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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입은 있되 말하는 입을 잃어버렸고, 아픔은 침묵을 강요받았다. 오랫동안 침묵의 심연에 있었던 제주4·3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데에는 문학의 힘이 컸다. 1978년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시작으로, 비극의 언어는 문학의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옴팡밭에서 30년 동안 유예됐던 죽음을 맞이한 '순이삼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비극의 역사를 증언하는 외침이었다.

<순이삼촌>의 작가
▲ 현기영 작가 <순이삼촌>의 작가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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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길언
▲ 순이삼촌 현길언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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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문학의 1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작가는 현기영, 현길언, 오성찬이다. 4·3의 직접 체험자였던 그들에게 4·3은 하나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4·3을 다루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 현기영이 <순이삼촌>을 시작으로 희생과 수난의 관점에서 4·3을 그려내기 시작했다면, 현길언은 무고한 죽음을 증언하는 '무죄 증명'에 주안점을 두었다. 현기영이 수난사적 관점을 취하면서도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 현길언은 '무고한 죽음'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니우다. 이대로 그냥 놔두민 이 사건은 영영 매장되고 말 거우다. 앞으로 일이십년만 더 있어봅서. 그땐 심판받을 당사자도 죽고 없고, 아버님이나 당숙님같이 증언할 분도 돌아가시고 나민 다 허사가 아니우꽈? 마을 전설로는 남을지 몰라도." <순이삼촌>


현기영은 <순이삼촌>에서 사촌형 길수의 입을 통해 '비극의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현길언이 '손씻기'라는 장면을 통해 무죄 증명에 대한 강박을 보이는 것과 다르다. <우리들의 조부님>의 다음 장면은 현길언의 문학적 입장을 대변한다.

"삼촌님, 전 결코 구장을 죽이지 않았수다."
할아버지가 종조부 앞으로 다가오며 사정투로 말했다. 그리고 마당가에 몰려 선 사람들을 멀거니 바라봤다. 마치 법정에 선 죄인이 무죄를 하소연하는 그 얼굴이었다. (중략)
"성님, 정신을 차리십서. 무슨 말을 경 허염쑤과. 이제 다 잊어버린 걸 무사 다시 시작허염쑤과."
'정신을 차리십서'에 힘주어 말하는 종조부의 얼굴엔 귀찮고 두려운 표정이 역력하게 서려 있었다. <우리들의 조부님>

"이제 다 잊어비린 걸 무사 다시 시작"하느냐는 작중 인물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비극을 드러내는 일은 귀찮고 두려운 일로 간주된다. 이에 비해 오성찬은 기록자의 입장에서 4·3의 문제와 마주한다. 그의 대표작이 <어느 공산주의자에 관한 보고서>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오성찬은 철저히 객관적인 사관(史官)의 입장에서 4·3을 바라본다. 발표 당시 이 작품의 부제 역시 '다시 쓰는 사기(史記) 5'였다.

오성찬
▲ 오성찬 문학선집 오성찬
ⓒ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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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에서 수난사적 입장을 취했던 현기영은 이후 <목마른 신들>, <지상의 숟가락 하나>를 통해 제주 공동체의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제주4·3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늙은 심방이 자신이 4․3 원혼굿을 하게 된 내력담을 들려주는 이야기인 이 작품은 이전 작품인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룡이야기>와 다른 방식으로 4·3을 바라보고 있다.

소설은 심방인 화자가 제주 4·3의 전사(前史)라고 할 수 있는 해방 직후부터 3․1절 발포 사건을 함께 다루면서 4․3 원혼굿을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는 민중의 아픔이 단순히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제주도 민중 전체의 아픔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기영
▲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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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문학의 결정적 장면을 꼽으라면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들 수 있다. 김석범의 <화산도>도 이에 못지않지만 제주 공동체가 오랫동안 지녔던 저항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지상에 숟가락 하나>이다. 이 작품은 고향 상실과 고향으로의 귀환이라는 큰 축을 바탕으로 소년의 성장과 역사적 비극 속에서 감내해야 했던 민중들의 구체적 일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그중에서 단연 최고는 아래 장면이다.

관덕정 광장에 읍민이 운집한 가운데 전시된 그의 주검은 카키색 허름한 일본군 차림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집행인의 실수였는지 장난이었는지 그 시신이 예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에 높이 올려져 있었다. 그 순교의 상징 때문에 더욱 그랬던지 구경하는 어른들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심란해 보였다. 두 팔을 벌린 채 옆으로 기울어진 얼굴. 한쪽 입귀에서 흘러내리다 만 핏물 줄기가 엉겨 있었지만 표정은 잠자는 듯 평온했다. 그리고 집행인이 앞가슴 주머니에 일부러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 그 숟가락이 시신을 조롱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날의 십자가와 함께 순교의 마지막 잔영만을 남긴 채 신화는 끝이 났다. 민중 속에서 장두가 태어나고 장두를 앞세워 관권의 불의에 저항하던 섬 공동체의 오랜 전통, 그 신화의 세계는 그날로 영영 막을 내리고 있었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에게 있어 관덕정 광장은 섬 공동체가 지니고 있었던 저항 정신의 생산지이다. 장두 이재수에서부터 시작하여 산군 대장 이덕구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장두정신은 관덕정 광장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무대로 하여 현재와 마주하고 있다. "민중 속에서 장두가 태어나고 장두를 앞세워 관권의 불의에 저항하던 섬 공동체의 오랜 전통"을 "신화의 세계"로 명명하고 있는 이 대목은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지향하고 있는 바를 정확히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동현씨는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입니다.



태그:#제주4.3, #현기영, #순이삼촌, #제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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