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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사히글라스 집단 해고 1000일이 다가옵니다.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들은 지난 2월 21일부터 3월 9일까지 일본 도쿄도 오사카시에 있는 아사히글라스 공장을 찾아 해고 사태 해결을 요구하는 일본 원정 투쟁을 마쳤습니다. <뉴스민>은 4~7일 일본 도쿄도를 방문해 취재했고, 4~5일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의 투쟁을 응원하는 일본 시민을 만났습니다. 앞으로 아사히글라스 그룹의 주요 역사를 다룬 기사를 연재합니다.

지난 기사: 아사히글라스 해고 1000일, 해고노동자 일본 본사 원정투쟁기

"한국 촛불 혁명이 부러워요. 우리는 탄핵도 못 하는데."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 일본 원정투쟁 중 만난 일본인들은 한국이 부럽다고 입을 모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학 스캔들 논란이 최근 다시 불붙으며 일본에서도 아베 퇴진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한국은 일본보다 한발 먼저 대통령 탄핵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총리로 지명되는(탄핵이 없는) 일본 내각제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55년 체제(1955년부터 지속된 자민당-사회당 양당 체제) 종료 후, 현 집권 여당 외에 다른 힘 있는 대안 세력이 없다. 2009년, 55년 체제 후 처음으로 민주당이 집권한 적 있지만,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입장 철회, 동일본 지진 등의 영향으로 2012년 몰락했다. 이후 도쿄 도지사 고이케가 한때 돌풍을 일으켰지만,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고이케 도지사의 '희망의 당'은 흥행을 일으키지 못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침체됐다. 일본 사회 고질병인 정부 부채, 고령화, 인구 감소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거품경제 붕괴를 겪으면서 그리고 일본이 유독 큰 타격을 받은 2008년 리먼쇼크(주택 담보 대출에서 통과하지 못하는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대출하는 상품, 이 상품은 다른 금융 상품 등과 결합해 전세계에 판매됐고, 상환 연체율이 상승하면서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왔다.)를 겪으면서 비정규직 문제도 사회 불안 요소가 됐다.

과거 일본 고용 관행은 장기고용과 연공임금을 보장하는 것이었고, 이는 고도성장의 바탕이었다. 그러나 거품경제 붕괴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1995년 일본경영자단체연맹(현 경제단체연합회)은 '신시대의 일본적 경영' 보고서를 발표하고 비정규직·파견노동을 전면적으로 확대 주장을 시작했다. 1999년 법 개정 이후부터 파견·계약직이 확대됐고, 2004년 한국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제조업 분야 파견도 허용됐다.

장기 불황, 리먼쇼크 등 경제 악화 속 일본사회 비정규직 노동의 질도 급격히 떨어졌다. 13살부터 도쿄에서 살아온 교포 이희정(40)씨는 일본에서 정직원보다 파견직을 선호했다. 2008년 백화점 판매직으로 일할 당시 희정씨 친구들도 대부분 파견업체에서 일했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일본에서는 나이 들어서도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고 흉을 보는 시선도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리먼쇼크 이후, 파견업체 사원부터 정리하는 '파견 깨기(派遣切り)'가 시작됐다. 당시 여파로 제조업에서만 4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관련 기사: 제조업 파견 � 용역 40 만명 실업 전망 산업 협회 추산)

 도쿄 신주쿠의 바 lavenderia에 모인 사람들. 가장 오른 쪽이 희정 씨. 잘 찾아보면 자다 일어난 고양이도 있다.
 도쿄 신주쿠의 바 lavenderia에 모인 사람들. 가장 오른 쪽이 희정 씨. 잘 찾아보면 자다 일어난 고양이도 있다.
ⓒ 뉴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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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씨는 침체된 일본 분위기가 바뀌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촛불 집회가 부러웠다. 또, 노동조합 운동이 침체되고, 사람들이 불합리한 노동조건에 연합해서 싸우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한국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들의 투쟁도 눈여겨보고 있다. 4일, 도쿄도 신주쿠구의 바 'Lavanderia(라벤더리아)'에서 희정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일본 사회 분위기는 어때요?

-여기서는 솜털로 목을 조른다고 해요. 조금씩 조금씩 압박하는. 사람들끼리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할 수 없기도 하고. 저는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오키나와 이야기는 언론에서도 잘 볼 수 없어요.

일본은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분위기예요. 쓰나미가 일어나서 안전에 문제가 생기거나, 다른 큰일이 있을 때마다 좀 바뀔 수 있으려나 해도 흐지부지돼요. 국회의사당 앞에 가보면 저처럼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해서 온 사람들이 있는데, 경찰은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일본에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조금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는 '그런 얘기 하지 마라', '괜찮다. 괜찮다', '방사능 먹어도 몸에 좋다' 이러거든요.

