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 소니픽처스코리아



*주의!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983년 이탈리아 남부 어딘가. 매년 여름 고고학자이자 교수인 펄먼(마이클 스털버그)은 자신의 별장으로 대학원생들을 초대한다. 1983년 여름, 미국인 올리버(아미 해머)가 펄먼을 방문하고 올리버는 펄먼의 아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잊지 못할 여름을 보내게 된다.

이탈리아 남부의 쏟아지는 여름 햇살만큼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17세 소년 엘리오는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거나 수영장에 몸을 담근 채 편곡을 하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바에서 시간을 보낸다. 마당에는 각종 과일 나무들이 있고, 집 안 곳곳에는 각기 다른 언어로 쓰인 책들이 즐비하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가 자유자재로 오가는 별장에는 매일 저녁 다양한 사람들이 초대되고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엘리오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영화 속 엘리오의 가족은 '부르주아 엘리트'로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피가 섞인 유대인이다. 아들과는 불어로 남편과는 영어로 가정부와는 이태리어로 대화 하는 엄마 아넬라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지 여부를 아들의 선택에 맡긴다. 그리고 아빠 펄먼은 한참 어린 대학원생이 자신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자신의 오류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후배의 총명함을 존중하는 학자이면서 아들에게는 그 어떤 권위와 금기도 내세우지 않는, 한 마디로 쿨한 중년이다. 자유로운 가족 분위기 안에서 10대의 동성애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들의 성 정체성 혼란을 이야기하는 데 반해 엘리오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 컷.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 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자연스럽게 가까워 지는 두 사람, 유대인 목걸이의 의미

열일곱의 소년이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하는지 영화는 서두르지 않고 그의 심리를 천천히 따라간다. 흠잡을 데 없이 매력적인 외모, 솔직하고 무심해 보일 정도로 스스럼없는 태도의 미국인 청년 올리버에게 엘리오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적대감을 동시에 느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작은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를 자극한다.

시내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올리버와 함께 외출한 엘리오, 자신의 선의에 "나중에 보자"라고 말하며 무심하게 혼자 가버리는 올리버에게 엘리오는 서운함을 느낀다. 이후 올리버가자신의 피아노 연주에 관심을 보였을 때 엘리오는 큰 기쁨을 느낀다. 상대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신경이 쓰이던 소년은 이때부터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확신하기 시작하고 여자와 끈적한 춤을 춘 올리버에게 자신의 질투심을 표출하는 데도 거리낌 없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엘리오는 상대가 남자여서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고민했다. 그러나 엄마 아넬라가 읽어준 16세기 프랑스 로맨스 소설 '헤프타메론'의 한 대목(기사가 공주에게 고백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는)을 듣고 고백을 결심한다. 그는 "넌 정말 모르는 게 없구나"라고 말하는 올리버에게 "정작 알아야 할 것은 하나도 모르는 걸요", "당신이 알아야 한다고, 아니 알아줬으면 해서 말하는 거예요"라고 고백한다.

올리버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엘리오는 올리버와 첫 키스를 하게 되고 이를 기점으로 엘리오는 과감해진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외모는 물론이고 주변 환경, 성격, 심지어는 입는 옷의 색도 다르다. 그런 그들 사이에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점일 것이다(처음 시내 외출을 함께 했을 때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이 동네에서 유대인은 우리 가족과 형밖에 없어요"라고 말한다). 엘리오가 올리버가 걸고 있는 것과 똑같은 유대인 목걸이를 한 것은 유대인이자 양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절차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올리버와 공통 분모를 찾은 엘리오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사랑의 증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 어 네임> 스틸 컷.

영화 <콜 미 바이 유 어 네임> 스틸 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를 부른다는 것은

엘리오가 한 걸음 다가가면 올리버는 한 걸음 물러선다. 영화는 철저하게 엘리오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올리버가 어떤 갈등을 겪는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수적인 미국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그가 느꼈을 심적 갈등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럼에도 두 남자가 서로를 향하는 확실한 마음은 숨길 수가 없고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19세기에 전복된 배의 잔해에서 조각상을 발굴한 팔머는 고대 조각상들의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의 모호성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그들을 원하게 한다고 말한다. 수세기 전의 작품, 한때 찬란하였으나 세월이 흘러 녹슬고 부서진 것들에서 여전히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듯이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의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한 번 뿐인 첫 사랑, 고통스럽고 아파도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그 사랑이 끝이 나도 사랑의 감정은 몇 번이고 부활 가능하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 컷.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 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올리버와 엘리오는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를 부르는 방식으로 서로의 사랑을 증명하고 확인한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이기도 하다. 너를 사랑하고 너를 원한다는 말 대신,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불렀을 때 네가 너의 이름으로 답을 한다면 그것은 너도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상대가 잘생기고 똑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라서 사랑하는 것"이라는 팔먼은 어떤 삶을 살든 사랑에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아들에게 말한다 그의 말은 사랑을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추신
1. 이탈리아의 눈부신 햇살과 그 아래 빛나는 초록빛,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그곳에 있다면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2. 영화는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3. 이 영화로 오스카 각색상을 받은 제임스 아이보리는 원래 자신이 연출을 할 생각이었으나 주연 배우로 캐스팅 되었던 샤이아 라보프와 제작사간의 갈등으로 영화가 중간에 한 번 무산됐다고 한다. 이후 루카 구아다니노가 연출을 맡았다.
4. 후속편이 곧 제작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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