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최석민 선수가 출전해 경기를 마치고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최석민 선수가 출전해 경기를 마치고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 이희훈


"살아있기 때문에?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16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 스노보드 뱅크드 슬라돔 SB-LL2 경기에 출전한 그에게 '늦은 나이에도 도전하는 까닭'을 묻자 한 답변이었다. 바로 스노보드 국가대표 맏형 최석민(50) 선수다. 최 선수는 "내 나이가 늦었다고 생각한 적 없다. 패럴림픽은 끝났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국가대표가 된 건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은 아니더라도 두, 세 번째로 잘한 일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원래 프로 낚시꾼이었다. 19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쪽 발목을 잃은 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찾은 낚시터를 택했다. 최 선수는 그리고 15년 간 배스 프로 낚시로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스노보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스노보드는 30대 중반쯤 접한 스포츠였지만 국가대표팀 승선은 다른 얘기였다. 그는 패럴림픽 출전권을 얻기 위해 자비를 들여가면서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를 뛰었고 마침내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의 최고 기록은 1분20초02였다. 세 차례의 주행 중 가장 좋은 기록이었다. 1위에 비해선 31.34초 뒤졌다. 기록보다 돋보였던 것은 완주였다. 최 선수는 세 차례의 주행에서 모두 한번씩 넘어졌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코스로 복귀해서 경기를 끝마쳤다. 결승선을 통과해선 환히 웃었다. 자신을 응원하러 온 관중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고, 마지막 경기 땐 두 팔을 머리 위로 모아 큰 원을 그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엔 "KAKKI(최 선수의 별명) 최석민 파이팅"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흔들면서 환호하는 지인들이 있었다.

"프로 낚시 때도 대단했던 사람, 등수는 중요하지 않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최석민 선수가 출전해 경기를 마치고 가족, 지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최석민 선수가 출전해 경기를 마치고 가족, 지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이희훈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최석민 선수가 출전해 경기를 마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16일 오후 강원도 정선알파인스키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뱅크드 슬라롬에 최석민 선수가 출전해 경기를 마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이희훈


"'왜 국가대표를 하려고 하세요?'라고 물었다면 욕먹었을걸요? 최 선수는 자기가 하겠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에요. 물론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걱정은 됐죠. 사실 허리에 무리가 오셔서 프로 낚시도 떠나셨던 건데."

경기장에서 만난 변영광(44)씨는 도전을 두려워 않는 최 선수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는 최 선수와 10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왔다. 시작은 낚시였다. 변씨는 "최 선수는 대한민국 처음으로 만들어진 낚시 프로 팬 카페의 주인공이다. (나는) 그때 만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 때도 오른쪽 발목을 잃은 최 선수가 프로 낚시로 활약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여겼다고 했다.

"트롤링 모터(노를 젓는 소규모 보트나 카누를 자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작은 선외 모터)는 발로 밟으면서 해야 한다. 대회에 나가면 5~6시간 정도 하는데 비장애인들도 나중엔 골반이 뻐근해질 정도다. 그런데 하지 장애가 있는 최 선수가 그걸 계속 컨트롤 하면서 하는 걸 보면서 더욱 존경하게 됐고 좋아하게 됐다."

변씨는 그러면서 "프로라면 권위의식이 있거나 해서 대하기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최 선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성격이 쾌활하고 딱 부러지신다"면서 "피는 안 나눴지만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아이들도 '큰 아빠'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경기 때도 응원하러 왔었다고 했다. 최 선수는 당시 스노보드 크로스 SB-LL2 경기에 출전, 17위로 예선 탈락했다. 변씨는 성적과 관계없이 가슴이 벅찼다고 했다.

"등수가 뭐가 중요하나. 그동안 노력했던 결실을 여기서 보는 건데. 최 선수도 자기 기록 안 좋은 것 뻔히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현수막 들고 흔드니깐 손을 흔들어줬다. 그 때 '아, 형이 해냈구나' 그런 감정. 가슴이 벅찼다."

"내가 만약 장애를 입었더라도 최석민 선수처럼 타고 싶다"

 안진욱(42) 남윤수(42.여) 부부가 16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린 스노보드 뱅크드 슬라돔 경기에 출전한 최석민 선수를 응원하고 있다.

안진욱(42) 남윤수(42.여) 부부가 16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린 스노보드 뱅크드 슬라돔 경기에 출전한 최석민 선수를 응원하고 있다. ⓒ 이경태


휠체어에 앉아 최 선수를 응원한 남윤수(42.여)씨도 마찬가지였다. "팔방미남 최석민"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단 그는 "응원이 필요 없는 양반"이라고 전했다. 남씨는 최 선수를 스노보드 강습 때 처음 만났다. "(최 선수의) 성격이 워낙 좋아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집에서 차를 같이 마시면서 시간을 많이 공유했다"던 그는 "멋있는 드라마 한편 찍자고 계획 세웠는데"라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최근 아마추어 알파인 스노보드 대회를 준비하다 부상을 입어 잠시 휠체어에 앉게 된 그는 처음엔 최 선수의 장애를 눈치 채지 못했다고 했다. 남씨는 "직접 말하시기 전엔 몰랐다. 그만큼 즐겁게 스노보드를 타셔서. (장애를) 알고 나선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죠"고 말했다.

남편 안진욱(42)씨도 아내의 말에 한 마디 더 곁들였다. 그는 "아내가 다치고 나서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타면서 장애를 가진 분들의 고통을 더 잘 알게 됐다"며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고 아직까지 시설이 미비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남씨는 "만약 내가 장애를 입었더라도 최 선수처럼 스노보드를 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선수가) 몸이 불편해서 앉아 있을 수 있는 낚시를 택하셨는데 그조차도 본인의 마음을 충족시킬 수 없었고 남들의 시선에 굴복당하기 싫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스노보드를 택하신 것 같다. 사실 내가 이번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만약 이로 인해 장애를 입었더라도 최 선수처럼 스노보드를 탔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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