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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동의 번화가에서
▲ 상하이 푸동 푸동의 번화가에서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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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에 "중국에서는 거지도 모바일로 QR코드를 내밀며 구걸을 한다. 우리나라도 모바일 지급결제 시스템을 더욱 개발해야 한다"는 논조의 기사가 났어. 맞는 말 같더라. 바야흐로 '모바일의 시대'이니까.

아빠도 어느새 카카오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특히 아빠가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앱의 기능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너희들을 보면 '이게 시대의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디지털화(Digitalization)'나 '모바일화(Mobilization)' 같은 표현을 들을 때면 좋은 것이란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었지. 그런데, 그런 아빠의 생각에 대해서 돌이켜 보게 되는 계기가 생겼단다.

상하이 출장 때 겪은 일이야. 상하이의 동쪽에는 새롭게 생긴 신도시가 있단다. '푸동'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동방명주' 타워 같은 초고층 건물들이 있는 곳이지.

아빠의 출장지도 푸동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빌딩 중 하나였단다. 나름 높은 스카이뷰를 자랑하는 건물 안에서 회의를 했지. 일을 마친 후에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도로로 나왔는데, 문제는 올 때 택시를 타고 오는 바람에 근처의 지리를 숙지하지 못했던 거야. 구글맵으로 지도를 찍어 보니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거리가 제법 있어서 택시를 잡기로 했어.

수많은 택시가 건물 앞을 지나다니고 있어서 금세 잡을 줄 알았는데, 웬걸. 아무리 잡으려 해도 택시가 잡히지 않는 거야. 10분, 20분이 지난 후에는 짜증이 나서 그냥 지하철로 갈까 했는데, 아빠의 동료가 1층에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아직 떠나지 못한 나를 보며 놀랐지.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말했어. 여기서는 모든 사람들이 택시를 앱으로 잡기 때문에 '디디다처' 나 '콰이디다처' 같은, 이름도 생소한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한국의 카카오택시 같은 거지. 그 동료가 나를 위해 대신 차를 잡아주기로 했어. 앱을 이용해 뭔가를 요청하더니 '시간대가 바빠서 택시가 없다'고 하면서 '일반 차량도 괜찮냐'고 묻더라. '그렇다'고 대답했지. 아빠 호텔은 멀지 않아서 크게 상관은 없었거든. 그랬더니 '디디추싱'이라는 앱으로 일반 차량을 불러 주었어. 중국의 '우버' 같은 거야. 덕분에 무사히 호텔로 돌아왔지.

이후에도 아빠는 공항 갈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택시 잡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어(공항 갈 때는 호텔에서 불러주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택시 서비스 앱들은 중국 계좌가 있어야 모바일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인인 아빠는 이용할 수 없었지. 현금결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때는 전해듣지 못했을뿐더러, 앱을 사용한다 해도 중국어가 익숙하지 않으니 어렵더라. 덕분에 중국의 모바일 결제의 발달을 체감하는 동시에, 이를 사용할 수 없는 소비자의 입장도 경험하게 되었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너도 상하이에 가서 그 사회가 요구하는 디지털 플랫폼에 기준을 맞출 수 없어서 아빠처럼 한 없이 택시를 기다리거나, 다른 불편을 겪게 될지도 모르지.
 너도 상하이에 가서 그 사회가 요구하는 디지털 플랫폼에 기준을 맞출 수 없어서 아빠처럼 한 없이 택시를 기다리거나, 다른 불편을 겪게 될지도 모르지.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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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을 다녀온 후에 아빠는 디지털화되는 세상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게 되었어. "Digital is default(디지털 이즈 디폴트)." 디지털로의 변화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적인 것이라는 의미의 이 표현이 어느 순간 아빠의 회사를 감싸기 시작했단다. 그게 옳다고 아빠도 동의했어. 디지털로의 변화를 위한 많은 프로젝트들에도 참여했고, 지금도 하고 있지. 디지털이 아니면 왠지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 변화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고민보다는 디지털로 더 큰 비용을 절약하고, 일을 편리하게 하는 것만 고민했어.

하지만, 상하이에서 디지털 환경에 참여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 택시를 기다리면서 '과연 이 디지털이 소외시키는 건 무엇일까? 아니, 보지 못하는 사이에 잃어가고 있는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도 언젠가는 반드시 삶의 법칙에 따라 노인이 될 것이고,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날이 올 거야. 또한 너도 훗날 상하이에서 그 사회가 요구하는 디지털 플랫폼에 기준을 맞출 수 없어서 아빠처럼 한없이 택시를 기다리거나, 다른 불편을 겪게 될지도 모르지. 책에서 읽었던 문구가 생각났어.

