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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낯선 땅 경북 성주로 이사를 오고 난 이후로 대형마트에 가는 일은 사라졌다. 쇼핑을 하러 다닐 여유도 없지만 성주라는 시골에서 농산물 생산자인 이웃들과 직접 사고팔며 전달하는 '불편한' 거래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웃이 성주사람들이 모여있는 '안전한 먹거리 단톡방(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나를 초대했다. 농가에서 갓 생산한 제철 과일과 채소들의 싱싱한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성주에서 생산되지 않아도 직접 써보고, 경험한 좋은 먹거리를 소개하고, 공동구매로 추진하는 번거롭지만 함께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도시에서 생활할 때는 살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과일을 냉장고에 꽉꽉 채워두고 먹었다. 참외로 유명한 성주는 참외뿐 아니라 딸기, 토마토, 수박, 거봉, 단감, 사과, 무화과, 블루베리, 생강, 배추와 무, 고구마, 감자, 마늘과 양파 등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과일과 채소가 풍부하게 생산되었다. 시골마을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며 나는 만족했다.

'안전한 먹거리 단톡방'은 2016년 7월13일 느닷없이 들이닥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때문에 급격히 변해버렸다. 이웃들 간에 먹거리 정보를 소통하던 SNS 단톡방은 사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 초대된 친구는 1318명. 최고 인원을 채웠다. 초대받고 싶은 사람들은 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안전한 먹거리 단톡방'은 '사드반대1318'로 바뀌었고, 먹거리 SNS소통의 장은 '우리농산물 직거래' 밴드(폐쇄형 소셜미디어)로 옮겨갔다. 그리고 나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먹거리와는 담을 쌓고 살 정도로 사드반대투쟁에 열렬히 참여했다.

'우리농산물 직거래' 밴드에 모인 사람들은 불과 일 년 반 전에는 함께 "사드배치 결사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던 성주사람들이다. 성주군 김항곤 군수 등이 사드를 성주의 제3부지로 옮기는 것에 투항해버리자, 사드반대 촛불을 들었던 성주군민들의 상당수가 촛불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매일 저녁 성주촛불의 자리는 텅텅 비기 시작했다.

소성리의 롯데골프장으로 사드배치가 확정되어버리자, '3부지는 폭탄을 돌려막기'에 불과하다면서 사드를 반대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촛불을 떠나갔다. 지금 사드는 배치 완료되었고, 사드가 배치된 지역인 소성리마을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물론 김천 촛불과 원불교 종교인들의 저항이 멈추지 않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었다.

소성리평화장터는 매주 수요일 사드반대 소성리집회와 토요일 촛불문화제, 딱 두 번만 부스를 설치하고 장을 열었다. 소성리를 찾아온 사람들은 처음엔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고, 조금이라도 사드반대에 도움을 주고 싶은 선한 마음에 평화장터를 이용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성리로 찾는 사람들은 더 이상 새롭지 않았고, 물품을 이용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사드반대 투쟁기금을 만들어야 할 평화장터의 매출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평화장터의 점장이라고 불리는 내 입장에서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소성리평화장터를 위해 용기 내다

나는 '우리농산물 직거래' 밴드를 찾았다. 처음엔 다른 농가생산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물건이 얼마에 판매되는지를 올렸다. 밴드에 모여있는 성주사람들은 나의 정체를 알고 있을 테다.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하게 느껴졌다. 핸드폰 화면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의 반응을 제대로 안단 말인가? 어차피 내 정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소성리평화장터를 제대로 알리자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소성리평화장터의 취지를 알렸다. 성주의 끝자락에 있는 산골마을 소성리에 사드는 배치되었지만, 소성리주민들은 미군이 마을을 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한반도 사드배치는 필요 없다고 주장해왔던 우리는 사드를 '뽑을'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했다. 사드 뽑는 길에 발자국을 보태기 위해서 소성리평화장터를 열었다고 했다. 소성리평화장터의 판매수익금은 사드 철회를 위한 투쟁에 쓰일 거라고 당당히 올렸다.

