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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늘빛을 과연 ‘푸른’ 하늘이라 해야 할까, ‘파란’ 하늘이라 해야 할까 ·
▲ 이 하늘빛을 과연 ‘푸른’ 하늘이라 해야 할까, ‘파란’ 하늘이라 해야 할까 ·
ⓒ 최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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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대개 '푸른'과 '파란'을 뚜렷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푸른 하늘' '파란 하늘', '푸른 신호등' '파란 신호등', '푸른 바다' '파란 바다', '푸른 들판' '파란 들판'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적절한지 물으면 거의 다 비슷하게 절반씩 나온다.

세상을 맑고 날카롭게 본다는 시인들의 시에도 하늘을 푸르다고 표현한 대목이 수없이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윤용이, 강우방, 유홍준 같은 미술사학자들도 '푸른'과 '파란'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맑고 파란 하늘빛' 고려청자는 '푸른 청자'가 되고 만다. 물론 푸른빛 청자도 있다. 그런데 고려 사기장들이 진정 빚고 싶었던 청자는 비색(翡色 물총새비·빛깔색) 청자였다. 그 빛깔은 푸른빛이 아니라 물총새 등줄기의 파란빛이었다. 그들은 한평생 그 빛깔을 내려고 온 정성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런 빛깔은 여간해서는 잘 나오지 않았다. 지금 남아 있는 청자 가운데 이런 비색 청자는 몇 점 되지 않는다.

 ‘푸른’ 섬과 ‘파란’ 바다 ·
▲ ‘푸른’ 섬과 ‘파란’ 바다 ·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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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푸른'과 '파란'을 '그린(green)'과 '블루(blue)'로 분명하게 구별한다. 두 빛깔의 '개체성(individuality)'이 분명한 것이다. 한국인이 그린과 블루를 잘 구별하지 않는 것은 두 빛깔의 본질을 '같은 것(one-ness)'으로 보기 때문이다.

 2015년 2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연 기획전시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 안내장 부분. 청화백자의 무늬 그림을 과연 ‘푸른빛’이라 할 수 있을까.
 2015년 2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연 기획전시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 안내장 부분. 청화백자의 무늬 그림을 과연 ‘푸른빛’이라 할 수 있을까.
ⓒ 국립광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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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은 이 세상 빛깔을 다섯 가지 빛깔 오방색으로 보았다. 그것만 가지고서도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오방색 가운데 하나인 청은 '푸를 청(靑)'이다. 뜻은 그린(푸른)이고 음은 블루(청)다. 여기에서 혼돈이 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두 빛깔의 본질을 같게 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저 멀리 장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장자는 눈이 밝은 이주와 귀가 밝은 사광을 비판한다.

지나치게 눈이 밝은 자는 오색의 올바른 빛을 어지럽히고 화려한 무늬에 혹하게 된다. 거기서 생겨난 청황색이나 보불의 무늬처럼 눈부신 휘황함은 좋지 않은 것이다. 이주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또 지나치게 귀가 밝은 자는 오성의 올바른 음향을 어지럽히고 갖가지 가락에 사로잡힌다. 거기서 생겨난 종과 경, 현과 죽 따위 악기와 황종 대려 같은 선율도 좋지 않은 것이다. 사광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장자, 〈외편〉 '변무')

