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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서부의 문화도시 투르(Tours)에는 도시의 품격에 맞는 유명한 미술관이 있다. 투르 미술관(Musée des Beaux Arts de Tours). 이곳은 루아르(Loire) 강 유역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시관으로 꼽히고 있다.

프랑스에서 작은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도시 규모에 비해 거대한 미술관을 만나면서 놀라고는 했는데 투르의 투르 미술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수준이 높고 소장품마저 다양한 곳이다.

투르라는 문화도시에 걸맞은 품격을 갖춘 미술관이다.
▲ 투르 미술관. 투르라는 문화도시에 걸맞은 품격을 갖춘 미술관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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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투르 박물관 부지는 로마 시대 당시에 로마인들이 살던 흔적이 남아 있던 곳이다. 박물관 입구에서 보니 투르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평범한 미술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웅장하고 격조가 높아 보인다.

이 건축물은 17~18세기에 투르의 종교적, 정신적 지주였던 주교가 살던 주교궁이었으니 당시에는 투르의 전 역량을 쏟아 부어 세운 건물인 것이다. 옛 주교궁 건물이 미술관의 전시 공간으로 개조되어 사용되면서 투르 시민과 학생들에게 친숙한 문화공간이 되어 있다.

200살 된 삼나무 한 그루

2백살 된 이 삼나무 한 그루는 미술관 전면을 가릴 정도로 거대하다.
▲ 미술관 거목과 야외 전시물. 2백살 된 이 삼나무 한 그루는 미술관 전면을 가릴 정도로 거대하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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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건물은 이끼 낀 회청색 지붕과 우유 빛 벽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투르 미술관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미술관 건물 앞에는 성인 몇 명이 둘러싸도 부족할 엄청나게 큰 나무가 압도적인 자세로 서 있다. 2백 살 된 삼나무 한 그루가 양팔을 벌리고 서서 입장객들을 반기고 있는 것이다. 나무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나무 가지들이 너무 무거워서 큰 줄기들은 목재 기둥으로 받쳐 놓은 것들이 있을 정도이다.

미술관 전면에 웅장하게 서 있는 거대 나무 뒤편으로는 잘 정돈된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져 있다. 누가 보아도 프랑스 정원이라고 느낄 정도로 진짜 프랑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미술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연인들도 너무나 자유롭고 평화스럽다. 공원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지만 이 공원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미술관 공원은 누가 보아도 날씨 좋은 날에 일광욕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투르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나올 것이다.

투르 미술관은 1795년에 시민들에게 처음 문을 열었으니, 2백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문화유산이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내부 장식에도 17세기 루이 14세(Louis XIV) 풍의 화려한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미술관의 내부는 비단으로 만들어진 커튼과 상감 기법 가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미술관 내부에 사용된 비단은 15세기 당시 비단 생산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투르 역사의 편린을 보여준다.

중세시대부터 20세기까지의 유럽 미술품들이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다.
▲ 미술관 내부. 중세시대부터 20세기까지의 유럽 미술품들이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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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투르 미술관 내부에는 중세시대부터 20세기까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미술품들이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안의 전시품들은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도자기, 가구, 조형물 등 그 종류 또한 다양해서 서양의 예술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나는 가격이 꽤 비싼 입장권을 사서 박물관 내부로 들어갔다.

투르 미술관의 소장품들은 투르 서쪽 인근의 샹트루 성(Château de Chanteloup)과 리슐리유 성(Château de Richelieu)에서 소장하고 있던 진귀한 미술품들이다. 투르 미술관에는 특히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안토니오 비바리니(Antonio Vivarini), 조반니 디 파올로(Giovanni di Paolo) 등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미술 양식을 잘 보여주는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이 다량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7명의 로마 병사들이 부활한 그리스도를 보고 놀라 까무러치고 있다.
▲ 그리스도의 부활. 7명의 로마 병사들이 부활한 그리스도를 보고 놀라 까무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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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미술관 대표작 중 하나인 만테냐의 '그리스도의 부활'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참 생소하게 느껴진다. 1459년에 유화로 그려진 이 작품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에서 그리스도는 관에서 나오면서 왼쪽 발을 관 위로 내딛고 왼손에는 부활의 깃대를 들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을 에워싼 유선형의 후광은 중세 종교화의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관 뚜껑은 두 동강 나 있고 병사들은 너무나 놀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총 7명의 병사는 모두 깨어 있으며 그리스도가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나뒹굴고 있다.

성경에는 원래 무덤을 경비하는 병사들이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고 되어 있는데, 만테냐는 아무도 본 적이 없는 부활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병사들이 놀라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중세의 신앙심 깊은 기독교 사회 속에 있던 화가가 일부러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만테냐는 천사보다 그리스도를 보고 놀라는 모습으로 그려야 더 신비롭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탈리아 원초주의 작가의 작품이다.
▲ 카미유 이야기.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탈리아 원초주의 작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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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Camille)의 이야기'는 이탈리아 피렌체(Florence)에 살던 무명의 작가가 15세기 말에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서 부활하던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언어, 종교, 국토에 기초한 이탈리아 민족이 역사의 자연스러운 단위라고 주장하는 원초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카미유의 이야기'는 세 개의 그림이 세트처럼 전시되어 있다. 위의 두 그림에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있고, 그 아래의 병풍같이 긴 그림은 명예로운 전투도를 묘사하고 있다.

