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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명심해야 하는 말 "쫄면 진다"

스리랑카를 여행할 때였다. 인도를 3개월 여행한 후 도착한 스리랑카는 천국이었다. 일단 길거리에 개똥, 소똥, 말똥, 사람 똥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스리랑카에 뼈를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인도가 워낙에 고생스럽다 보니 다음 여행지는 자동으로 반사효과를 누리게 된다.)

인도에 3달을 있다가 보니 깨끗한 스리랑카가 너무 좋았다.
▲ 스리랑카 갈레에서 만난 학생들 인도에 3달을 있다가 보니 깨끗한 스리랑카가 너무 좋았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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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들떠서 방심한 게 문제였다. 깨끗한 스리랑카의 거리를 만끽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인적없는 골목길에서 웬 오토바이 한 대를 만났다. 찌르르- 불길한 예감이 등을 타고 내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오토바이를 탄 남성은 나를 보고 실실 웃으며 내가 가려는 방향의 길을 막았다.

나는 숨을 멈추고 가만히 그 오토바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쫄지 말자'라고 되뇌면서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는 다시 오토바이로 반대 방향의 길을 막았다. 이쯤 되자 조금 겁이 났다. 만약 여기서 등을 돌리고 반대편의 큰길로 뛰어가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가솔린으로 움직이는 오토바이의 동력에 인간의 다리가 (그것도 내 다리가) 이길 리가 없다. 정면돌파 외엔 방법이 없다. 결국 고개를 삐딱하게 쳐들고 그에게 물었다.

"What?"

일부러 '왓'이라고 한 음절로 끊지 않고 '와앗?' 이라고 물으며 노려보자 ('뭐야?'가 아니라 '뭬이야?'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는 그냥 씩 웃더니 탈탈탈 오토바이를 타고 가버렸다. 나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숙소로 향했다. 속으로는 쫄지 않았던 나 자신을 아주 칭찬하면서. 

정말 강력히 운이 나빠서 악질 흉악범을 만나지 않은 이상, 여성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겪는 상당수의 문제 상황은 이런 식이다. 보통 동네 잡배 정도의 남성들이 시간도 많던 차에 웬 외국 여자가 지나가니까 한번 말을 붙이거나 건드려보고자 하는 경우인 것이다. 문제는 남성 입장에서는 그저 재미이겠지만, 당하는 여성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이때 여성 여행자가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쫄면 진다"는 것이다. 상대는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희롱하며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데, 이때 겁에 질려 위축된 태도를 보이면 상대를 자극하게 된다.

겁이 나더라도 허리에 손 얹고 '너의 행동은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다'는 표정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도 만만한 희롱 거리를 찾는지라 눈앞의 여성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 굳이 시끄러운 상황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여행을 하면서 문제 상황을 안 만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일단 눈 앞에 문제가 발생하면 눈에 힘을 팍 주고 하나만 생각하자.

"쫄면 진다."

이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눈앞의 여성이 절대 만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 하나만 명심하자. "쫄면진다" 이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눈앞의 여성이 절대 만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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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만나는 각종 성폭력의 상황별 대처법

지난 연재에서는 여성이 혼자 여행을 하며 주의할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관련기사 : 잊지 못할 '그놈' 손바닥... 여성 여행기가 중요한 이유 http://omn.kr/qmct ). 이번에는 실제로 여성여행자에게 어떤 문제상황이 발생하는지를 살펴보고, 상황별 대처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① '캣콜링'에는 경멸하는 표정을 보여주자

여성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겪는 성희롱은 '캣콜링'이다. '캣콜링'은 지나가는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성적인 발언을 하는 행위다("Bitch", "You are so sexy", "Marry me, Marry me", "Hey, Beautiful" 등). 심지어 길을 가는데 '쭙쭙' 뽀뽀소리를 내거나, 성적인 몸짓을 취하며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할 일 없는 남성들이 악의를 지니고 지나가는 여성을 희롱하는 '캣콜링'은 전지구적 현상이다. 인도나 이란같이 여성 인권이 바닥인 나라는 물론 선진국에 가더라도 치안이 안 좋은 지역에서는 캣콜링이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동양인 여성은 "니하오", "곤니치와" 같은 원치 않는 인사까지 듣게 된다.

