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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 않은 한글, 읽기부터 하라는 교과서

초등학교 교육과정으로 보면 한글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배워야 한다. 그런데 교과서를 서로 견주어 보면 의아할 때가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3월에 '입학 초기 적응 활동'으로 학교 구석구석을 다녀보고 집과 유치원과 학교가 어떻게 다른가를 공부한다. 교실에 따라 한글을 공부하기도 하지만 아직 한글을 본격으로 배우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국어, 수학, 통합교과서를 받고 공부한다. 가령, 단순히 교과서 차례로만 배우는 때를 견주어 본다. (묶음표 안 숫자는 시간 수)

초등 1학년 교과간 진도 견줌표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 교과서를 기준으로 한 진도를 견주어 보았다.
▲ 초등 1학년 교과간 진도 견줌표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 교과서를 기준으로 한 진도를 견주어 보았다.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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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수학책을 한 장씩 넘겨보면서 어긋난 곳을 짚어보자.

받침 있는 글자 초등학교 수학 1-1 11쪽
▲ 받침 있는 글자 초등학교 수학 1-1 11쪽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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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 있는 글자 초등학교 수학 1-1 15쪽
▲ 받침 있는 글자 초등학교 수학 1-1 15쪽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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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일, 둘, 이, 셋, 삼, 넷, 사, 다섯, 오(10∼11쪽)'나 '여섯, 육, 일곱, 칠, 여덟, 팔, 아홉 구(14∼15쪽)'처럼 받침이 있는 글자가 줄줄이 나온다. 더욱이 '셋, 넷, 다섯, 여섯'은 ㅅ받침이 'ㄷ' 소리로 난다. '여덟'은 겹받침이다.

이제 막 자음과 모음을 배우는데 수학책에선 이미 받침이 있는 글자를 읽으라고 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이나 '일, 이, 삼, 사, 오' 따위는 아이들 입에 붙은 말 아니냐고 하겠지만, 공식으로 한글을 배우는 게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다른 교과도 국어 교육과정에 따라 가야 한다.

수학에서 가르쳐야 할 것은 '글자'에 있지 않다. 성취기준을 살펴보면 '0과 100까지의 수의 개념을 이해하고, 수를 세고 읽고 쓸 수 있다'는 데 방점이 있지 않은가. 교과서를 구성할 때, 이런 부분을 세심하게 고려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수학> 말고 <수학익힘>도 있다. 이 책은 '학교에서 수학 수업을 할 때나 집에서 공부할 때' 쓸 요량으로 만든 보조교과서. 이 책을 펼쳐보면 한글을 모르고선 혼자 공부하기란 어렵다.

 한글을 읽을 수 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한글을 읽을 수 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 교과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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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익힘책 11쪽, 13쪽, 14쪽, 15쪽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아이들은 한글을 읽을 수 있어야만 위 문제들을 풀 수 있다. 숫자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문장을 읽어야할 때도 있다. 다음은 <수학 익힘 1-1> 19쪽이다.

 낱글자도 아닌 문장을 읽으라고 한다.
 낱글자도 아닌 문장을 읽으라고 한다.
ⓒ 교과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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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재능 있고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도움이 더 필요한 학생에게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미리 한글을 배워온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가 갈라진다. 겨우 한글을 배우는 아이한테 문장을 읽고 답을 찾으라고 하는 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어긋남은 줄곧 이어진다. 18쪽에 가면, '몇째일까요'라는 차시 이름 아래 말주머니에 "나는 몇째로 탈까?"하는 말이 나온다. 뒤로도 '몇째'라는 말은 자주 나오는데, '몇'은 '멷'으로 소리내야 한다. 국어에서 '소리내어 또박또박 읽어요'는 6월쯤에나 가야 배운다.
△ 아무것도 없는 것을 0이라 쓰고 영이라고 읽습니다.(24쪽)
많습니다, 적습니다, 큽니다, 작습니다(26쪽)
△ 여섯째 앉아요.(28쪽)
끊어야지, 끊어요(94쪽)
△ 어느 쪽이 더 넓을까요(98쪽)
△ 어느 것에 더 많이 담을 수 있을까요(100쪽)
장(106쪽)


우리 말을 쓸 줄 모르는 교과서

아이들한테 주는 교과서는 되도록 깨끗한 우리 말로 써야 한다. 수학 교과서라고 다르지 않다. 그런데 교과서가 우리 말을 저버리고 한자말부터 가르치는데 앞장 선다. 이를테면 33쪽을 펼치면 '수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봅시다.'가 나온다. '사용'은 '쓴다'는 말이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나 짐승일 때는 '부린다'고 한다.

