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87년 개헌 이후 31년 만에 다시 개헌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개헌은 생각보다 훨씬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지, 한 사람의 국민으로 언제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걱정없는 삶을 꿈꿀 수 있는지 개헌은 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만드는 헌법'이라는 기획을 통해 여러분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장애인, 농민, 노동자, 성소수자, 사법피해자, 취준생 등 각자의 위치에서 '내가 생각하는 헌법, 내가 바라는 개헌의 방향'에 대해 자유롭게 기사로 써서 보내주세요. '내가 만드는 개헌'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문화인류학 수업 중에 아직까지도 기억이 남는 말이 있다. 우리는 다문화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그런데 다문화를 그대로 뜻풀이 하면 '다양한 문화'고, 영어로는 'multi-cultural'로 쓸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미디어와 일상생활 속에서 '다문화'는 보통 동남아시아나 기타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에서 온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국에 사는 미국인 아이를 두고 '다문화가정에서 자랐다'고 통상적으로 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차별적인 언어로 볼 수 있다. 물론 다문화란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부정적 함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표현이 특정 국가의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쟤 다문화 가정이래'라며 친구를 따돌리는 그림은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지 않나.

'국민'에서 '사람'으로, 기본권의 확장

기본권의 적용 대상을 '국민'에서 '사람'으로 넓히는 작업은 외부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경청하는 것의 시작이기도 하다.
 기본권의 적용 대상을 '국민'에서 '사람'으로 넓히는 작업은 외부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경청하는 것의 시작이기도 하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결국 이런 모습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내부를 설정해놓고 외부인을 배척하고 타자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그 외부인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이런 배척과 타자화를 정당화하는 데 한몫한다.

현행 헌법 제 2장의 제목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이다. 그리고 제10조부터 제39조까지 '모든 국민은'을 주어로 강조하는 조항들이 나온다. 그러니까, 지금의 헌법은 기본적으로 권리의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처럼 말이다.

현재는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마련해 놓은 '국민헌법' 사이트에 '국민'을 '사람'으로 개정하는 것이 주목받는 안건으로 올라와 있다. 그런데 이 안건의 찬반 숫자가 매우 팽팽한데, 찬성 1만 494명에 반대 9531명이다. 기본권의 범위를 확장하지 말자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문제는 반대 그 자체가 아니라 반대의 이유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댓글들이 한결같다. 이슬람 유입이 쉬워져 테러가 일어나고, 불법체류자들이 늘어나 테러가 일어나고, 난민이 늘어나고... 온통 테러와 난민 걱정 투성이다.

마치 기본권의 영역을 넓힌다는 것이 범죄를 일으켜도 봐주겠다고 말한 것인 양, 혐오와 편견의 댓글들이 흘러넘친다. 오히려 이런 소동들이 기본권의 주체를 '사람'으로 넓혀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무슬림들이 테러를 자행하고, 일부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법 체류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저 사람들은 테러를 일으킬 것이 뻔하니까 수용해서는 안된다'라는 표현은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온다.

혐오표현에 대해 연구하는 법학자 홍성수 교수는 소수자를 일정한 틀에 가둬놓고 한계를 지우는 경우, 그리고 이런 말들에 대해 별다른 제지가 없을 경우 어느 순간 사실로 굳어지고 또 다른 차별을 낳음을 지적한다. 처음에 말했듯 '쟤 다문화 가정이래' 역시 '차별받는 소수자의 속성'을 굳이 언급하여 부른다는 점에서 당사자에게 상처가 되고 차별적 표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국민'에서 '사람'으로 넓히는 작업은 '비국민'이 받는 차별에 대해 경청하는 것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렇듯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을 외국인도 보장받아 우리 공동체 내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야 이런 매서운 차별과 배제를 점차 줄여나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차별금지법을 논의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개헌

차별금지법을 논의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기본권의 확장
 차별금지법을 논의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기본권의 확장
ⓒ 김민준

관련사진보기


2017년 대선에선 차별금지법에 대한 각 당 후보들의 입장이 주목되곤 했다.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하여 이 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실 이 법은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에만 국한하여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유무, 병력, 외모, 나이, 출신 국가와 민족, 인종, 피부색 등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광범위한 요소들에 대해 이유없는 차별을 하지 말 것을 명시하는 법률이다.

당장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여태껏 지연되어왔고 아직까지도 반대가 심한 것만 봐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국민'을 '사람'으로 고치는 작업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비국민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 역시 차별금지법이 지향하는 목표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태그:##개헌, ##기본권, ##차별금지법
댓글1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