이럴 때 화를 내거나 당황하는 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이들은 즐거워한다. 가뜩이나 시간이 많은데 볼거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지금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여성인 당신의 '반응'이다.

때문에 '캣콜링'의 최선의 대처는 무시다. 하지만 그냥 무시가 아닌 경멸이 섞인 무시다. 말을 섞을 필요가 없는 상대가 일방적으로 멘트를 날리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위아래로 쳐다보고 지나가 버리도록 하자.

그리고 "예쁜데~ (Hey, Beautiful)", "너 참 귀엽다(You are so pretty)"와 같은 말을 들었을 경우, 예쁘다는 말에 웃는다거나 '고맙다'고 대답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상대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 그러는 줄 알고 더 치근덕거릴 수도 있다. 혹은 '놀리는 것도 모르는 바보'라며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으니 절대 무시하고 지나가도록 하자.

Tip: 평소에 눈으로 '경멸'이라는 단어를 말한다고 생각하며 무시하는 표정을 연습해두는 것이 좋다.

 "살다살다 별 더러운 꼴을 다 보겠네"라고 강력하게 표정으로 말해주자.
▲ 경멸하는 표정의 예 "살다살다 별 더러운 꼴을 다 보겠네"라고 강력하게 표정으로 말해주자.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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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지분대는 남성에게는 단호하게 "No"라는 의사 표현을 한다

남성이 계속 쫓아오며 지분거리는 경우가 있다. 수법은 다양한데 결론은 하나다. "하룻밤 같이 자자, 베이베" 이런 상황이면 눈을 가능한만큼 치뜨며 '네가? 감히?'라는  멸시의 표정을 지어주며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NO(싫은데!)"라고. 말이 안 통할 경우 얼굴을 보며 토를 하는 보디랭귀지라도 구사해야 한다.

많은 여행안내서에서 이런 경우에는 '가짜 결혼반지를 끼고 다니면서 결혼했다고 말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해본 결과,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어차피 상대는 일부일처제 개념이 희박하다. 거기다 대고 아무리 결혼했다고 이야기를 한들, 그럼 '날 애인으로 삼으라'는 대답이나 돌아오게 된다. 때문에 계속 말을 받아주거나, 상대를 설득할 생각은 말고, 그냥 '살다 살다 별 더러운 꼴 다 본다'라는 표정으로 "NO"라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Tip: 평소에 가장 단호한 거절의 표현 및 표정을 익혀둔다.

말이 안통하면 상대방 얼굴을 보며 오바이트하는 흉내라도 내서 적극적으로 싫다는 의사를 전달한다.
▲ 단호하게 NO 라고 이야기한다. 말이 안통하면 상대방 얼굴을 보며 오바이트하는 흉내라도 내서 적극적으로 싫다는 의사를 전달한다.
ⓒ MBC 무한도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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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당신의 몸을 누군가 만졌을 경우엔 '화'를 내라

'캣콜링'이야 귀 후비며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몸을 만지는 성추행이 발생하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럴 땐 적극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화만 내서는 도리어 불리한 상황에 부닥칠 때가 있다. 때문에 주변에 문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야한다. 도움을 청할 때는 한 명을 꼭 집어서 청하는 것이 낫다. 이때 필요한 것이 비명이다.

서양 여성여행자의 경우에는 동양 여성여행자보다 여행 중 성폭력 경험이 적은 편이다.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동양 여성은 수치심에 참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 반면, 서양 여성은 문제제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몹쓸 남성들은 반바지를 입은 서양 여성에게는 감히 눈길도 못 주면서, 온몸을 가린 동양 여성은 만만하게 여겨 그렇게 찝쩍거리는 것이다.

그러니 원치 않는 접촉이 발생했을 경우 늘 불쾌하다는 의사표시를 하며 화를 내야 한다. 가만히 참고 넘어가면 이들은 다른 동양 여성에게 또 같은 행위를 할 것이다. 다음 여행자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참고 넘어가지 않도록 하자.

