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MBC 프로그램을 풀타임으로 지켜봤다. 3월 15일 첫 방송 된 <판결의 온도>가 그 주인공이다. MBC는 현재 기존 프로그램들을 허물면서, 빈자리에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대거 출범시키고 있다. 방송국의 의지 탓인지, 변화는 편성표에서부터 크게 느껴지고 있다.

<판결의 온도>는 예능과 시사를 넘나드는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는 서장훈과 김용만을 MC로 배정해 친숙함을 불어넣으면서, 주진우 <시사인> 기자, 진중권 교수, 이정렬 전 부장판사, 양지열 변호사, 신중권 전 판사, 이진우 경제전문기자 등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도통 볼 수 없는 얼굴들을 대부분 배치했다. 이 외에 알베르토, 다니엘이 함께 한다. 방송을 보는 내내 크게 웃을 일은 없었지만, 부분부분 웃음 포인트들이 공존했다. 싱겁게 웃다 끝나는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준다.

<판결의 온도>는 국민감정과 법리의 온도차를 줄여나가고자 마련한 프로그램이라는 취지에 맞게 기존 납득할 수 없는 판결들을 소환하고 패널들과 함께 따져보는 시간을 갖는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믿음의 체계인 법이 국민들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지만, 사람들을 법 바깥으로 내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법대로 하라'라는 말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폭력적인 말로 들리는 작금의 현실을 돌이켜봤을 때, 현존하는 법이 공정한가에 대한 논의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존 3심제를 추구하는 한국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판결의 온도>는 4심 위원회를 발족해 의미와 재미를 모두 찾으려 한다. 법 수호의 초점에 맞춰서 발언을 이어가는 패널도 있었지만, 논의의 흐름은 대체로 법이 사회 통념에 맞는지를 철저하게 따지고, 국민이 해당 사건과 법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짚는다.

 MBC <판결의 온도>

MBC <판결의 온도> ⓒ MBC


첫 방송에서 나왔던 주제는 2400원을 제출하지 않은 버스 기사의 해고 소송에 대한 건이었다. 1심에서는 버스기사 해고가 무효라고 했지만 2심에서는 기존 재판을 번복하며 버스 회사 측의 손을 들어 주었고, 최종심인 3심에서도 해고는 정당하다고 최종 확정을 지은 사안이었다. 패널들이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쏟아내 토론이 우왕좌왕하지 않을까 조금 걱정되었지만, 제작진은 사안을 4가지로 바라볼 것을 제안하면서 사건을 차근차근 헤아렸다. 

1) 2400원도 횡령에 해당?
2) 버스 기사에게 고의성?
3) 해고까지 하는 게 정당?
4) 다른 재판과의 형평성

2400원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2400억에 대해서는 관대한 법 시스템의 비뚤어진 모습에 대해서는 모든 패널들이 동감했다. 동시에 2400원도 횡령 금액이 될 수 있는지를 놓고서는 의견이 갈렸다. 따로 현금을 보관한 점과 계산 실수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버스 기사의 의도가 고의적이었다고 말하는 패널들이 있었던 반면, 노조 가입을 이유로 버스 기사의 단순 실수를 의도가 있는 것처럼 회사가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목소리도 동시에 나왔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사용자 측의 쉬운 해고가 버스 기사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무게 있게 다뤘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실직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적 살인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2400원 때문에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사용자 측에 준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여러 패널들이 동감하며 호소했다. 함께 참여한 패널인 독일의 다니엘을 통해, 해고를 바로 시키기 어렵고 해고를 하게 되면 근무 기간만큼 비례한 해고 유예 기간을 주는 독일의 법체계를 점검하면서 노동자의 편이 될 수 있는 법체계를 살펴보기도 했다.

토론의 자연스러운 흐름과는 별개로 프로그램 구성에 대한 전반적인 아쉬움이 존재했다. MC를 포함한 8명의 패널들을 왜 남성으로 일체화했는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었다. 사회 통념을 이야기하고, 국민의 정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성이 남성에게만 있는 것일까? 꼭 진보 신문 맨 뒤 오피니언란에 남성들만 득실댈 때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후에 방송에서는 여성 패널이 출연하길 기대한다.

단순히 유희 거리로 소재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 나아가서 진중하고 유쾌하게 법을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판결의 온도>의 첫 방송을 응원한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단순한 명제조차도 흔들리는 형국에서, 더 첨예하게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변할 수 있는 법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은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판결의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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