데모도 가끔 일어나는데, 한국처럼 뭉쳐서 무언가 바꿔보려고 한다기보다는 주최하는 사람들이 자기만족적으로 하는 느낌이에요. 노동조합이 한국보다 약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Lavanderia'는 일본인 사장 16명이 공동으로 운영한다. 이곳은 사파티스타를 지원하는 커피를 팔고, 손님이 돈을 내고 싶은 만큼 낸다. 사장 중 한 명인 후지모토(59)씨는 좌익이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된 손님이라고 한다.

이날 바에서 맥주를 마시던, 조선적(朝鮮籍)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나카무라 일성(50)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 테이블 밑에는 노암 촘스키가 방문해 남긴 사인이 있으며, 바 한켠을 가득 채운 책꽂이에는 마르크스 서적에서부터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를 다룬 책(筑豊 軍艦島 朝鮮人強制連行 その後)까지 다양했다. 운동이 주로 '자기만족적'이라는 희정 씨의 말 때문인지, 퇴근 후 'Lavanderia'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좌익' 손님들의 얼굴도 어딘가 처연해 보였다.

 바에 비치된 책(筑豊 軍艦島 朝鮮人?制連行 その後)
 바에 비치된 책(筑豊 軍艦島 朝鮮人?制連行 その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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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한국 사회가 일본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노동운동 문제도 마찬가지고 고령화, 인구감소 문제에서도.

-일본은 노동조합이 안 싸우기도 하지만, 노동조합 자체도 얼마 없어요. 다들 개인이에요. 그래서 소동도 없는데, 문제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문제가 생기면 노동조합이 이야기하지 않고, 개인이 사회적으로 고발하면서 드러나요.

'개미'라고 유명한 이삿짐 회사(アリさんマ―クの引越社)가 있는데요, 고문처럼 가혹한 노동 시간 때문에 문제가 됐는데 거기 젊은 사원이 미디어에 발표하면서 크게 문제가 됐어요. 그런 식으로 어떤 외식업 회사에서도 직원이 발표하고 혼자 싸우는 사례도 있어요. 그건 싸우는 기간도 길고, 용기도 필요한 일이에요. 한국은 다르죠? '카트'라는 영화도 봤는데.

제가 만약 어떤 불합리한 일을 당해서 싸울 일이 생긴다고 하면 고민 많이 해야 할 거예요. 나 혼자만 드러날 테니까. 그래서 한국의 비정규직 운동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규직 노동조합이 (일본에 비해) 그렇게 큰데, 지금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지회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비정규직 운동이 가장 활발하잖아요. 일본에서도 한국의 비정규직 운동을 보러 가는 사람이 있어요.

 아사히글라스 공장에서 근무했던 일본 네티즌들이 익명 게시판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일본 익명 커뮤니티5ch (https://money5.5ch.net/test/read.cgi/haken/1057143530/) 갈무리 화면
 아사히글라스 공장에서 근무했던 일본 네티즌들이 익명 게시판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일본 익명 커뮤니티5ch (https://money5.5ch.net/test/read.cgi/haken/1057143530/) 갈무리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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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 본 것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한국보다 눈치도 덜 보고 자유로운 거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솜털로 목을 조른다'고는 해도, 한국 비정규직 문제랑 일자리 문제만큼 심각한 분위기가 있나요?

-자기마다 자유로운 가치관을 추구하는 건 좋아요. 그런데 그게 자유로운 사회라서 그렇다기보다, 그냥 사람들끼리 무관심해서 한국보다 압박이 덜한 거예요. 여기 옆에 앉은 나카무라 일성이라는 사람은 50살인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그런 게 상관이 없어요. 남이 뭘 하든 신경을 안 쓰죠. 학력이 낮아도, 영어를 몰라도 괜찮아요. 일본 사회가 굉장히 자유를 보장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그런 사회는 아니고, 그냥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요즘 한국 사회는 역동적인 거 같아요. 일본처럼 되면 안 되는데. 한국에서는 아베 얼굴 큼지막하게 나온 기사가 자주 뜨거든요. 위안부 협상 불가역적이라고 하고, 독도 문제나. 평창 올림픽 전에 보이콧 운운하던 것이나, 북한 핑계로 헌법 개정하려는 문제나. 그런 거 그만 보고 싶어요.

-일본에서도 실즈(SEALDS)라고 아베에 저항하는 일본 젊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제 사그라들었어요. 구세대들이 실즈의 투쟁에 연대를 안 했어요. 구세대 특징이 있거든요. '요즘 애들' 의식이 없다고. 뭘 해도 안 될 거라고.

