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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운이 느껴지는 고양생태공원.
 봄 기운이 느껴지는 고양생태공원.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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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언제부터 시작될까요? 예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면 봄이 시작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무르익은 봄이 떠날 준비를 하는 건데, 그런 것까지 꿰뚫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봄은 겨울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부터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한다는 것을.

생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한겨울, 폭설이 내리면 고양생태공원은 순식간에 겨울왕국으로 변합니다. 매서운 칼바람이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쉬지 않고 불어댈 때면 겨울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아집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특히 계절 변화가 그렇습니다. 나무와 풀, 연못이 온통 눈으로 덮여있어도 그 밑에 숨이 있는 생물들은 숨을 죽인 채 새 봄을 맞을 준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3월이 되면서 자주 고양생태공원 산책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대기가 뿌연 날이 많아 자주 공원을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폭설이 온 날에나 너구리나 고라니 발자국을 확인하러 나갔을 뿐입니다.

고양생태공원의 겨울
 고양생태공원의 겨울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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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자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포근해졌습니다. 미세먼지도 조금은 잠잠해진 듯 뿌옇던 대기도 눈에 띄게 맑아졌습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산책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실은 산책을 빙자해서 우리 공원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산책을 하면 봄기운이 땅 위로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게 보입니다. 나뭇가지에 찾아와 앉는 텃새들도 날씨가 따뜻해지자 생기를 되찾은 것처럼 목소리에 기운이 넘칩니다. 이럴 때면 산책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음은 분주해집니다. 공원에 깃든 봄의 흔적을 찾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산책로 한쪽에서 너구리와 고라니 똥을 발견했습니다. 상태를 보니 우리의 생태시민들이 볼일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나서 공원 여기저기를 뛰어다녔을 그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쩌다 발견되던 대륙족제비 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륙족제비 똥이 여러 차례 발견돼 어쩌면 그들이 우리 공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고 있었거든요.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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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마른 덤불 사이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가 살다간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낡은 둥지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보입니다. 지푸라기며 나뭇가지 등으로 만든 작은 둥지는 밥공기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둥지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신혼살림을 차려 알을 낳아 새끼를 키웠고, 새끼가 성장하자 함께 집을 떠났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금세 퇴락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새둥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들의 온기가 사라진 둥지는 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폭설에 시달리면서 찌그러져 원래의 모양을 잃었습니다.

봄을 맞이해 공원을 떠났던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돌아온다고 해도 저 둥지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새는 한 번 떠난 둥지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습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새 짝을 만나 새 둥지를 만들어 새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낡은 빈 둥지는 계절이 바뀌기 전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겨울은 봄부터 가을까지 새들이, 짐승들이 살았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잎이 무성했던 나무들이 잎을 떨구면 거기에 숨어 있던 둥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어쩐지 여름에 이 주변을 지날 때 새들이 요란하게 우짖으면서 난리를 떨더라니, 사람들이 새끼가 있는 둥지에 다가갈 것 같아서 경계하느라 그랬구나.

오색딱따구리의 자작나무 집
 오색딱따구리의 자작나무 집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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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생태공원 자작나무 군락지
 고양생태공원 자작나무 군락지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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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생태공원을 상징하는 깃대종인 오색딱따구리는 잘 알려진 것처럼 나무에 구멍을 뚫어 집을 짓습니다. 따다다닥, 딱딱.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파는 소리는 무척이나 요란합니다. 이들이 나무에 구멍을 뚫는 것은 꼭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숨어 있는 곤충 유충을 잡아먹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오색딱따구리가 자작나무에 뚫어놓은 구멍은 우리 공원의 자작나무 군락지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쇠물닭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화지 수초 안에 집을 짓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둥지 내부를 확인하지 못합니다. 설령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해도 절대로 가까이 가서는 안 됩니다. 새들은 외부인이 침입하면 두려움과 경계심을 갖고 알을 버려두고 도망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원은 새들을 먼발치에서 관찰하되 절대로 가까이 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쇠물닭
 쇠물닭
ⓒ 조병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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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끔은 새둥지 안이 궁금합니다. 새끼들이 복닥거리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말이 통한다면 그냥 딱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조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안타깝기는 합니다.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새집(인공둥지)을 만들어 나무에 매달아주기로 했습니다. 딱 12개만. 아무리 인공둥지라도 사람이 가까이 가서 관찰하면 안 됩니다. 새들의 경계심은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대신 인공둥지 가까이에 CCTV를 달면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종의 몰래 카메라이자 새의 사생활 엿보기인 셈입니다.