교과서는 '쓴다, 부린다, 다룬다' 따위 말은 모른다. 죄다 '이용한다, 사용한다, 활용한다'는 말을 쓴다. 저런 말을 몰라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다만 '사용한다'를 먼저 배운 아이들은 '쓴다, 부린다, 다룬다' 등의 말을 오히려 낯설게 받아들일 것이다.

△ 달라진 곳을 찾아 비교하는 말을 사용하여 말해 보세요.(103쪽)
→ 달라진 곳을 찾아 비교하는 말을 써서 말해 보세요.
→ 달라진 곳을 찾아 비교하는 말을 넣어 말해 보세요.
→ 달라진 곳을 찾아 비교해서 말해 보세요.
→ 달라진 곳을 찾아 견주어 말해 보세요.

△ (…) 모양을 이용하여 나만의 모양을 만들어 보세요.(45쪽)
→ (…) 모양을 써서 나만의 모양을 만들어 보세요.
→ (…) 모양으로 나만의 모양을 만들어 보세요.

사전을 펴보면 '사용'은 '일정한 목적이나 기능에 맞게 씀', '이용'은 '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 하고 뜻매김해 놓았다. 어느 쪽이든 '쓴다, 부린다'는 말로 너끈하다. 물론 도구로 쓸 때는 '~으로'로 바꾸어 쓰면 한결 깔끔하다.

'순서'라는 말. 어떤 잣대에 따라 앞뒤나 위아래처럼 차례를 말한다. 같은 한자말이라도 우리 입에는 '차례'가 더 익은 말이다.

어려운 말부터 가르치는 수학책 인원, 장소 같은 말보다는 사람 수, 노는 곳(자리) 같은 쉬운 말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 어려운 말부터 가르치는 수학책 인원, 장소 같은 말보다는 사람 수, 노는 곳(자리) 같은 쉬운 말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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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46쪽, 48쪽, 126쪽을 보면 '인원', '장소'라고 써놓았다. 1학년 아이가 몰라도 될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배운 아이는 '사람 수', '노는 곳(자리)' 같은 말로 바꾸어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교과서가 우리 말 자리를 빼앗은 꼴이다. 아래 보기도 마찬가지다.

△ 먼저 도착한 사람이 이겨요.(49쪽)
→ 먼저 사람이 이겨요.


'출발', '도착'보다는 '시작', '끝' 하는 게 쉽다.

현재 위치(106쪽)
지금 있는 곳/ 지금 선 자리


27쪽에 보면 '비교한다'는 말이 나오더니 뒤로 줄곧 '비교한다'는 말을 쓴다. 요즘 아이들은 말을 책으로 교과서로 배운다. '비교한다'는 말부터 배운 아이는 자연히 '대본다, 견주어본다, 맞대어본다' 따위 말이 더 어색하고 낯설 수밖에 없다. 더구나 4단원은 단원 이름마저 '비교하기'다.

다른 나라 말법을 따라간 교과서

토씨 '의'는 우리 말에서는 드물게 썼다. 무엇보다 소리 내기 까다롭고 딱딱한 글말로 만드는 구실을 한다. 되도록 풀이하는 말로 바꾸어 써야 자연스러운 우리 말이 된다.

상자 안의 물건을 보고 알맞게 이어 보세요.(41쪽)
상자에 든 물건을 보고 알맞게 이어 보세요.

같은 모양의 물건을 찾아 봅시다.(48쪽)
모양이 같은 물건을 찾아 봅시다.

