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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아닌데 드로잉 전을 가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4월 3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나무아트에서 전시되는 <박진화 DRAWING – 영소(詠宵)> 전을 관람하러 가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2001년 갤러리 '신'에서의 드로잉전 이후 17년만이다.

나무아트를 들어서자 박진화 작가가 두 팔을 벌려 환영한다. 박진화 작가는 인천 강화군에 속해 있는 볼음도에서 지난 1월 초까지 <사월> 연작을 마무리 하는데 매진해 왔다. <사월>은 세월호를 포함한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담고 있는 연작으로 프롤로그, 에필로그와 함께 '빨강', '노랑', '파랑'이라는 부제를 붙인 대형 작품이다.

- 선생님. 지난 겨울 강화도 박진화미술관에서 <사월> 연작 전시회 이후 처음 뵙네요. 잘 지내셨지요? 볼음도에서의 생활은 어떠세요?
"뭐 만날 그림 그리는 일이 똑같지요. 이번에는 볼음도 들어가서 작업했던 드로잉들을 가지고 나왔어요."

 DRAWING.  박진화.  연필
 DRAWING. 박진화. 연필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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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트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훑는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유화로 완성된 작품으로 본 적이 있는 철책선을 그린 작품이다. 박진화 작가는 이 땅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순리대로 평화롭게 사는 문제에 대해 참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민족미술인협회 회원으로 제13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박근혜정권 시절 블랙리스트 작가로도 이름이 올랐다.

 사월 - 파랑.  박진화. Oil on canvas. 박진화미술관에서 1월 전시 때 찍은 사진.
 사월 - 파랑. 박진화. Oil on canvas. 박진화미술관에서 1월 전시 때 찍은 사진.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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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책선 그려진 작품이 제일 먼저 눈에 띄네요. 천천히 살펴볼게요. 선생님. 이쪽의 사람 얼굴 드로잉한 작품들은 볼음도 주민분들이신가요?
"맞아요. 대부분이 볼음도 우리 식구들이지요. 식구나 마찬가지야. 내가 그림 그리고 있으면 저분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구경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서 두 장씩 그렸어요. 한 장은 여기, 또 한 장은 모델해주신 분들에게 선물할려구."

 DRAWING.  박진화.  연필. 볼음도 주민들
 DRAWING. 박진화. 연필. 볼음도 주민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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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 할배, 할매들을 그릴 때 연필을 온갖 종류를 다 썼어요. HB도 쓰고 4B도 쓰고, 아마 한 9종류는 사용해서 저 작업을 했지. 사람마다 느낌이 틀리니까. 기자님도 가까이 와서 한번 봐요."

지난 겨울 <박진화 미술관>에서 사월 연작 전시를 할 때, 세월호 희생자 304인에 대한 참담함을 풀어내기가 어려웠다며 힘겹게 이야기를 꺼내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을 붓으로 풀어낼 때 '그 그림들로 인해 나는 줄곧 목에 칼을 차고 한없이 끌려가는 죄인의 처지를 경험'했다고 했다.

다행히 볼음도 식구들의 모습을 그리는 동안에는 무척이나 행복했을 듯하다. 주름이 지고, 머리에는 하얀 눈발이, 이제는 눈이 나빠져 안경을 낀, 그렇게 세월을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함이 배어 나온다.

전시된 작품을 따라 눈길을 옮긴다. 특이하게도 13장의 드로잉 작품에는 밑에 한시를 적어 놓았다.

 DRAWING.  박진화.  연필.  영소(詠宵) 시문으로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DRAWING. 박진화. 연필. 영소(詠宵) 시문으로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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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한자공부도 많이 하셨나봐요. 드로잉뿐만 아니라 한시도 적어 놓으셨네요.
"아…. 내가 수운 최제우 선생님을 존경하잖아요. 그림을 그리다보니 동경대전에 실린 영소(詠宵)라는 시문(詩文)이 있는데 내가 빌려왔어요. 그 시문들을 읽으면서 연작으로 몇 장 그리기도 하고. 어쨌든 이번 드로잉들은 '나'라는 존재를 물리치고 '땅'이 지닌 낌새를 연필 드로잉이 갖는 특성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참 묘하다. 드로잉이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석고상 갖다 놓고 비례를 생각하고, 명암을 그리는 게 아니구나 싶다. 작품을 가까이서 볼 때는 잘 모르겠더니 한눈에 들어 올만큼 물러서서 보니 새롭다. 삼차원의 공간이 이차원의 면에서 다시 공간을 구성하고 길을 내고, 빛을 반짝이고, 소리들이 굴러다니기 시작한다.

