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의 한 장면.

영화 <소공녀>의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월세에 허덕이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청춘의 삶은 우울하기만 할까? 이런 존재를 곁에 둔 가족과 지인이라면 십중팔구 애잔한 시선으로 보기 십상일 것이다. 혹자는 "그럴싸한 직업을 가져보라"며 구직활동에 대한 조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존재가 사람들의 조언을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는 이라면?

배우 이솜과 안재홍이 나선 영화 <소공녀>는 충분히 앞선 질문을 던지게 한다.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미소(이솜)는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는커녕 매일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한 갑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집에선 난방이 안 되고 때론 전기마저 끊기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심지어 해가 바뀌어 담뱃값이 크게 올랐음에도 미소는 담배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집을 나온다.

철들지 않는 영혼

5만 원 남짓인 일당에서 위스키와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반에 가깝다. 미소의 주변인들은 "너무 사치스러운 거 아니냐"며 그를 타박하지만 미소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알잖아. 내가 유일하게 안식을 얻는 게 위스키와 담배"라는 말을 남기며 미소는 조용히 항변한다.

위스키와 담배를 단순히 미소의 취향으로 눙칠 수 없다. 남들이 불행하다고 볼지언정 스스로 만큼은 동요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취향을 넘어선 미소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자신과 밴드를 했던 대학 친구들을 한명씩 찾아가 잠자리를 구하는 미소의 행동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 그 지점에서 영화 <소공녀>를 대하는 방식이 나뉠 것이다.

 영화 <소공녀>의 한 장면.

영화 <소공녀>의 한 장면. ⓒ CGV아트하우스


월세를 내기 위해, 그럴싸한 한 끼를 위해 미소가 전전긍긍했다면 분명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은 결코 편안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큰 캐리어와 짐을 어깨에 짊어진 채 방황하는 미소와 자신들의 거처가 있지만 불행해 보이는 주변인물을 대비시키며 관객들에게 본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어떤 삶이 행복한가'라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핍이 있다. 미소는 물질적으론 부족했겠지만 정서적으론 누구보다 충만했다. 적어도 그가 노동을 하는 순간까지 담배와 위스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미소 옆엔 누구보다 그를 이해하는 남자친구 한솔(안재홍)이 있다. 다만 한솔은 자신이 미소를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줄곧 자책하곤 한다. 이 지점에서도 묘한 대비효과가 일어난다.

정리하면 <소공녀>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행복 보고서 정도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어떻게 꿈을 잃고, 현실에 타협해 가는지를 여러 캐릭터를 통해 제시한다. 취업과 결혼 등 삶에서 마주할 법한 여러 주요 의례를 대하는 미소의 자세는 그 자체로 용감하고 재기발랄하다. 

<돌연변이> <굿바이 싱글> 등 여러 상업영화의 각색을 경험한 전고운 감독은 꽤 분명한 주제의식을 갖고 <소공녀>를 연출했다. 영화의 리듬감과 속도감이 아쉽고, 캐릭터들 역시 단조롭다는 게 흠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진정성이 훼손될 수준은 아니다.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한 줄 평 : 순수한 청춘과 꼰대 사이에서 던질 법한 질문을 잘 포착했다
평점 : ★★★☆(3.5/5)

영화 <소공녀> 관련 정보

연출 : 전고운
출연 : 이솜, 안재홍, 강진아, 김국희, 이성욱, 최덕문, 조수향, 김재화 등
배급 : CGV아트하우스
제공 및 제작 : 광화문시네마, 모토
러닝타임 : 106분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8년 3월 22일


덧붙이는 글 일당 절반을 위스키와 담배에... 청춘들의 '행복 보고서'
소공녀 이솜 안재홍 가사도우미 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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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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