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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본회의장 점거 농성부터 2018년 단식까지
두 사람 경험으로 보는 대구시의회 쪼개기의 역사

 2005.12.24 당시 강황 대구시의회 의장(가운데)이 새벽 기습 쪼개기를 시도하고 있다. 강 의장 왼쪽으로 의회 직원이 손전등(붉은 원)으로 원고를 비추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대구시의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2005.12.24 당시 강황 대구시의회 의장(가운데)이 새벽 기습 쪼개기를 시도하고 있다. 강 의장 왼쪽으로 의회 직원이 손전등(붉은 원)으로 원고를 비추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대구시의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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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조례안은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이 개정되어 주 40시간 근무제가 2005년 7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됨에 따라 이와 관련한 사항을 정비하려는 것으로서···"

2005년 12월 26일 오후, 류규하 대구시의원(당시 49세)이 조례안 심사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본회의장 불이 꺼졌다. 방청석을 채웠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시의원들에게 손전등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왜? 그때처럼 해봐", "이걸로 해보라고" 손전등을 나눠주며 야유하는 사람들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반발하는 시의원들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2005.12.26. 김성년 당시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수성구당협 사무국장(현수막 든 오른쪽 사람)은 동료와 함께 대구시의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박차고 올라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사진=김성년 제공)
 2005.12.26. 김성년 당시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수성구당협 사무국장(현수막 든 오른쪽 사람)은 동료와 함께 대구시의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박차고 올라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사진=김성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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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틈을 타 김성년(당시 28세)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수성구당협 사무국장은 서둘러 의장석으로 향했다. 현수막을 손에 들었다. 동료 한 명과 의장석을 밟고 올라서 현수막을 펼쳤다. 까만 배경에 '근조, 대구시의회'라고 쓴 현수막이 활짝 펼쳐졌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이틀 전 새벽, 김성년 사무국장은 시의회 2층 본회의장 맞은편 작은 회의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새벽 5시를 지나 6시에 조금 못 다다랐을 때, 김 사무국장은 주변이 소란스러워 잠을 깼다. "안에서 무슨 소리 난다!", "한다, 한다!"

본회의장 입구를 지키던 동료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본회의장으로 달려가 문고리를 돌렸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좁은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봤다. 옅은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회의장에는 20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자리에 앉거나 서성이고 있었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회의장 앞을 지킨 게 무색했다. 하필 이럴 때 태수 형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들어갔지?

2005년 12월 24일 새벽 6시(대구시의회 회의록 기준), 본회의장 안은 다급했다. 강황(당시 60세) 대구시의회 의장은 국방색 두꺼운 외투를 입고 의회 건물 뒤편으로 접근했다. 건물 뒤편 외벽에는 철제사다리가 설치돼 있었다. 사다리는 그대로 본회의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비상구와 맞닿았다. 강 의장과 시의원 21명은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의회 건물 밖에서 본회의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건물 안을 지키는 사람들은 몰랐다. 들키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강황 의장은 서둘러 의장석에 올랐다. "의석을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준비된 원고를 읽어 회의 시작을 알려야 했다. 원고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회의장 안은 너무 어두웠다. 전등을 모두 켜지 못했다. 전등을 켰다간 건물 안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들킬지도 몰랐다. 강 의장 옆에서 의회 직원 한 명이 손전등을 켜 원고를 비추었다. 그제야 원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제148회 대구광역시의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당초 제148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의사일정을 12월 26일 오후 2시에 개의토록 의결하였으나 대구광역시의회 회의규칙 제16조 규정에 의하여 의장이 긴급하다고 판단하여 오늘 본회의를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제148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오늘로 하고 제3차 본회의를 12월 26일 2시로 의사일정을 변경하고자 하는데 의원 여러분 이의가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강 의장은 손에 든 의사봉을 조심스레 세 차례 허공에서 내려쳤다.

의사일정 제1항 '대구광역시 구·군의회 의원 선거구와 선거구별 의원 정수에 관한 조례 전부 개정 조례안'을 상정했다. 이렇게 새벽이슬을 맞으며 생쥐처럼 회의장으로 숨어든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국회는 그해 8월 4일 공직선거법을 개정했다. 1개 선거구에서 1명을 선출하던 구·군의원 선거를 1개 선거구에서 2명~4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전환했다. 9월 30일 꾸려진 대구시선거구획정위원회는 세 차례 회의 끝에 구의원 4명을 뽑는 선거구를 11개나 만들었다. 11개나 되는 4인 선거구를 2명 2인 선거구로 쪼개는 임무가 강 의장에게 주어졌다.

장태수(당시 34세)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대변인은 새벽바람을 맞으며 시의회로 향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에 이런 식으로 날치기 해버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명색이 시의원인데 비상구를 이용해 회의장으로 진입하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중대선거구제로 공직선거법이 바뀌고 전국에서 4인 선거구를 늘리는 획정위 안이 마련됐다. 하지만 각 시·도의회에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거대 양당의 셈법에 따라 번번이 2인 선거구로 쪼개졌다.

