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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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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대한 느낌이 낯설어졌다. 마치 축축한 운동화에 갇힌 발 같았다. 몸은 늘 차갑고, 눅진하고, 무거웠다. 출혈, 갑상선암, 빈혈, 저혈압, 현기증 등등 크고 작은 질병이 삶에 종합선물세트처럼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주말마다 수영과 등산을 즐기던 경쾌한 몸은 사라지고, 낯설고 두려운 몸이 내게 왔다.

비교적 간단한 갑상선암은 수술을 하는 것으로 해결 됐지만, 다른 질병이나 증세는 그렇지 못했다. 빈혈약을 복용하고 빈혈 수치가 정상화 돼도 현기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때 아닌 때 흐르는 출혈은 여러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 될 줄 몰랐다. 혈압은 80-90을 겨우 왔다갔다 했고, 하루가 다르게 원인불명 통증에 시달렸다. 결국 증세가 심화되면서 버스 타는 것조차 힘들어졌고, 휴직계를 냈다.

몸이 나아지지 않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또 다른 병원을 찾아가게 됐는데, 아픈 곳이 여러 곳이다보니 결국 또 종합병원으로 가게 됐다. 여러 과(科)를 돌며 검사를 해야 했고, 각 과의 의사들을 만났다. 그 의사들은 환자인 나와 대화하기 보다는 모니터 속 숫자와 사진에만 집중하며, 자신이 담당하는 질병에 대해서만 짧게 설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증세에 대해 물었을 때, 자신의 과에서 치료하고 있는 질병과 관련한 게 아니라는 답변을 듣기 일 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분비내과 의사는 갑상선만, 혈액내과 의사는 빈혈만을 보았다. 하지만 내 몸은 로봇처럼 분리와 합체를 하는 기계적 장치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체다. 그런데 진료실에 앉아 있으면 내 몸은 해당 장기나 질병만, 뚝 잘려서 현미경으로 조사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느끼는 고통의 총량을 의사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각 과(科) 의사들에게 갑상선암, 빈혈, 출혈 등과 같은 개별 질병은 크게 심각한 게 아닐 수 있지만, 그 모든 질병을 '동시에' 겪고 있는 내 몸은 무겁게 눌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해하는 의사는 없는 것 같았다. 종합병원 일수록 몸을 더욱 분절해서 볼 뿐, 내 몸에 대해 '종합적'으로 말해 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삶의 조건을 면밀히 살펴 본 대체요법사의 진단

나는 치료나 완치는 둘째 치고, 도대체 내가 왜 갑자기 이렇게 아프게 된 건지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막연한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고, 혼돈 속에 몸만 남겨진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손꼽히는 대체요법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내가 아프기 전 후 생활환경의 변화, 생활습관, 개인 병력, 가족병력, 직업 등등 많은 걸 물었다. 그는 답변을 주의 깊게 들었고 내가 몸에서 느끼는 다양한 이상 증세도 꼼꼼히 파악했다. 그렇게 긴 대화 이후, 그는 내가 팔레스타인에 체류했던 기간 중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아프기 직전인 2010년, 팔레스타인 현장 연대 활동을 3개월간 다녀 온 적 있었다. 대체요법사는 내가 팔레스타인에 머물 때 독성 물질에 노출됐고, 그로인해 몸의 정상적 흐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며 내 몸의 몇 가지 이상증세를 근거로 설명했다. 나는 그의 말에 어지럽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실제 내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건 팔레스타인에 머물던 3개월차 부터였고,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에서 내가 활동했던 곳의 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은 장기적 점령과 폭격으로 독성물질이 흔하고, 특히 이스라엘은 정화하지 않은 산업폐수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흘려보내는 일이 빈번하다. 그리고 실제 점령이 장기화 되면서 팔레스타인에 암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으니, 그의 설명에 어렵지 않게 동의 되었다. 덕분에 나의 불안은 일정 부분 상쇄될 수 있었다.

종합적으로 사려깊게 보는 동네 의사

하지만 그럼에도 뾰족한 치료법이 있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치료법을 찾아야 했고, 이번에는 지인의 추천으로 동네 의원 내과 의사를 만났다. 그 의사는 나의 병력과 가족력을 포함한 세세한 문진표를 작성하게 했고, 그걸 토대로 상담 후 몇 가지 정밀 검사를 했다.

의사는 결과를 설명하면서 인간의 몸은 전시(戰時) 상황이 되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능만 남기고 활동을 멈추는데, 지금 나의 몸은 준전시 상황이라고 했다.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여러 가지 호르몬이나 혈액 수치 등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속해서, 여러 통증과 피로감을 동반한 다양한 증세가 발생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조심스럽게 대체요법사에게 들은 설명을 전하자, 그는 여느 의사들이 그렇듯 '비의료인'의 말을 왜 듣냐고 핀잔을 주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여러 데이터를 다시 확인하더니,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는 설명이라고 답했다.