밴드 안의 사람들은 이 글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밴드운영자는 밴드의 취지가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는 방인 만큼 취지에 벗어난 글은 삼가 달라'는 공지를 상단에 띄워놓았다. 공지의 주의사항은 따르되, 물건판매의 취지로 소성리의 싸움은 알려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을 수 있을 만한 물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직접 제작한 호두나무도마. 박 선배님의 작품.
 손으로 직접 제작한 호두나무도마. 박 선배님의 작품.
ⓒ 박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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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가 많다. 그날도 페이스북 창을 띄웠고, 갈색의 중후한 색상이 눈에 띄는 도마가 벽에 걸려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박 선배의 작품이었다.

경산에서 목공예공방을 운영하는 그와의 인연은 내가 공공운수노조 대경지역지부 상근하던 시절부터였다. 경산시의 민간위탁 환경업체 노동자들은 일 년 내내 조용할 날 없이 노사간의 대립을 겪었다. 경산 지역 녹색당 당원이었던 박 선배는 늘 연대해줬다. 연대로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삼평리송전탑공사반대 투쟁 때 그가 늘 조용히 오며 가며 여러모로 농성장의 손질을 해줬던 고마운 기억이 내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가 손수 만들었다고 올린 도마가 얼마일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평화장터의 존재를 모를 리는 없겠지만, 땀 흘려 노동한 대가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할까 쉽게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내가 도마를 사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그런데 이왕이면 평화장터에서 구매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만 보다가 용기를 내서 그에게 전화를 했고, 그는 내게 "이런 건 전화로 이야기 하는 게 아니다"며 소성리토요촛불에 방문했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호두나무로 만든 목공예 도마를 평화장터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의논했다. 그는 평화장터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했고, 돕고 싶어했다. 나는 잘 팔 자신은 없었지만, 좋은 물품을 받을 수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 그가 팔리지 않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도록 편안히 대해주었다.

소성리평화모임의 반응은 달랐다. 생협이나 시중에서 판매하는 소나무도마나 다른 곳의 도마 가격에 비해 비싸다는 평이 나오면서 손으로 직접 만든 호두나무 도마에 대해선 판매가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래서 사실 팔릴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구색맞추기로 평화장터 물품의 가짓수가 늘어난 것에 위안삼았다.

나무도마의 '반전' 인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농산물 먹거리' 밴드에 호두나무 도마의 사진을 올리고 크기별 사이즈와 작업한 사람의 이력을 소개했더니, 사람들의 반응은 남달랐다. 하나쯤 구입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몇몇 사람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그 반응에 또 반응하면서 호두나무 도마는 순식간에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문을 받고 수량을 모아서 손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꽤나 긴 시간동안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기다리겠다면서 주문을 한 거다.