Tip: 사실 우리 모두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고 배웠지만, 보통은 당황해서 비명이 안 나온다. '어째서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았나?'는 질문은 평소에 엉덩이 '그랩(grab)' 한번 안 당해본 무지한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때문에 평소에 문제 상황을 상상하며, 아랫배에 힘을 주고 비명 지르는 연습을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④ 도움을 청할 때는 적극적으로 호소한다

인도의 야간기차에서였다. 당시 탑승했던 기차는 3A칸이었다. 3A칸은 에어컨이 있고, 3층 침대가 있는 개방형 공간이다. 한 칸에 침대는 총 6개다. 낮에는 6명이 1층에 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벽에 붙어 있던 침대를 내리고 각자 위치에 눕는다. 내 침대는 맨 꼭대기 3층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침낭에 꽁꽁 싸여 잠을 자고 있는데, 침낭 밖으로 빠져나온 내 팔이 간질간질했다. 2층 남자가 손을 위로 뻗어 내 팔을 만지고 있는 거였다. 소.오.름. 그는 낮부터 은근히, 정말 은근하게 내 몸을 건드려댔다. 옆자리에 앉아있는데 자기 무릎을 가만히 내 무릎에 가져다 댄다거나, 테이블에 있는 음료수를 가져가는 척하면서 내 팔을 스친다거나... 하지만 화를 내더라도 그쪽에서 실수라고 우기면 끝인 상황이어서 부글부글하면서도 그저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전을 위해서는 객실형보다 복도형 좌석을 선택하자. 문제상황이 생겼을 경우 주변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 안전을 위해서는 객실형보다 복도형 좌석을 선택하자. 문제상황이 생겼을 경우 주변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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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이 인간이 결국 이 야심한 밤에 내 팔을 만지고 있는 거였다. 가슴 속에서 욱하고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내 칸의 모든 구성원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남자가 나를 만졌다"며 울면서 호소하기 시작했다. 밤 12시 30분이었다.

이 소란에 다른 칸 사람들도 웅성웅성 잠에서 깼다. 그 남자는 계속 자신은 그런 적 없다며 변명하고 있었다. 나는 연기력을 가미해 점점 슬피 울었다. 자다 깬 사람들 입에서 불평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나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 울며 말했다.

"이 사람이 여기 있는 한, 난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어."

이 말뜻은 '내가 못 자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못 잘 테니 각오하라'는 말이다. 결국 졸린 사람들은 그 남자를 다른 칸으로 쫓아버렸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속담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가능한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야기를 하면 해결이 더 쉽다. 그리고 연기력을 살짝 가미해 가련하게 보이면 더욱 효과적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Tip: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사실 우리는 문제상황 앞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동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된다. 소심함을 떨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자.

⑤ 숙소주인과 문제가 생겼을 때는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말한다

숙소에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일단 숙소를 선택할 때는 리뷰를 꼼꼼히 살펴보고 선택한다. 가끔 숙소주인이나 종업원이 동양인 여성 여행자를 만만하게 보고 집적거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일단 고립된 공간에 단둘이 있는 상황은 어떤 형태로든 피한다.

그리고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단호하게 불쾌하다는 의사를 밝히고, 주변 투숙객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싫다'는 의사 표현을 제때 못하면 '좋아서 가만히 있었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리고 경찰을 부른다는 말보다 인터넷에 올릴 거라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숙소주인이 아니라 투숙객과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숙소주인에게 항의해서 방을 바꿔 달라고 하거나, 이 투숙객을 당장 내쫓아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만약 숙소주인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을 경우, 이 숙소의 부당한 대처법에 대해 모든 여성 여행자가 알 수 있게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말한다.

Tip: 문제 상황을 떠올리며 필요한 단어나 문장들을 미리 알아둔다. 막상 급한 상황이 닥치면 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는 이렇게 말한다'라는 자신만의 매뉴얼을 짜두는 것이 좋다.

⑥ 호신술보다는 도망이 우선이다

호주 멜버른에서 잠시 호신술을 배웠을 때, 나의 호신술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거 배웠다고 써먹을 생각하지 말고, 나쁜 놈 만나면 무조건 도망가세요."

문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호신술을 할 줄 알거나, 호신 무기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함부로 그걸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일단은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낫고, 최악의 상황에는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다. 도망갈 때는 소리를 지르며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도망가야 한다. 호신술이나 호신무기는 마지막 선택이다.