전투도에서는 기병들의 군대가 성 안으로 마구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그림을 둘러싼 액자의 사방에는 이 신화를 계속 기억하고픈 가문들의 문장(紋章)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이탈리아 통일 전, 이탈리아 민족의 의식 속에 담겨있었던 민족의식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3층으로 올라서니 19세기 프랑스 화가 루이스 불랑제(Louis Boulanger)가 그린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초상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는 팔짱을 끼고 선량하고 쾌활한 모습으로 서 있다. 통통한 풍채를 지닌 그의 모습이 왠지 포근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투르 미술관의 각 전시실에는 관리인들이 지키고 서 있는데 내가 발자크 초상화를 보고 있으려니 한 중년의 여성 관리인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녀는 영어가 아주 유창했다.

"발자크가 투르에서 태어난 사실은 알고 있죠?"
"발자크의 고향이 이곳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사업을 벌였고 사업이 실패하자 그 빚을 갚기 위해 미친 듯이 글을 썼던 소설가지요. 그는 글을 쓰기 위해 하루 40잔의 커피를 마셨던 커피 중독자였어요. 커피를 그렇게 많이 마셨으니 거의 잠도 못 자고 집필한 거지요."
"하루에 커피를 40잔을 마셨다고요?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발자크가 하루에 커피를 40잔이나 마신 것을 누가 세어보았다는 것인가? 대충 그런 날도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나는 그가 마신 커피 잔 수보다도 그가 작가로서 느꼈을 성공과 좌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의 커피 속에는 원고료 몇 푼 때문에 잡문을 써야 했던 인생의 비루함이 녹아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옛 대주교의 집답게 전시실과 전시실 사이에는 큰 거실과 복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복도로 나가 보니 복도에는 다양한 조각상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곳에는 18~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조각가인 장 앙투안 우동(Jean Antoine Houdon)의 청동작품이 조명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활을 들고 사냥하는 청동조각상이 매혹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 활을 들고 사냥하는 청동조각상이 매혹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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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경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제작된 이 유명한 청동조각은 바로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Diane)이다. 장 앙투안 우동이 남긴 여러 다이아나 조각상처럼 투르 미술관의 다이아나도 왼손에 활을 들고 오른손에 화살을 들고 있다. 활로 사냥을 하는 사냥의 신답지 않게 다이아나의 신체의 곡선은 너무나도 부드럽다. 사실적인 신체의 곡선은 넋을 잃고 볼 정도로 조화와 균형이 아름답다.

맑은 날 오후의 루아르 강변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 루아르 강변의 풍경화. 맑은 날 오후의 루아르 강변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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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한 후 나는 유화들이 모여있는 전시실 안으로 다시 들어섰다. 역사적 배경을 가진 유화들 사이에서 루아르 강변의 풍경화들이 특별하게 눈에 띄었다. 햇빛이 얇게 녹아 든, 맑은 날 오후의 루아르 강변을 그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19세기경에 모리스 르 리프브르(Maurice Le Liepvre)가 그린 풍경화 속의 루아르 강변에는 갈매기가 무리 지어 날고 있었다. 바다와 가까운 루아르 강 하류의 넓은 강줄기 위로 날아드는 갈매기들이 평화롭기만 하다.

투르 미술관에는 프랑스의 전통가구를 보여주는 전시실도 있었다. 18세기 말에 슈와죌 공작(Duke of Choiseul)이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책상은 집으로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나는 작품이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구 제작자인 시몽 외벤(Simon Oeben)이 제작한 이 책상은 평평한 책상 위에 놓은 장식용 목제 서류함이 화려하다. 오랜 견습생활을 통해 실력을 다져온 외벤은 서류 정리함의 전면을 부드러운 옷감인 면으로 상감 처리한 후, 도금한 청동을 이용하여 풍부하게 책상을 장식하였다.

미술관 관리인들의 자부심

이 고풍스러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 프랑스 공작이 사용했던 책상. 이 고풍스러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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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샹트루 성(Château de Chanteloup)에서 사용되던 이 책상은 남성적인 굵직한 책상이다. 새로운 책상 양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세로와 가로의 안정적인 비율을 만들어낸 이 책상은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책상 모양을 갖추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책상의 밑면도 큐브와 원을 이용한 기하학적 패턴의 입체장식을 만듦으로써 이제는 이러한 책상 양식이 나무 책상의 고전적인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래서 이 책상을 보고 있으면 전혀 낯설지가 않고, 스타일도 상당히 친근하다. 우리나라의 현대 가구는 이 책상과 같이 우아한 장식을 절제하는 근대 프랑스 가구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멋진 서재에서 이 고풍스러운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 너무나 평화로울 것 같다.

미술관 안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빠른 걸음으로 전시실 안을 구경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미술관의 중년 남성 관리인이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우리 박물관 지하에서도 이탈리아 문명과 관련된 대형 기획적이 열리고 있어요. 놓치면 안 될 훌륭한 전시예요."
"저는 곧 투르 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투르를 떠나야 돼요. 너무 아쉽네요."

그런데 오히려 이 미술관 관리인이 너무나도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의 표정은 미술관의 훌륭한 전시를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투르의 미술관 관리인들이 자신들의 미술과 문화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지루할 수도 있는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게 보였다. 프랑스의 문화의 깊이를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

나는 미술관을 나가려다가 발길을 돌려 지하 전시실의 기획전을 순식간에 둘러봤다. 기획전시실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고대 로마의 찬란한 유물들이 전시 중이었다. 놀라움에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투르의 초등학생들이 즐겁게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 미술관 견학 온 어린이들. 투르의 초등학생들이 즐겁게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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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역을 가기 위해 미술관 밖으로 나가는데 한 무리의 투르 초등학생들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어린 학생들의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미술관의 예술품들을 보고 자라면 예술적 소양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의 도시, 투르에서의 아쉬운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 여행, #투르 , #투르 미술관, #루아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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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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