"모든 사람들을 세심하게 대하지 않는 사회에서 하층민의 삶은 가장 고달프다. 동물이 누리는 권리는 그 사회가 가진 섬세함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 오영욱 <왜 중국인은 시끄러운가>

저자가 동물원의 건축 구조를 보고 한 말인데, 인상 깊게 남았지. 숲과 들 속의 동물을 잡아다가 그들이 사는 환경을 조성할 때, A라는 나라는 "동물들이 편하게 살 수 있게 넓은 환경과 편안한 동선을 확보해주어야지"하는 마음으로 만들고, B라는 나라는 "그저 미물일 뿐인데 최소한의 공간과 효율을 감안해서 몰아넣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을 위한 제도와 사회간접자본(도로, 환경 등)들을 구성할 때도 각각 비슷한 마음이 적용되지 않을까?

사회의 약자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을 하면, '과연 지금의 맹목적인 디지털화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해보게 된단다.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해갈 텐데, 그때 적응 못 하는 사람이 바로 아빠가 될 수도 있지 않겠니? 그런 면에서 앞으로는 디지털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려고 해. 다수에게 이익이 된다면 변화를 해야 하는 게 맞겠지만, '제외되는 소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반드시 해봐야 할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

디지털화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디지털화가 되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까?
 디지털화가 되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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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나가서 생각해볼까?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책을 보면 2가지 인상적인 표현이 나온단다. 첫 번째는 "디지털 경제가 일자리 창출에 실패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노동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기본 목표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야. 정말 맞는 이야기 같아.

예를 들어, 아빠가 어린 시절 은행에 가보면 창구에서는 직원들이 손으로 돈을 받아서 몇 번씩 세어보고, 주판이나 계산기를 통해 확인하고 얼마를 예치했는지, 또는 얼마를 인출해갔는지를 통장에 적은 후에 작은 도장을 찍어 주었지. 아마 하루가 끝나고 나면 결산이란 이름의 작업을 위해 한 지점에서 얼마나 돈이 오고 갔는지를 확인하며 계산을 했을 테지. 본부, 본사로 올라가면서 이를 계산하기 위한 인력들도 훨씬 더 많이 필요했었을 거야.

지금은 아빠만 해도 종이통장을 쓰지 않은 지가 10년은 된 것 같고, 아예 카카오뱅크 같은 온라인으로만 존재하는 은행들도 탄생해 성장하고 있지. 사용하는 고객 입장에서는 편리하기 이를 데 없는 시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교적 좋은 직업으로 분류되는 은행원의 수는 줄어들고 있지.

씨티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의 은행원이 줄어들 거고, 인공지능 등의 기술 발전이 이들의 자리를 위협할 거라고 해. 그런데 과연 이렇게 괜찮은 일자리들이 줄어들면, 이 편리한 은행의 서비스를 이용할 사람들은 무엇을 통해서 돈을 벌게 될까? 2017년 기준으로 은행원들의 숫자는 9만 1천 명 정도라고 하는데, 네가 이 글을 읽고 생각할 때가 되면 은행원은 과연 몇 명이나 남아 있을까? 그리고 그 수가 줄어들었다면 은행을 떠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문득 궁금해지는구나.

두 번째로는 "디지털 비즈니스는 승자독식 산업이다"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어. 디지털화가 되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까? 너희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게 될까? 디지털화가 없애는 직업만큼 새로운 직업도 탄생하겠지.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데, 그 고용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줄어들 텐데, 과연 네가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까?

이 디지털화를 선도하는 사람들의 가장 높은 곳에는 우리나라 특성상 재벌이라 불리는 혈연을 중심으로 이 모든 비용 절감의 이익을 누릴 사람들이 존재할 텐데, 과연 이러한 변화가 나처럼 평범한 아빠를 만난 너희에게 어떤 이익을 줄까? 사실 이익은커녕 불이익이 될까 봐 섬뜩하기까지 한 게 솔직한 마음이란다. 게다가 그렇게 소수의 승자가 쌓아 올린 성과는 과연 재분배가 될까?

팀 던럽은 <노동 없는 미래>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하지. '사회구조는 점점 더 불안해져 가고, 그 결과 고용이 점점 불안해져 간다는 사실이 변함없을 것이며, 자동화는 이 불안을 증폭시키고, 공유 경제는 소수의 부를 가진 자가 더 많은 부를 가지며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경제라도 해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건 집을 소유한 부의 상위 계층이기 때문이라는 거지).

결국 '보편적인 복지'라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란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자본소득자가 아닌 평범한 급여소득자인 아빠로서는 소수의 욕망이 기술의 발전으로 발현되는 것보다는 다수가 최소한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재분배가 이뤄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야.

변화하는 세상은 결국 그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네가 이 글을 이해하게 될 때 즈음에는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어 있기를 희망하며 너희에게 이 글을 남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중복 게재할 예정입니다(electricjin.blog.me).



태그:#디지털, #상하이, #푸동, #보편적복지, #사라지는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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