같은 모양의 물건에 ○표 하세요.(50쪽)
모양이 같은 물건에 ○표 하세요.

무궁화의 수를 알아봅시다.(67쪽)
무궁화가 몇 송이인지 알아봅시다.

버섯의 수를 알아보세요.(68쪽)
버섯이 몇 개인지 알아보세요.

초록 집의 수를 알아보세요.(76쪽)
초록 집은 몇 채인지 알아보세요.

딸기의 수만큼 ○를 그려 보세요.(108쪽, 112쪽)
 → 딸기 갯수만큼 ○를 그려 보세요


다음은 토씨를 잘못 쓴 보기다. 토씨 '까지'는 어떤 일이나 상태 따위를 말할 때 '끝'을 가리킨다. '9까지 수'라고 하면 누구라도 '1부터 9까지'라고 생각한다. '50까지'라고만 해도 누구든 '50'을 끝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토씨 '의'를 보태어 '까지의'라는 겹토씨를 만들어 쓸 까닭이 없다.

9까지의 수(8쪽) →9까지 수
9까지의 수를 알아 볼까요?(8쪽) →9까지 수를 알아 볼까요?
50까지의 수(106쪽) →50까지 수


'~에 대해'라는 말도 생각해 본다. '대하다'라는 말은 '벽을 대하다, 얼굴을 대하다, 친절하게 대하다, 친구처럼 대하다'라고 할 때는 써야 하고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에 대하여, ~에 대한' 꼴로 판박이처럼 쓰면 오히려 맥이 빠지고 군더더기 말이 되고 만다. 보기로 든 문장에서도 '~을/를'로 쓰면 시원스러운 말이 된다.

△ (…) 모양에 대해 알게 된 것을 말해 보세요.(41쪽)
→ (…) 모양을 공부하고 안 것을 말해 보세요.

△ 우리 모둠이 만든 마을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53쪽)
→ 우리 모둠이 만든 마을을 이야기해 봅시다.


아래 보기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인데 아무리 장난감이라도 바르게 썼더라면 좋았겠다. 버스나 자동차, 자전거 따위를 셀 때는 '대'를 쓴다.

△ 버스는 몇 개인지 덧셈식을 써 보세요.(87쪽)
→ 버스는 몇 대인지 덧셈식을 써 보세요.
△ 빨간 자동차가 파란 자동차보다 몇 개 더 많은지 뺄셈식으로 써 보세요.(87쪽) 
→ 빨간 자동차가 파란 자동차보다 몇 대 더 많은지 뺄셈식으로 써 보세요.


말나온 김에, 28쪽에 보면, '교실 또는 강당'이란 말이 나온다. 여기서 '또는'은 우리 말에 없던 말이다. 영어 'or'나 일본말 'また(ヌ)は'를 따라간 말이다. 이 말은 우리 말 사전에도 버젓이 나온다. 예시로 든 "월요일 또는 수요일/집에 있든지 또는 시장에 가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마을의 골목길에나 강가나 또는 들녘 같은 데도 그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를 들었다.

이게 우리 말 사전 꼴이다. 제대로 되자면 아래와 같이 되어야 한다. '-든지'나 '-나'에는 이미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뜻이 들었다. 그러니 '또는'는 쓸데 없는 말이다. '월요일이나 수요일/ 집에 있든지 시장에 가든지/ 강가나 들녘 같은 데도'처럼 써야 한다. 앞에 든 '교실이나 강당'으로 써야 한다.

숫자를 어떻게 소리내어 읽을까?

가끔 텔레비전 자막에 쓴 말을 보면 "양심이라곤 1도 없는 사람", "2가 먹다가 1가 죽어도 모른다"는 식으로 자막을 쓴 것을 본다. 제법 머리 굵은 아이 글에서도 '1도 아프지 않았다.', '숙제가 4나 된다.'고 쓴 데는 심심찮게 만난다. 이런 어색한 말을 수학 교과서가 퍼뜨린다. 수학 공부에 쓸 책이니 숫자로 쓸 수밖에 없지 않냐고 하겠지만, 말글과 글말은 다르다. 더구나 말주머니에 쓴 말이라면 입말처럼 써야 한다.