 DRAWING. 박진화.  연필.
 DRAWING. 박진화. 연필.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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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참 이상하네요.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서 보니 제가 저 작품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해요. 힘도 느껴지고, 물결치는 것 같은데 그게 겹겹으로 운동성을 지니고 있어 굉장히 역동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구요.
"힘이 느껴져요? 내 드로잉 작업에는 비밀이 있거든. 내가 기자님께 알려드릴게. 나는 드로잉 작업을 할 때 앉아서 안 하고 서서해요. 생각해봐요. 앉아서 하면 사물을 품을 때 어깨까지만 움직이잖아. 그런데 서서 하면 내 온몸이 사물을 품게 돼요. 나는 그게 참 좋더라구. 사물을, 풍경을 온몸으로 품는. 대신 힘이 많이 들긴해요. 며칠을 그렇게 드로잉 작업을 하고 나면 드러눕기도 해요."

그렇구나. 그래서 박진화 작가의 그림에서 힘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구나.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꽹과리의 '쟁기쟁기' 하는 소리부터 북의 '두둥-, 두둥-' 하는 소리, 사라질 듯 잦아드는 꽹과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특이하게도 타악기들의 소리로 들린다.

-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어떤 부분이 새로우셨어요?
"드로잉이 말이여. 그게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거더라구. 내가 작업을 하고 던져놨다가 다시 꺼내서 준비 할 때 조금씩 손을 본 부분들이 있어요. 풍경이 딱 그때의 풍경이 아닌데도 다시 손을 보니 훨씬 났더라고. 그게 아마도 시간이 들어가서 그런 거 같아요."

박진화 작가는 전라도 장흥 출신이라고 한다. 이야기 하다가 신이 나면 눈을 깜박이면서 리드미컬한 전라도 지역의 억양이 나온다.

 사월 - 빨강.  박진화.  Oil on canvas. 박진화 미술관에서 1월 전시 때 직은 사진.
 사월 - 빨강. 박진화. Oil on canvas. 박진화 미술관에서 1월 전시 때 직은 사진.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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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은 시간의 중첩성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처음 본 시점이 있지만 그 위로 시간이 다시 흐르고, 또 흐르고, 다시 덮어지면서 생각이 깃드는 모양이다. 그것이 아마 작가의 사유(思惟)일 것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갖게 되는 의미일 거다. 박진화 작가가 <사월>을 연작으로 그리면서 붙들고자 한 것 또한 한 사건이 그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연속 선상에서 제 의미를 찾고 맺힌 것들이 풀어져야만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월 - 노랑.  박진화.  Oil on canvas. <박진화비술관>에서 1월 전시 때 찍은 사진.
 사월 - 노랑. 박진화. Oil on canvas. <박진화비술관>에서 1월 전시 때 찍은 사진.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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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진짜로 최제우선생님을 좋아하시는가 봐요."

'영소(詠宵)' 시문을 설명하고 있는 박진화작 가에게 누군가가 물어본다.

"나는 촛불시민혁명이 새로운 시대를 연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우리 공동체가 고난을 직시하고, 그 고난을 몸소 끌어안는, 인간적 삶의 아픔을 통각하는 '죄의식'이 집단적 이성을 가능케 한 거지요. 나는 그것이 바로 동학의 정신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해요. 자기 책임을 외면한 부끄러움을 알았기에 국민들이 하늘을 움직일 수 있었거든. 우리가 우리들의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인격화 할 수 있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평화집회가 가능했다에 한 표. 이제 시작이니까, 시간이 걸릴 문제이기는 하지만 나는 새로운 세상을 바로 지금 우리가 열고 있다고 믿어요."

 박진화작가가 전시장에서 관람객에게 Drawing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과 영소(詠宵)의 시문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박진화작가가 전시장에서 관람객에게 Drawing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과 영소(詠宵)의 시문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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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음을 천천히 옮기면서 드로잉들을 본다. 소감을 묻는다면 세 글자로 표현하고 싶다. "딱 좋다". 다시 묻는다면 그림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을 수 있는 의자 하나를 가져와 온 몸을 맡긴 채 그림을 보면서 오래도록 앉아 있고 싶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 빛을 만지고, 굴러가는 소리를 따라 나서도 보고, 길을 따라 걸으며 내 몸속에 쌓여 있는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뒤풀이 자리에서 '영소(詠宵)'의 시문 강의를 듣겠구나 싶다. '사월'과 드로잉과 수운 최제우 선생님의 시문으로 봄비 한 잔 받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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