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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 이이화 역사학자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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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4·3 학살의 현장 또는 유적지를 돌아볼 때마다 역사의 아픔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고, 생존자 또는 연구자의 증언 또는 고발을 들을 때마다 또 다른 감동을 받았다. 이는 분명히 오늘을 사는 우리가 풀어야 할 민족사적 과제일 것이다.

지난해 시민운동가들과 연구자들은 제주4·3 학살 70주년을 맞이해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배·보상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를 발족시키고 특별법 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필자도 이 일에 동참하고 있다.

잠시 지난날을 회고해 보면, 한국 근현대 시기는 민족 모순이 점철되는 시대 상황에서 민간인의 대량학살이 저질러졌다. 멀리는 동학농민혁명 과정과 식민지 지배 시기에 일제에 의해 무수한 민간이 죽어갔고, 분단구조 아래의 해방공간과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시기에도 민간인 대량 살육이 자행되었다.

4·3 학살 사건도 미국 주도의 군정 시기, 한국 국방경비대의 군인과 경찰 그리고 우익 청년들이 한국의 군사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군의 지휘 아래에서 하수인이 되어 3만여 명의 제주도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그 실상은 소설 <순이 삼촌>에서 나타나듯 인간 사육장 혹은 지옥이 연출됐다. 지금도 보존되어있는 동굴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은 이를 틀어막아 왔다.

그동안 민주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보상이 단계를 거쳐 이루어졌으나 근본적인 청산 혹은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마침내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나 어딘지 미진한 채로 '껄쩍지근'하게 진행됐다. 근본적인 청산 또는 해결책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완전한 청산이야말로 민주가치를 실현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지금 촛불 시민혁명의 결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기로에 서 있다. '제주4·3 범국민위원회'는 먼저 인권 국가를 자임하며 군정을 이끈 미국의 진정한 사과와 독재정권 아래에서 왜곡과 은폐를 자행한 인사들의 사죄를 받아내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려 하고 있다.

범국민위는 미군정의 하수인인 조병옥의 동상을 그의 묘소가 있는 우이동에 세우려는 강북구청의 계획에 반대 운동을 펼쳤고, 건립 철회라는 결정을 끌어냈다. 이는 역사의 정의를 확립하는 구체적 사례가 될 것이다. 이어 범국민위는 대중운동으로서 전국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고 그 실상을 알리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진실을 알리는 운동을 진행시키고 있다.

민중이 반드시 현명해서 판단력이 꼭 정확한 건 아닐 것이다, 이들의 역사적 판단력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고 난 후에 특별법이 제정돼야 할 것이다. 이 특별법 개정안은 또 국제적 인권 기준에 따라 배·보상이 포함된 과거 청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돈이 없다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불법으로 유용한 국고를 환수해서 보전할 수도 있고, 탈세와 비자금을 조성하는 재벌의 범칙금을 확보할 수도 있으며, 제주도에 건설하는 도로 하나를 줄여도 넉넉히 될 수 있을 것 아닌가? 과거 청산은 의지로 결실을 보는 것이지 돈 몇 푼으로 푸는 게 아닐 것이다.

과거 청산 없는 적폐청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현실은 늘 미봉으로 끝나고 만다. 우리 역사에서 익히 보아왔지 않는가? 유럽에서 먼저 아프리카 노예를 만들어냈지만 노예 해방도 먼저 끌어내지 않았는가? 미국은 인권국가를 표방하지만 백인중심의 논리에 매몰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도 이번에 기회를 잡아 정부와 민주시민이 힘을 모아서 제주4·3 학살 사건을 말끔하게 풀어 인권 국가의 모범을 보여주자. 새 시대를 맞이해 인권문제를 다시 전면적으로 디자인하자. 늙은 역사학자는 간곡하게, 새 정부와 범국민위에게 세계 인권사에 남을 시대의 사명을 다해 주기를 당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이화씨는 역사학자이며 전봉준동상건립위 이사장입니다. 이 글은 제주 4.3 범국민위의 4370신문 2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이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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