장태수 대변인과 당직자들은 12월 20일부터 시의회 농성을 시작했다. 참여정부였다. 경찰이 함부로 사람을 끌어내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황 의장과 면담도 했다. 서두르지 말라고 요청했다. "법정 시한이 넉넉하게 남았으니까, 이번 회기에 급하게 처리하지 말자. 처리 미뤄두고 다른 정당, 시민단체랑 토론회를 해보고 합의안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어요" 의장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농성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23일 전국 곳곳에서 4인 선거구가 2인 선거구로 쪼개졌다. 경북도의회는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이 반발해 본회의장에서 회의가 어려워지자 상임위원회 회의실 문을 걸어 잠그고 쪼갰다. 충북도의회도 일부 의원 반대와 시민단체 반발 속에 쪼개기 처리했다. 본회의를 26일로 예정한 대구시의회는 23일 저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예정대로 26일에 쪼개기 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장태수 서구의원(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이 2005년 당시 대구시의원들이 잠입했던 비상구를 가리키고 있다.
 장태수 서구의원(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이 2005년 당시 대구시의원들이 잠입했던 비상구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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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는 허를 찌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의원 27명 중 한나라당 소속 23명만 '기습 작전'을 공유했다. 무소속 3명과 열린우리당 1명에겐 24일 새벽 5시가 넘어서야 문자와 전화로 본회의 시작을 알렸다. 한나라당 시의원 22명(김충환 시의원 불참)이 본회의장 잠입을 시작한 후에야 '작전'을 알려준 셈이다. 뒤늦게 연락받은 의원 1명이 헐레벌떡 의회로 달려왔지만 상황은 이미 끝난 후였다. 3분. 강황 의장이 본회의 일정 변경을 알리고, 4인 선거구 쪼개기를 마무리하는 데까지 3분이 채 안 걸렸다. 의원'님'들은 들어왔던 사다리로 다시 퇴장했다.

그해 각 시·도의회가 보인 4인 선거구 쪼개기 '작전' 가운데 대구시의회 작전은 양호한(?) 축에 들었다. 경남도의회는 12월 28일 의회 주차장에 주차된 '경남 70나9487' 버스 안에서 본회의를 열었다. 경남 지역 진보정당과 시민단체 저항에 부딪힌 경남도의원 총 49명 중 28명이 버스에 올라 4인 선거구를 쪼갰다. 경남도의회는 회의 장소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는 것을 명분 삼아 주차장도 도의회 내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2010년 2월에도 장태수, 김성년 두 사람은 같은 이유로 대구시의회 앞 천막 농성을 했다. 2005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의회 안 진입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점 정도다. 시의회로부터 시설 보호 요청을 받은 경찰은 시의회 내부에서 이들의 진입을 원천 차단했다. 그해에도 대구시선거구획정위는 4인 선거구를 12개까지 늘리는 획정안을 내놨다.

30명 중 29명이 한나라당이었던 대구시의회는 당연하게도 쪼개기를 시도했다. 2월 4일 전원이 한나라당이었던 상임위원회가 4인 선거구를 모두 2인 선거구로 쪼갰다. 곧이어 10일 열린 본회의는 경찰이 의회 입구에서부터 시민단체와 정당 관계자를 막아서면서 2005년보다 수월하게 처리됐다.

 15일부터 단식 농성을 시작한 정의당 장태수(가운데) 서구의원과 김성년(가장 오른쪽) 수성구의원이 옛 기사를 함께 보면서 과거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15일부터 단식 농성을 시작한 정의당 장태수(가운데) 서구의원과 김성년(가장 오른쪽) 수성구의원이 옛 기사를 함께 보면서 과거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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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이 흘렀다. 2018년 3월 15일, 장태수, 김성년 두 사람은 대구시의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2005년 이후 13년. 그 사이 장태수 대변인은 3선 서구의회 의원이 됐고, 김성년 사무국장은 재선 수성구의회 의원이 됐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 의회에서 부의장도 맡았다. 그런데도 이들은 13년 전, 8년 전과 같은 이유로 단식을 시작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시선거구획정위는 4인 선거구 6개 늘리는 획정안을 시의회로 넘겼다. 여전히 자유한국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구시의회는 이번에도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갤 심산이다. 한국당을 제외한 정당들과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반대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건 사실이다.

의회 내에서 쪼개기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1명 정도다. 바른미래당 시의원이 4명 있지만, 이 문제에선 적극적이지 않다. 시의회가 나서지 않는 한 시민단체나 시의원이 없는 정당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물리력을 동원해 회의 자체를 막거나 곡기를 끊으며 호소하는 것뿐이다.

제도적 변화가 없으면 이들은 4년 뒤에도 본회의장 점거 농성을 하거나, 시의회 앞 천막 농성을 하거나, 단식 농성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말 불공정한 제도라는 게, 선수가 직접 게임의 룰을 만들고 있어요. 그것도 경기에 참가하는 1개 팀에서만 결정하는 거예요. 심판이랄 수 있는 선관위가 획정안을 만들거나 독립된 기관이 획정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될 거예요"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장태수 서구의원이 말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단식 농성을 하는 것도 결국 의회에 다양한 의견을 가진 정치 세력이 진입해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갈등이라고 봐요. 우리가 의회에 진입해 있다면 단식 농성이 아니라 필리버스터를 하든 의회 내에서 활용 가능한 방법으로 저지를 해볼 수도 있을텐데 말이에요. 그걸 기초의회에서만이라도 해보자고 이렇게 부탁을 하는데도, 그것마저도 안 된다고 하는 거니까, 욕심이 끝이 없네요"

내일(19일) 대구시의회는 오전 10시에 소관 상임위를 열어 획정안을 심사하고, 오후 2시에 본회의를 통해 확정할 계획이다. 애초 20일로 예정했던 본회의를 19일로 당겼다. 상임위에서 심사한 당일 본회의를 여는 건 이례적이다. 이번에도 4인 선거구를 남겨두지 않겠다는 신호다.

 2018년 3월 15일, 장태수, 김성년 두 사람은 대구시의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2018년 3월 15일, 장태수, 김성년 두 사람은 대구시의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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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뉴스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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