거기에 밴드뿐 아니라 평화장터를 이용했던 사람들에게 알렸더니 도마 주문은 서울, 인천, 당진, 대구, 김천 등 먼 거리에서 구매신청을 한 거다. 예상치 못했던 주문에 공장가동이 시작되고, 나는 갑자기 기고만장해져서 '우리농산물 먹거리' 밴드에 평화장터에 관해 좀 더 솔직한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사드는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한국 땅으로 들어왔지만, 사드를 운영하는 자들은 미군이고, 사드가 배치된 곳은 미군기지가 들어선다는 뜻이다. 결국 소성리에 미군기지가 하나 건설되었다. 사드도 문제지만, 앞으로 미군기지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소성리 사드 뽑는 투쟁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노골적으로 소성리 사드반대 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렸다.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는 없었다. 그 이후부터 성주사람들의 주문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고생한다는 말 한 마디를 듣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물품의 질이 워낙 좋다 보니 구매자의 평은 만족스러웠다. 소성리부녀회장님의 된장 맛을 본 사람들은 이웃에게 소개해주었고, 소성리 약초언니의 쌈장 맛이 환상적이라고 품평을 해주었다. 원불교에서 제공해준 경옥고를 산 사람은 주변의 일가친척들에게 경옥고를 추천해서 팔아주었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건 성주의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이 물품을 임시보관하는 장소로 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그 덕분에 성주사람들 간의 거래는 훨씬 활기를 띠게 되었다. 또 다른 성주주민 한 분은 오토바이 상가를 운영하는데 평화장터의 물품을 임시보관처로 제공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성주읍내에서 물품을 보관해줄 곳이 생겨서 직접 배달하지 않아도, 이용자들이 찾아가는 질서가 자리를 잡게 되었으니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성주읍내뿐 아니라 초전면 소재지의 참새방앗간 사장님도 물품을 임시보관할 수 있도록 배려주었다. 소성리평화장터를 귀히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현상이고, 미래가 밝아 보였다.

긴 시간을 기다려 호두나무 도마가 소성리로 도착했다. 작업에 공들였던 박 선배는 포장에도 매우 신경을 썼다. 이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아하기까지 한, 품격높은 호두나무 도마가 상품이 되어 도착했다. 호두나무 도마를 주문한 성주사람들은 아까워서 음식을 해먹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주문은 이어졌다.

도마는 너무 예뻐서 음식을 해먹기 아깝기도 했지만, 도마가 예뻐서 요리하는 즐거움이 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호두나무도마를 선물하다

규란엄니가 오랜만에 마을회관으로 점심을 하러 오셨다. 콩나물밥에 맛있는 간장과 김가루로 비벼먹었다. 규란엄니의 남편인 용각어른이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는 암담했다.  췌장암이었다. 용각어른은 음식을 먹지 못해 점점 야위어갔다. 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허약해져 갔다. 용각어른 곁을 지키고 있는 규란엄니도 환자 곁에서 혼자 제대로 먹을리 없었다.

부녀회장님과 마을엄니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을회관에서 맛있는 먹거리가 있을 때면 규란엄니를 데리고 와서 밥을 먹이려는 그 마음이 헤아려진다. 규란엄니를 만나도 절대로 표내지 않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평소의 모습대로 웃고 떠들고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늘 그렇듯이.

엄니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지만, 마을회관에서만큼은 근심걱정 잊고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웃고 떠든다.

용각어른이 죽조차도 먹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지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이 미어진다. 바로 곁을 지키며 바라보는 규란엄니 속이 얼마나 타들어갈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 같다. 호두나무 도마를 받았을 때, 규란엄니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다.

"엄니, 호두나무 도마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이렇게 이쁜 도마로 채소 썰어서 아버님 맛있는 죽 끓여줘요. 그러면 아버님도 죽은 잘 드실 수 있을지도 몰라요. 요리하는 사람이 신이 나야 음식도 맛있고, 기운도 음식에 들어가서 아버님 살찌우지요."

규란엄니의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우리영감이 많이 아파. 알제." 규란엄니는 남이 들을까봐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야기 들었어요. 그래서 엄니한테 도마선물하는겨... 아버님 맛있는 요리해줘서 빨리 나으라고."

울음을 참는 규란엄니를 등 뒤로 하고 나섰다. 나도 같이 울면 안 되니까. 빨리 나섰다.

눈물이 많은 규란엄니의 눈에 눈물마를 날이 없을 거 같은 앞날이 걱정되었고, 나는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잘 몰랐다.

언제까지나 소성리에서 엄니들과 함께 할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엄니들 곁에 있어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혼잣말을 되뇌면서.

2018년 3월 18일


태그:#사드반대, #소성리할매, #소성리평화장터, #평화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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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담대한 순간을 만나고 싶어서 취재하고 노동자를 편들고 싶어서 기록한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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