인공둥지를 달고 뿌듯한 마음으로 새들이 깃들기를 기다렸는데 새들이 어찌나 경계심이 강한지, 인공둥지를 단 첫해에는 전부 미분양이었습니다. 단 한 곳도 새들이 입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괘씸한 녀석들. 기껏 정성들여서 둥지를 만들어 분양했더니, 아예 분양신청조차 안 해? 공짜라니까. 우리는 절대로 위험한 존재가 아니야. 믿어줘. 툴툴거렸습니다.

다행히 다음 해에는 분양 완료. 나중에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쩌면 새집증후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새로 만든 인공둥지는 사람의 흔적이나 인공의 냄새가 남아 있어 새들이 찾아왔다가 도로 나갔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걸 몰랐던 거죠.

인공둥지에 새들이 들어와 사는 모습을 확인하고 안심했습니다. 거기서 새끼도 많이 낳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아주렴. 인공둥지 앞을 지날 때마다 두 손을 모아 기원했습니다.

고양생태공원의 인공둥지
 고양생태공원의 인공둥지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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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어 새들은 성장한 새끼들과 함께 떠났고, 인공둥지는 다시 비었습니다. 인공둥지를 수거해서 청소하려고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난장판이 따로 없었습니다. 새 깃털이며 나뭇가지, 지푸라기 등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나 새나 보금자리를 따뜻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꾸미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비록 가구는 없지만 새들은 저마다 개성이 강하게 내부 인테리어를 했던 것입니다.

인공둥지를 청소합니다. 우리는 새둥지 청소 전문가야. 둥지 안에 가득 찬 깃털이며 지푸라기, 나뭇가지 등을 꺼냈습니다. 묵은 먼지도 털어냅니다. 인공둥지를 다시 나뭇가지에 매달았더니, 이제는 새들이 거리낌 없이 찾아 들어 갑니다.

이제는 사람이 보지 않을 때 인공둥지 빨리 차지하기 경쟁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분양이 완료되었습니다. 새들의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다행입니다. 그 둥지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고,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인공둥지는 고양생태공원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리 공원에 인공둥지까지 포함해 새집이 몇 개나 있는지 묻는 탐방객들이 있습니다. 글쎄요? 몇 개나 있을까요? 우리도 모릅니다. 새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우리 공원에 서식하고 있는 것만 파악할 뿐 새집이 몇 개인지 확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서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새들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관찰자이기 때문입니다.

까치집
 까치집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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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몇 종의 새들이 우리 공원에 나타나는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공원에서 텃새와 철새를 전부 포함해서 74종의 새가 관찰됐습니다. 관찰되는 새는 매년 늘고 있습니다. 원앙, 해오라기, 붉은머리오목눈이, 쇠물닭, 오색딱따구리, 때까치, 황조롱이, 후투티, 파랑새, 청호반새, 물총새 등등.

그렇다고 이들이 전부 우리 공원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가며 들르는 새들도 있습니다. 놀러 오는 것이죠. 먹이를 구하기 쉬워 들르는 새들도 있습니다. 장을 보러 오는 것이죠. 우리 공원에 새들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가며 들르는 새들이 있다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공원이 생태공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가을에 따뜻한 남쪽나라로 떠났던 철새들이 돌아오면 가장 먼지 둥지를 만들 것입니다. 빈 인공둥지를 찾아들기도 할 것입니다. 나뭇가지 위에, 우듬지 위에 새 둥지가 하나씩 둘씩 모습을 드러내면 진짜 봄이 왔다는 실감을 합니다. 새들이 혼인비행을 하거나 짝짓기를 할 때는 둥지 만들기가 끝나 본격적으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때면 봄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을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양생태공원·생태교육센터 코디네이터입니다.



태그:#고양생태공원, #인공둥지, #오색딱따구리, #새둥지, #새집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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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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