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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린 왕자>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왠지 이 책에 대한 감상을 글로 쓸 생각은 못 했다. 홍콩중문대학 정치행정학과 교수인 저우바오쑹은 과감하게 책 한 권 분량의 독후감을 썼다. 심지어 원전보다 더 두꺼운 책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린 왕자>에서 느낀 무엇을 독자와 나누려고 했을까?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길들여짐의 의미에 대해 배우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오천 송이 장미들을 찾아간다. 그리고는 그들을 '모욕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너희 장미들은 내 장미 한 송이만도 못한 존재라고, 어린 왕자는 말한다.

저자는 오천 송이 장미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존재 방식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 삶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어린왕자의 장미가 아니라 오천 송이 장미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81쪽)

현대인이 맺는 관계란 사르트르가 말한 '군중'과도 같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나는 같은 객차에 탄 백여 명의 승객과 같은 시공간을 한 시간씩이나 공유하지만, 그 '함께 함'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렇게 우리 대부분은 서로에게 오천 송이 장미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상황에서 저자는 오천 송이 장미가 관계를 맺는 방법을 두 가지 제시한다. 하나는 누군가를 찾아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이다. 이것은 어린 왕자와 장미의 관계와 같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구와 관계를 맺는 일이 이 방식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식은 무엇인가? 바로 '길들여짐'이라는 개념의 대상을 확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미는 길들여짐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때 그 대상을 '어린왕자'로 한정하지 않고 개인 사업, 신앙, 예술 활동, 사회적 이상 추구 등 시간과 마음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활동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86쪽)

이는 별다른 것이 아니라 삶의 목표에 관한 이야기다. 여우와 같이 특정한 대상에게 길들여지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목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구나 수동적으로 길들여질 대상을 기다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그 대상을 찾아 나선다는 측면과 같이, 이 방법이 더 나은 점도 있다. 사명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텅 빈 삶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오천 송이 장미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삶의 목표가 뚜렷하다면 우리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어린왕자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해 죽어줄 사람이 없어도 자신의 삶은 텅 비어있는 게 아니라고."(87쪽)

저우바오쑹은 제9장에서 별에 남겨진 장미에 대해 말하면서, 장미가 생각보다 강한 존재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주목할 점에 대해 나는 저자와 생각이 좀 다르다. 어린 왕자와 장미가 헤어지는 장면에서 주목할 점은 장미의 강함보다는 장미의 목표 설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비를 보려면 두세 마리의 벌레는 받아들여야 해. 나비는 썩 예쁘다고 들었어. 그러지 않으면 누가 날 찾아오겠어?" (<어린 왕자>, 제9장, 저우바오쑹 148쪽에서 재인용)

삶에 있어 길들여짐의 무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문제는 결국 개개인의 선택이다. 여우는 어린 왕자가 떠날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길들여지기를 원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밀밭을 보면서 어린 왕자를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떠날 때, 장미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바람막이나 고깔을 보면서 어린 왕자를 추억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장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장미는 나비를 선택했다. 아직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선택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저우바오쑹이 말한 두 번째 길들여짐의 방식이 아닐까? <미움받을 용기>에서 기시미 이치로가 말한 것처럼, 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삶은 자유로울 수 없으며, 행복해지기도 어렵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저우바오쑹이 <어린 왕자>를 빌미로 자기계발서를 썼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또 뭐 어떤가?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이 즐거운 이유는, 다른 이의 의견을 받아들여 내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기쁨 때문이다. 이 책은 실제로 <어린 왕자>에서 실천할 점을 찾아보자는 책이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의 작품으로는 꽤 독특한 작품이다. 소설가로서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은 오히려 <야간 비행>이 아닐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더구나 한 개인으로서 생텍쥐페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인간의 대지>다. <인간의 대지>를 읽다 보면, 마치 생텍쥐페리와 차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듣는 느낌이다.

<어린 왕자>는 이들 작품과는 달리, 생텍쥐페리가 우리보다 높은 위치에서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 다소 고압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어린 왕자>는 사랑스럽고 신비로운 캐릭터들이 가득한 동화의 형태이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소중하게 간직되는 작품이다.

<어린 왕자>를 생각하면 다들 어린 왕자, 장미, 여우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뱀도 분명히 생각난다. 저우바오쑹에 따르면 뱀이야말로 어린 왕자가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는 캐릭터다. 어린 왕자는 뱀에 물려 자신의 육신이 쓰러진 이후에 자신이 B612에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결단을 행한다.

그러한 결단을 돕는 것이 뱀이라고 본다면, 뱀은 <미움받을 용기>의 철학자나 다름없다. 그저 신비한 마법적 존재, 또는 어린 왕자를 죽이려는 악역으로만 보이던 뱀이 이제는 스승으로 보인다. 이런 깨달음이야말로 독서 토론의 즐거움 아닐까. 문학을 좋아하는 정치학과 교수와의 독서 토론은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린 왕자의 눈 -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지혜

저우바오쑹 지음, 취화신 그림, 최지희 옮김, 블랙피쉬(2018)


태그:#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어린왕자의 눈, #저우바오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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