트색의 철제대문을 열면, 가운데 조그만 마당이 있고, 왼쪽에 부엌 문과 통하게 되어있는 식당방, 정면에는 안방과 ㄱ자로 된 마루가 있고, 오른쪽으로 기다란 방이 있다. 그 기다란 방에서 엄마는 밤새 진통을 하시고, 이모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나를 기다리느라 뜬 눈으로 밤을 보내신다.

아버지가 마당에서 서성이는 소리가 들리고, 안방에 모여있는 언니들도 깊은 잠을 이루지는 못한다. 새벽 5시가 다 되어서야 세상 밖으로 나온 나를 이모가 조심스레 안아 엄마에게 보여주고는 준비해 놓은 따뜻한 물에 씻겨주신다….

유출되면 안 되는 개인정보이자 신분증에 박힌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일 속에는 내가 세상 밖으로 첫 여행을 시작하던 날의 차가운 새벽공기와 데워놓은 물에서 피어오르던 김, 쌓여있던 수건들의 촉감과 따끈한 아랫목, 어수선하고 뭔가 들뜬 그날의 집안 분위기, 무엇보다 엄마와 아버지의 오랜 기다림이 함께 들어있다.

며칠 뒤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니들이 밥을 너무 되게 먹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김치볶음밥을 질게 하면 그게 죽이지, 밥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말없이, 천천히 드셨는지,  맛있다고 하시면서도 왜 절반이나 남기셨는지…. 평소 진밥을 자주 드시는 부모님께 눈치 없는 딸은 나한테나 먹기 좋은 된밥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드린 것이다.

나혼자 한그릇을 비우는 동안 빨리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었던 부모님은 절반을 겨우 드시고는 딸이 맘 상할까봐 식사 내내 침묵을 지키셨던 것 같다.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자식은 부모를 부양하려 하나 부모는 연로하여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더니. 볶음밥을 좋아하시지만 드실 수는 없는 아버지께 내년엔 부드럽게 김치죽을 해드려야겠다.


태그:#생일, #미역국,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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