그런 면에서 한국의 촛불집회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 같은, 비정규직 운동도 정말 중요해요. 한국의 긍정적인 영향이 우리에게도 오면 좋겠어요.

"한국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 일본 노동자의 과제마저 떠맡아"
시라이시 다카시 일본 비정규직노동자연구소 이사장
 다카시 씨
 다카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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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도쿄 도내 한 카페에서 비정규직노동자연구소 이사장인 시라이시 다카시(白石孝, 67) 씨를 만났다. 일본 노동시장에서 파견 노동 문제와 아사히글라스 같은 일본계 다국적기업에 대한 여론을 듣는 자리였다. 다카시 씨는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스케이트 선수 이상화와 고다이라가 포옹하는 신문 1면을 펼쳐 보였다.

"일본은 이렇게 고다이라가 안아주는 것 같은 사진을 쓰면 안 됩니다. 일본 사람들이 아시아에서 제일이고 나머지는 그 밑에 있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됐어요"

다카시 씨는 일본 거품 경제 붕괴되기 전 사회당 당원이었고, 도쿄도 아라카와 구청의 보통 행정직 직원으로서 공무원노조 활동도 했다.

일본 사회당은 1950년 결성된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과 함께 '55년 체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사회당의 지지 기반이었던 총평이 70년대에 쇠퇴하면서 사회당도 덩달아 쇠퇴했다. 총평 내 주요 세력이었던 국철노동조합 등 관공노 계열 노조의 대규모 투쟁이 줄줄이 패하고, 오일쇼크, 구소련 몰락 등의 영향으로 총평 세력이 약화되면서 사회당도 계급정당에서 사민주의 노선으로 전환(1986년 '신선언') 한다. 고도성장 시기에나 가능한 사민주의 정책은 일본 거품 경제가 붕괴하는 90년도에 먹히지 않았고, 중의원 총선거에서 대패하며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다카시 씨는 제1야당인 시절 사회당은 여당인 자민당을 견제하며 일본 사회 우경화를 막아내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새로 생기는 노조는 대부분 기업노조였어요. 총평마저 무너지고 나서 일본의 노조는 정부, 자본과 협조하는 길을 걸어요. 예전에는 파업도 했었는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일본에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데 정규직 노조는 이제 비정규직의 문제는 외면해요. 정규직을 지키는 투쟁밖에 하지 않아요."

일본 내 파견 노동 상황은 어떻습니까.

-파견업은 지금처럼 확대되기 전에는 말 그대로 그 분야의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맡았어요. 지금에 와서는 파견 노동의 성질이 달라졌죠. 일본 비정규직 문제는 90년대 시작해서 2000년 이후 폭발적으로 심화됩니다. 불법 하도급에 불법 파견 문제도 생겨요. 파견은 전문성이 필요한 일부 직종에 제한적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일본도 한국도 무작정 확대하려고만 해요.

일본을 벤치마킹 하려 했는지, 박근혜 정부는 제조업 노동자 파견 합법화를 시도했습니다. 하청노동자를 원청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도 나오고 있지만, 한국 아사히글라스 사례처럼 실제로는 불법파견의 형태로 하청노동자를 사용하면서 법망을 피하는 문제도 있어요. 한국 아사히글라스는 아사히글라스그룹의 계열사인데, 일본에는 아사히글라스 하청노동자 해고 문제가 알려져 있나요?

-거의 몰라요. 해외 공장이 있는 일본 기업은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만약 한국이 아닌 미국, 유럽에서 해고 문제가 발생하고 투쟁이 벌어진다면 난리가 날 겁니다. 일본과 한국이 같은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봐요.

한국 노동자를 응원해야 해요. 일본에서 해야 하는 일은 일본 기업이 해외에서 하는 나쁜 짓을 일본 사회에 알리는 것입니다. 저도 그 노력을 할 거예요. 한국 아사히글라스 투쟁은 일본 노동운동의 과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업의 책임을 인정하게 해야 합니다.

일본의 기업노조인 아사히글라스 노조는 아무것도 안 해요. 일본 노동운동가는 그들에게도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한국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의 투쟁은 사실상 일본 노동운동가가 해야 할 일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제대로 싸워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나쁜 점만 배우지 말고, 좋은 점을 본받아야 합니다. 한국은 탄핵을 했잖아요. 무조건 대단합니다. 일본에서는 못해요. 아베 총리가 얼마나 기막힌데 지금.

*통역: 야스다 유키히로 일본 노동넷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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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뉴스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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