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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퍽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였다. 학기 말에 받는 '통지표'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늘 같은 내용의 코멘트가 적혀 있었다.

"차분하고 맡은 바 일을 잘함.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음."

어린 나에게 내성적이란 평가는 고쳐야만 할 단점으로 들렸고, 덕분에 앞부분의 칭찬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성격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이제 어릴 때와 정반대인 평을 들으며, 가끔 헷갈린다. 어느 것이 내 진짜 성격일까.

그러고 보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바깥의 시선 때문에, 혹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성격을 바꿔야 했던 이들. 문득 궁금하기도 하다. 과연 꼭 바뀌어야 할 성격이란 있는 것일까?

<마음이 콩밭에 가 있습니다> 책표지
 <마음이 콩밭에 가 있습니다> 책표지
ⓒ 놀(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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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정신과 전문의가 쓴 <마음이 콩밭에 가 있습니다>는 '콩밭형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다음에 해당하는 사항이 많다면, 당신도 콩밭형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 일이나 공부를 할 때 항상 산만한 편이다
- 푹 빠져 있다가도 금세 열정이 식어버린다
- 대화를 나누면서도 수시로 딴생각에 빠진다
-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기다릴 수가 없다
-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본다
- 지루한 것을 못 참고 '재미'가 제일 중요하다
- 혼자가 되었을 때 갑자기 깊이 외로워진다
-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 일도 생각도 벌여놓고는 마무리 짓기에 약하다

저자는 이런 콩밭형 인간이 어릴 때는 활발하고 밝은 성격으로 칭찬을 듣지만, 자라며 환경적인 요인으로 활발함이 줄어들고 평범한 어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때때로 산만함으로 주위의 걱정을 사고 지적을 받으며 변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콩밭형 인간의 긍정적인 면모에 주목한다.

"한 가지에 몰두하지 못해서 고민인 사람은 다양한 분야에 골고루 재능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자신이 걱정인 사람들은 누구보다 결단력 있는 사람일 것이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기 때문이다." (p13)


산만해 보이면서도 뭔가에 꽂히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콩밭형 인간의 성향이 반드시 성공을 가져온다고 할 수는 없지만, 때때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성과를 만들어낸다고 강조한다. 주차장 창고에서 컴퓨터를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처럼 말이다.

이들의 충동성은 다르게 표현하면 '결단력'인 것이고, 부주의는 다르게 말하면 '대범함'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것은 넘쳐나는 '호기심' 덕분인 것이다. 목표를 향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므로, 이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생각한 일에 망설임 없이 바로 착수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렇다.

"당신은 세세한 조건 하나하나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목표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망설이기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는 일단 도전해보고 결과를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훨씬 더 미래지향적인 결정이 아닐까." (p36)


책은 이 유형의 성격을 오직 긍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유로운 성향을 지닌 이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불편들 역시 짚어보고, 보다 발전적인 삶을 위해 조율해야 할 점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들이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팁, 사회생활에 보다 쉽게 적응하기 위한 방법 또한 실려 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이 책이 말하는 콩밭형 인간이 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다. 미련하리만치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 나이고, 좋게 말하면 신중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결단력이 부족한 것 역시 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절로 떠오르는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 있었고, 나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들여다보며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조금은 넓어진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저자가 성격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콩밭형 인간에 집중하고 있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누구도 스스로의 성향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모든 것이 곧 당신의 길이며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자신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다. 대신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사람과 환경을 찾아내는 일이다." (p17)


그렇다. 나 역시 세상에 고쳐져야 할 성향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긍정하고, 자신을 바꾸기 보다는 각자에게 맞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나를 바꾸고 싶다는 것은 결국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기불만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p54)


적어도 나의 필요가 아닌 타인의 시선 때문에 성격을 바꾸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책은 말하고 있다. 어떤 성격을 가졌든,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항상 눈을 반짝이며 새로운 무언가를 꿈꾸는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빛나는 존재다." (p19)


마음이 콩밭에 가 있습니다

최명기 지음, 놀(다산북스)(2018)


태그:#마음이 콩밭에 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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