가령, 말주머니에 '버스 1대가 들어왔어요.'(22쪽)라고 적어놓았을 때, '1대'를 어떻게 읽을까? '한 대'라고 해야 할까, '일 대'라고 해야 할까? 말주머니에 '3명씩 모아야 해.(33쪽)'도 마찬가지. '세 명씩'이라고 해야 할까, '삼 명씩'이라고 해야 할까. 비슷한 보기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이것을 보면 어쩌다가 실수로 잘못 쓴 것이 아니라 수학교과서에는 이렇게 써야 한다고 여기는 셈이다. 아래 보기에서 말주머니에 든 말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숫자를 어떻게 읽을까? 말주머니에 쓴 말은 되도록 입말에 가깝게 써야 한다. 수학책에서 '한 개' '한 개씩', '하나씩'하고 말할 것을 '1개', '1개씩', '1씩' 써서 우리 말을 어지럽힌다.
▲ 숫자를 어떻게 읽을까? 말주머니에 쓴 말은 되도록 입말에 가깝게 써야 한다. 수학책에서 '한 개' '한 개씩', '하나씩'하고 말할 것을 '1개', '1개씩', '1씩' 써서 우리 말을 어지럽힌다.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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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보기들을 보면서 어떻게 읽어야할지 생각해 보자.

△ 2가 나왔으니까 2칸을 가야 해.(48쪽)
 → '2'가 나왔으니까 두 칸을 가야 해.

3명이 그네를 타고 있어요. 1명이 더 와서 모두 4명이에요.(60쪽)
세 명이 그네를 타요. 한 명이 더 와서 모두 네 명이에요.
 → 세 사람이 그네를 타요. 한 사람이 더 와서 모두 네 사람이에요.
 → 이 그네를 타요. 하나가 더 와서 모두 넷이에요.

7명이 탄 열차에서 5명이 내렸어요. 2명이 남았어요.(62쪽)
일곱 명이 탄 열차에서 다섯 명이 내렸어요. 두 명이 남았어요.
일곱 사람이 탄 열차에서 다섯 사람이 내렸어요. 두 사람이 남았어요.
일곱이 탄 열차에서 다섯이 내렷어요. 둘이 남았어요.

9개야. 하나 더 땄어.(108쪽)
 → 아홉 개야. 하나 더 땄어.
우리 말에서 사람을 세는 단위는 사람이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하거나 어른일 때는 한 분, 두 분한다. 아이일 때는 한 아이, 두 아이라고도 한다. 사람 수가 적을 때는 '사람'도 떼고 말한다. 달리 일, 이, 삼, 사처럼 셀 때는 '인'이나 '명'을 쓰기도 하는데 교과서는 죄다 '명'을 쓴다.

하지만 다음 보기는 조금 다르다. 두 자리 수가 되면 대개 숫자 쓴 대로 읽는다.

△ 우리 반 학생은 26명이야.(135쪽)
→ 우리 반 학생은 이십육 명이야.
 → 우리 반 학생은스물여섯이야.

△ 내 크레파스는 48색이야.(135쪽)
 → 내 크레파스는 사십팔 색이야.


길게 말했지만 국어 교과서든 수학 교과서든 무슨 교과서든 우리 아이들한테 주는 책이다. 우리 말을 차근차근 가르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한글을 제대로 가르친 뒤 한글을 읽으라고 해야 한다. 그게 교육이다. 가르치지 않은 것을 읽으라고 하는 건 의무교육을 저버린 짓거리다. 사교육으로 배워오라는 소리다.

공정한 출발은 한글교육부터 제대로 하는 데 있다. 거기에 보태 우리 말과 우리 말 질서를 가르치는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교과서로 책으로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운다. 자연히 교과서에서 배우고 책으로 본 말과 글이 좋은 우리 말인 줄 알고 따라간다. 교과서에 쓰는 말은 쉬운 말, 깨끗한 말, 우리 말이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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