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동안 컬링을 단 한 번도 안 해봤을까? 심지어 집에서 1.5km 거리에 동두천 국제컬링장이 있음에도 말이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영향으로 지난 2015년 개장한 전국에 5개뿐인 컬링전용시설 중 하나다. 귀한 공간인데, 나는 물론 동네 지인들 중 컬링을 해본 사람은 물론 컬링장을 언급한 사람조차 없었다. 오히려 동두천 컬링장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서울사람이었다.

작년 12월 말, 동두천시 시민문화 정책 회의 자리에 청년정책 컨설팅 해주로 온 서울시정책연구위원회 소속 정책전문가가 지역 문화체육시설 활용방안을 설명할 때 컬링장을 사례로 들었다. 2016년 봄, 서울시정책연구위원회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 동계스포츠의 활성화를 주제로 정책연구발표회와 함께 컬링체험을 실시했단다.

참석한 스무 명 넘는 사람 모두 컬링은 처음이었고 위원회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며 손뼉 치고 환하게 웃는 일도 처음이었다고 한다. '빙판 위에 체스'라는 표현이 수사가 아닌 정확한 비유라면서 그간 경험했던 스포츠와는 완전히 색다른 매력을 받았다고 극찬했다.

샘났다. 워낙 동계스포츠 관심이 없을뿐더러 기피하는 성향이지만 컬링만큼은 꼭 해보고 싶었다. 근데 지난 3년 동안 개장 시기에 잠깐 구경만 갔을 뿐 실제로 컬링을 해보겠단 생각은 단 한번 도 가지질 못했다. 내겐 컬링장은 구경 갔을 때 봤던 조명 꺼진 어두침침한 체육시설의 모습으로만 기억될 뿐이었다.

서울사람도 했는데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사는 원주민이 못할 일 없지 않은가. 얼마 후 인터넷 포털에 컬링장 홈페이지 검색하여 해당링크를 눌렀지만 'IP주소를 찾을 수 없다'는 창이 떴다. 대신 블로그 리뷰로 정보를 접했다. 사용료는 5인 기준 2시간에 15만b원이고 1인 추가 시 1만5천을 내야 한다. 두 시간에 3만 원이면 영화 세편에 음료수 하나 값이다. 비싸다.

동네 지인들한테 말했더니 놀랐다. 비용보다 일반인도 컬링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다. 뒤이은 반응엔 내가 더 놀랐는데, 성별을 무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전에 컬링을 해보자는 공통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학창시절 100m달리기 20초대, 철봉 매달리기가 아닌 철봉 움켜잡고 내려오기의 신체 기량을 고백한 사람들이 지닌 컬링에 대한 흥미가 인상적이었다. 일상에서 확인된 컬링의 흥미가 낯설어, 그 원인을 생각해봤다.

컬링의 흥미는 4년 전 2014소치동계올림픽에 기인한다. 우리나라 여자 컬링대표팀의 활약으로 언론에 주목을 받았고, 전직 유치원 교사였다는 한 대표팀 선수의 이력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생활스포츠 측면에서도 여러 장점을 지닌다. 컬링에 대한 흥미야말로 IOC와 평창조직위에서 그렇게 부르짖던 올림픽유산이다. 이렇게 계속 컬링을 언급하는 건 컬링조차 동계생활체육저변확산이 좌초되면 추후 동계생활체육 활성화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서 그렇다.

동계생활체육 참여율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도리어 줄어들기도 한다. 동계생활체육 종목 중 최고 많은 인원을 보유한 스키가 대표적이다. 일단 스키장 이용객부터 감소 추세다. 지난 5년 새 200만 명이나 줄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한번 갈 때마다 최소 10만 원가량 지출되는 경제적 부담이 이용감소의 가장 큰 요인이다.