청화백자 풍경 그림 접시 18세기. 지름 38cm. 그림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파란빛 코발트 빛깔도 아주 맑게 잘 나왔다.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려 구운 백자를 청화백자라 한다. 코발트 안료는 그릇 역사에서 혁명이었다. 코발트는 보랏빛 안료인데, 가마 속에 들어가면 파란빛으로 바뀐다. 다른 채색 안료는 뜨거운 가마 속에 들어가면 빛깔을 잃어버리고, 또 흔적도 없이 모두 타 버리고 마는데 코발트는 오히려 아주 맑은 파란빛을 낸다. 또 섬세한 붓 자국까지도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사기장들은 그릇에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었다. 고려 상감청자처럼 번거롭게 골을 파고 그 골에 흰빛 또는 밤빛 흙을 채워 무늬를 낼 필요도 없었다.
▲ 청화백자 풍경 그림 접시 18세기. 지름 38cm. 그림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파란빛 코발트 빛깔도 아주 맑게 잘 나왔다.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려 구운 백자를 청화백자라 한다. 코발트 안료는 그릇 역사에서 혁명이었다. 코발트는 보랏빛 안료인데, 가마 속에 들어가면 파란빛으로 바뀐다. 다른 채색 안료는 뜨거운 가마 속에 들어가면 빛깔을 잃어버리고, 또 흔적도 없이 모두 타 버리고 마는데 코발트는 오히려 아주 맑은 파란빛을 낸다. 또 섬세한 붓 자국까지도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사기장들은 그릇에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었다. 고려 상감청자처럼 번거롭게 골을 파고 그 골에 흰빛 또는 밤빛 흙을 채워 무늬를 낼 필요도 없었다.
ⓒ 조선중앙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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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장자는 빛깔 '청황색'과 선율 '황종'도 음양오행설의 오방색과 오성에서 온('생겨난') 것이고, 빛깔과 소리를 너무 잘게 나누는 것(개체성)보다는 그 본질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음양오행설은 중국 전국시대(기원전 403∼221)에 생겨난 세계관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이 세상 만물을 음과 양의 운동으로 보았다. 또 이와 더불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꼭 있어야 하는 물과 불, 나무와 쇠(金), 그리고 이것의 기반이 되는 땅, 이 다섯 가지 원소가 운동하여 이 세상 만물이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보았다. 바로 이 음양오행설에 따라 오색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 이 세상을 파란빛(또는 푸른빛), 붉은빛, 누런(노란)빛, 흰빛, 검은빛, 이렇게 다섯 가지 빛깔로 본 것이다. 실제 세상에는 더 많은 빛깔이 있지만 고대 중국인들은 이 다섯 빛깔로만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푸른빛과 파란빛은 분명히 다르지만 청(靑)으로 보면 된다고 여긴 것이다.

물총새 파랑새목 물총새과. 몸길이 약 17cm. 저수지 둘레 둑이나 개울가에 사는 여름새인데, 물가에 있다가 물고기가 보이면 총알같이 날아가 긴 부리로 물고기를 낚아챈다고 해서 그 이름이 물총새다. 물고기 처지에서 보면 호랑이나 늑대처럼 무서운 새라 하여 옛사람들은 어호(魚虎)·어구(魚狗)라 했고, 파란빛 깃털이 비취 보석과 닮아 비취새라고도 했다. 서양 사람들은 물고기 잡는 솜씨가 귀신같다고 해서 킹피셔(kingfisher)라 한다.
▲ 물총새 파랑새목 물총새과. 몸길이 약 17cm. 저수지 둘레 둑이나 개울가에 사는 여름새인데, 물가에 있다가 물고기가 보이면 총알같이 날아가 긴 부리로 물고기를 낚아챈다고 해서 그 이름이 물총새다. 물고기 처지에서 보면 호랑이나 늑대처럼 무서운 새라 하여 옛사람들은 어호(魚虎)·어구(魚狗)라 했고, 파란빛 깃털이 비취 보석과 닮아 비취새라고도 했다. 서양 사람들은 물고기 잡는 솜씨가 귀신같다고 해서 킹피셔(kingfisher)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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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빛깔과 소리 문제는 산업과 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도 낱낱의 개체성을 인정하고 구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글을 쓸 때는 이 두 빛깔을 정확하게 구별해 써야 한다. 동영상과 달리 글은 '소리'가 없고, '장면'도 총천연색으로 보여 주지 못한다. 그런 만큼 마음을 써서 잘 구별해 써야 하지 않나 싶다.

고려청자 조각 빛깔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청자라고 해서 모두 파란빛이 아니다. 어떤 것은 흙빛, 잿빛, 밤빛인 것도 있다. 이렇듯 고려청자는 파란빛 청자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 가운데 고려 사기장들이 구우려 했던 청자는 비가 한참 오다 갠 뒤의 하늘빛(雨過天靑), 바로 그렇게 맑고 파란 하늘빛 청자였다.
▲ 고려청자 조각 빛깔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청자라고 해서 모두 파란빛이 아니다. 어떤 것은 흙빛, 잿빛, 밤빛인 것도 있다. 이렇듯 고려청자는 파란빛 청자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 가운데 고려 사기장들이 구우려 했던 청자는 비가 한참 오다 갠 뒤의 하늘빛(雨過天靑), 바로 그렇게 맑고 파란 하늘빛 청자였다.
ⓒ 강진청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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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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