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단호한' 멜버른의 교사들, 회초리는 필요 없다
 '단호한' 멜버른의 교사들, 회초리는 필요 없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이전 기사 : 어느날 사라진 학생, 교사라는 사실이 두려웠다

"언니, 한국에서는 교사들이 아직도 애들을 때리나요?"

호주 멜버른에서 알게 된 지인이 물었다. 호주 생활 10년이 넘었고, 사십 줄에 가까운 나이가 됐는데도 피곤한 날에는 옛날 학창 시절에 맞던 꿈을 꾼다고 했다.

"우리가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그렇게 모질게 때렸는지 묻고 싶어요."

한국 유치원에서 교사의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한 날, 답답한 마음에 아들이 다니는 멜버른 초등학교의 30대 교사에게 질문했다.

"호주 교실에서는 체벌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거야?"

그녀는 질문 자체가 너무 생소하다는 표정으로 눈만 꿈뻑꿈뻑하다 대답했다.

"호주 학교에서 모든 폭력은 허용되지 않아. 교사들은 바로 자격 박탈이야."

너무 한심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그럼 교사는 문제를 일으키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우린 이미 체벌이 가능한 방법이 아닌 것을 알고 있어. 아이들이 맞으며 자란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야."

60대 언저리의, 출산 전에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는 호주인과 대화를 나누다 30여년 전엔 호주 교실도 폭력이 빈번하게 존재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물었다.

"한국에서도 10여 년 전에 체벌을 금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교사와 학부모들이 반대를 많이 했어. 호주는 어땠어?"

"어떤 일이든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변화에 만족했어. 아이들이 맞으며 자라면 다음 세대도 또 맞으며 자란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교사는 쉬운 직업이 아니야."

이곳의 교육은 아주 친절하지만 훈육이 필요할 때에는 엄격하다. 교육이 한 국가 구성원의 사회화를 책임진다는 점에서 볼 때 놀랍지 않은 사실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부모의 자녀 양육 방식 또한 교실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엔, 모두를 보호하는 '비폭력'

나는 이곳에 와서 교육학이나 양육서에서 배운 '친절함과 엄격함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교육'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매일 눈으로 확인하며 산다.

호주의 교사들이 폭력을 쓰지 않고 친절하다고 해서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잘잘못을 구별하지 못하며 우유부단하게 지도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쩌면 한국의 교사에게서 볼 수 없는 단호함을 만나게 되어 당황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신의 아이가 매너를 지키지 않는다면 교사는 눈을 마주치며 돌려 말하지 않고 정확히 말해 줄 것이다.

"Use your manner. It's bad." (매너를 지키렴. 그건 나빠.)

당신의 아이가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한다면 교사는 강력하고 엄중하게 말할 것이다.

"It's not allowed. Your attitude makes other people sad and upset." (그건 허용되지 않는단다. 너의 태도가 다른 사람을 슬프고 화나게 해.)

대신 한국처럼 무릎을 꿇리거나 엎드려뻗쳐를 시키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때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주저리주저리 잔소리를 늘어놓지도 않을 것이다.

딸 셋을 키우는 이민 생활 5년 됐다는 한 지인은 교사가 자기 딸에게 예절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처음에 너무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혹시 아시아인이라고 차별하나? 교장에게 따지러 갈까?'

이런 방식의 교육과 훈육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오해를 많이 했다고도 했다.

차츰 그녀가 깨달은 것은 교사가 아이의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 교정을 해주는 것이지, 아이의 인격을 놓고 어떠한 판단의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서 이제는 만족스럽다고 했다.

나는 멜버른의 교사들이 한국의 교사들에 비해 훌륭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목하는 지점은 '한 사회의 시스템이 그 구성원들을 어떻게 보호하는가?'란 점이다. 멜버른의 교사 모두가 선천적으로 훌륭한 인품이거나, 높은 교육적 소양을 지녔거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발생할 수 있는 일탈의 유혹을 제한하는 제도가 있어서 현재의 문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제도는 학교 구성원 모두를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학교 담장 안에서 아이들이 폭력의 당사자 또는 목격자/방관자가 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부모는 안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으며, 교사는 각종 소송이나 학부모와의 갈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그렇게 모질게 때렸는지 묻고 싶어요."

지인이 쓸쓸하게 말한 이 질문은 한국에서 현재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얼마 전 다녀간 중학교 조카의 증언에 따르면, 지금도 학교에서 체벌의 강도만 다를 뿐이지 발생하고 있으며 단체 기합도 종종 받고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몇십 년 뒤에 조카는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