이어서 그는 검사결과를 근거로 나의 여러 증세나 질병의 '흐름'에 대해 여러 추론과 가능성을 덧붙이며 설명해 줬다. 이를테면 어떤 호르몬이 부족하면, 어떤 장기의 역할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몸에서 어떤 증세를 느낄 수 있다는 식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로소 몇 년만에 의사로부터 내 몸에 대한 '종합적' 설명을 들은 것이다!

물론 확진이 아니라 여러 추론이었고, 완전한 치료법을 제시받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혼돈 속 미로 같았던 나의 몸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을 안내받은 느낌이었다. 통상 의사들은 환자의 몸에서 '세포'를 보고 '완치'만 시켜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처럼 여러 증세와 급성 만성, 질환 등이 겹쳐서 오고, 그 원인도 불분명한 환자들은 갑자기 낯설어진 자신의 몸을 납득 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를테면 환자들은 질병 원인을 찾을 수 없을 때, 혹시 질병이 나의 잘못된 생활습관이나 나쁜 일상 환경에서 온 것 인데, 그것을 찾지 못해서 계속 몸이 나빠지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를 멈추기 어려울 수 있다. 왜 아픈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몸이 아파도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고, 곧 자신 몸에 대한 통제권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 때문이다.

즉 질병은 세포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환자의 삶을 흔들며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는 의사로서 단순히 환자에게 매우 친절하게 몸 상태를 설명해 준 게 아니다. 환자가 몸에 대한 주체성을 잃지 않도록 사려 깊게 안내해 준 것이다.

우리 모두 그와 같은 동네의사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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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그와 같은 동네의사를 만날 수 있을까?

그 동네의원 의사와 관련해서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다. 그는 질병을 환자의 세포가 아닌 삶 속에서 봤을 뿐 아니라, 질병에 앞서 건강을 보았다. 나는 그 병원에서 빈혈 등 일상적 검사가 필요한 질환들을 관리받기 시작했는데, 하루는 혈액검사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보다 높게 나왔다며 의아해했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수치는 아니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수치라고 말했다. 즉 의사는 내가 페스코 베지테리안이고, 요가 등을 규칙적으로 하는 생활습관을 지니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생활에서 수치가 높은 것을 이상히 여긴 것이다.

그는 내게 일상에 특별한 변화가 있냐고 물었고, 나는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고생을 몇 달 째 했다고 답했다. 그는 스트레스로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갈 수 있다며, 정서적 건강관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지역에 있는 한 복지관 프로그램을 소개 시켜주었다. 그러면서 해당 프로그램이 내실있게 진행되고 도움 받았다는 이들이 많다며, 비용도 매우 저렴해서 큰 부담이 없을 거라고 일러줬다. 이는 질병으로 발병하기 전에 이상증후를 발견해서 조치하는 예방의학이었고, 나의 빈곤한 경제적 상황까지 고려한 맞춤형 복지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게 너무나 놀라웠다. 마치 책에서나 보던 쿠바의 가족주치의 제도인 '콘술토리오(Consultorio)' 같은 걸 경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알기로 쿠바는 주치의 제도가 있고, 주치의는 환자의 기존병력이나 생활습관은 물론 가족구성, 주거환경, 심리적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진료한다. 그리고 의료는 사회복지 체계 안에서 연장선으로 존재하며, 의사와 사회복지사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지고 환자를 위해 적절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연결한다.

나는 여러 병원을 다녀봤으나, 이런 의사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아마 그의 투철한 의료철학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의사의 '선의'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시민의 보편적 권리인 건강권을 누리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 두 가지가 빠르게 변화되길 바란다.

첫 번째는 당연히 사실상 영리화 된 병원들이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동네의사는 앞서 말했듯 여러 질문과 구체적 설명을 하며 진료를 했고, 시간은 20분 정도 소요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시간을 배치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의료제도를 고려했을 때, 일정정도 자신의 영리를 축소한 행위였을 것이다. 병원에서 사려 깊은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의료의 공공성이 강화되는 게 너무나 절실하다.

두 번째는 가족주치의 제도다. 몸이 아프게 됐을 때, 내 삶의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초기 진단을 받고. 필요한 정밀 검사 등을 어느 종합병원에서 얼마큼 할지 안내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나의 주거, 경제, 병력, 생활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몸에 이상 증세가 왔을 때, 발 빠르게 대처함으로써 질병으로 이어지는 걸 막아내는 의료는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나는 이 사려 깊은 동네 의사의 진료 경험을 통해, 환자의 육체적 정서적 안녕이 단순히 '완치'에만 존재하지 않음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 몸이 아파도 건강에 대한 든든한 안내자가 있다면, 그 아픈 시간을 온통 불안으로 점유당하지 않고, 좀 더 온전히 삶의 과정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반다(조한진희) 7년 전 몇 가지 질병을 만났고, 지금은 완치와 투병사이 경계의 몸으로 산다. 애완텃밭을 가꾸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시사월간지 <워커스>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이 글은 건강세상네트워크 웹진 <시민과 건강을 '잇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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