나아가 위험성도 한 몫을 한다. 최근 3년간 국내 스키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연평균 192회에 달한다. 다른 종목에 비해 부상 정도도 심각하다. 증상별 통계에서 골절 탈골이 205건으로 제일 많다. 그렇다면 빙상종목이 대안이겠지만 이마저도 운영비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포털 검색창에 '빙상장 적자'를 입력하면 전국의 빙상장 적자 문제가 쉽게 파악된다. 평창올림픽 빙상경기장도 개최 전부터 적자 딱지가 붙었다. 2017년 강원도 도의회에서 제출한 행정감사자료에 분석된 경기장 연간 운영수지 결과를 보면 스피드스케이트경기장 22억, 강릉하키센터 21억의 적자가 산출됐다.

이에 2017년 강릉시는 거룩한 빙상장 사후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강릉의 자랑인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차용한 '강릉시 10만 빙상인구 양성 프로젝트'. 강릉시는 2017~2018년 40억을 투입하여 1학교 1 빙상스포츠 특기·적성 사업 지원, 빙상스포츠 축제 등을 열어 시민의 건강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다짐했다.

결국 체육시설 운명은 생활체육 참여율에 달렸다. 컬링을 주목한 이유는 스키로 대표되는 설상종목보다 경제적 부담과 부상 위험이 훨씬 적고 빙상종목처럼 고도의 신체기량과 운동기술이 요하지 않는 종목으로 동계생활체육활성화를 이뤄내는 게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 정부 체육정책 핵심과제인 학교체육 생활체육 엘리트 체육이 선순환 되는 선진형스포츠시스템 구축에 대한 맞춤형 종목이기도 하다. 외국 컬링대표팀 선수 중 별도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즐비하다. 간호사, 회계사, 레스토랑 주인, 개인사업자 등 다채롭다. 핀란드 남자대표팀에는 나이가 50대인 선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잘 하든 못 하든, 컬링을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급선무는 올림픽이 열리는 현재, 집 근처에 전국에 다섯 개 밖에 없는 컬링장이 시민의 삶과는 별개인 특정 시설 아닌 일상 속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누가 보면 컬링 홍보대사인 줄 알겠다. 사실 나는 동계스포츠를 안 좋아한다. 대학생 때부터 싫어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계절스포츠수업으로 스키를 들었다. 전문대라 계절스포츠 수업이 필수과목이어서 선택의 여지없이 수강하게 됐다. 스키장 가기 일주일 전부터 선배 동기들의 드레스코드는 스키복이었다. 스키수업을 대비하여 구입한 것으로 서로의 옷을 갈아입어보며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지는 풍경이 다분했다.

나는 수업 전날 친구에게 겨울용 미군군복 상의와 스키복 하의를 빌렸다. 아직도 가족끼리 스키장을 가본 적은 없고, 평생에 가족들과의 여름 여행 횟수도 5회 미만이다. 내 추억 속에 가족여행과 가족여가 장면은 초등학교 시절 일 년에 두 번 열렸던 아버지가 다니던 조기축구회 가족체육대회가 대신한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기에 차가 없어도 엄마 양 손에 누나와 내가 달린 채로 가족체육대회 장소로 걸어갔던 날들이었다. 내가 동경하고 확장하고 싶은 생활체육의 청사진이다. 100억짜리 컬링장 한 개와 1억짜리 운동장 100개를 고르라면 한 치에 망설임 없이 운동장 100개를 택할 것이다. 근데 현실은 평창동계올림픽 신설 빙상경기장 두 곳 모두 각각 1200억 원이 넘는다.

그러니까 동계올림픽이 우리사회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컬링장을 이용하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닐 때, 빙상장 하나 만드는 것과 간이 실내체육시설 백 개 만드는 걸 두고 주민들의 숙의과정이 점철되는 과정에서 발휘된다. 그런데 평창동계올림픽의 모든 과정, 심지어 지금도 이러한 과정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봐도, 올림픽 반대모델이 우리 사회에 더 이롭다. 최근 동두천 국제 컬링장이 운영을 접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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