Tip: 간단한 호신술을 익혀두는 것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 실제로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도움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평소에 문제 상황을 상상하며 자신이 어떤 태도를 보이고, 또 어느 쪽으로 피해야 하는지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⑦ 욕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차라리 한국어 욕이 낫다

지인이 동유럽에서 야간 버스에 탑승할 때 겪은 일이다. 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옆자리 남성이 그녀를 보며 자기 바지 안에 손을 넣고 자위행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 놀란 그녀는 가방에서 스위스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칼날이며 가위, 톱 등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한국어로 "하지마, 이 xx야. 당장 멈춰, 이 xxx아"라며 욕을 퍼부었다.

그러자 그 남성은 실눈을 뜨고 그녀를 살피더니 그대로 하던 행위를 멈추고 자는 척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차장에게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한 후 목적지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왜 한국어로 욕을 했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당황해서 영어가 생각이 안 났어."

사실 그녀가 한국어로 욕을 한 것은 오히려 잘한 행동이었다. 외국에서 상대에게 욕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차라리 한국어 욕이 낫다. 처지 바꿔서 외국인이 한국어로 욕을 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아주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는 이상, 위협감을 느끼기보다 차라리 귀여울 것이다. 마찬가지다. 욕을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을 때는 '나는 몹시 화가 나 있다'는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 욕이 어느 나라 언어인지는 중요하지는 않다.

Tip: 평소에 화를 바깥으로 분출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 상황을 떠올리며 어떻게 '나는 불쾌하다'라는 의사를 전달할 것인지 상상해보도록 한다.

아무리 낫을 들어도 미소를 지으면 위협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몹시 화가 나 있다"라는 기분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험악한 표정과 언어가 필요하다.
▲ 러시아 키지섬에서 만난 소녀 아무리 낫을 들어도 미소를 지으면 위협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몹시 화가 나 있다"라는 기분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험악한 표정과 언어가 필요하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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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여성은 여성을 돌본다

인도 남부에서 현지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차를 탔을 때였다. 인도 남성 몇 명이 내가 있는 칸으로 몰려와서 인사를 던졌다. "Hello~", "Nihao~"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희롱하는 듯한 태도였다. 조금 불쾌한 기색이 되어 있는데, 옆좌석의 인도 아줌마가 내 표정을 살피더니 큰소리로 그들을 야단치고 쫓아내 주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그녀는 내게 스카프로 얼굴을 꽁꽁 싸매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또 자꾸만 남자들이 귀찮게 굴면 목에 걸린 스카프를 머리끝까지 올리고 싹 돌아앉으라며 시범까지 보여주었다(이 방법은 정말 효과가 있다.)

그리고 내가 기차를 갈아탈 때가 되자 그녀도 함께 내렸다. 그리고는 나를 갈아타는 곳까지 안내해 주고, 주변 여성들에게 나를 맡기고 돌아갔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나를 염려하고 보살펴주는 그녀의 마음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해졌다. 그 후로도 여행하며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땐 주변 여성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많은 도움을 얻었다. 여성은 언제나 여성을 돌보기 때문이다.

Tip: 처음 만난 여성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아이템을 준비한다. 한국 장식품, 머리끈과 같은 작은 선물을 준다거나, 가족사진이나 음식사진 등 한국의 삶을 알 수 있는 사진 등을 보여주면 쉽게 친해질 수 있다. 물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소'다.

먼지가 많은 지역에서 마스크 대용으로 쓸 수 있다. 특히 얼굴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경우 유용하다.
▲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는 법 먼지가 많은 지역에서 마스크 대용으로 쓸 수 있다. 특히 얼굴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경우 유용하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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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방심에도 사고는 생긴다

이상의 내용들은 십여 년간 혼자 여행을 하며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다. 사실 이 성폭력 대처법들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여성 여행자의 안전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더 많은 여성여행자들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길 바란다.

지난 연재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길을 떠난 여성 여행자가 모두 위험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 지역과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크고, 사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방심에도 사고는 생겨난다. 때문에 여행을 하기 전 미리 문제 상황과 대처법을 숙지해둔다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인생은 실전, 여행도 실전." 여행에 대한 막연한 환상보다 안전하고 당당한 여성의 여행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음 연재는 '여행 중 주의해야 할 남자의 유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태그:#여자혼자여행, #여성여행자, #나홀로여행, #혼행족, #여행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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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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