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음소프트에서 빅데이터( 미투 분석을 위해 트위터 50억건, 블로그 1억6천여건을 분석한 자료)로 '미투' 관련 감성 반응을 살펴본 결과 초반에는 미투 운동에 대해 '응원'과 '유감'을 표하던 반응이었다가 사건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후반에는 '성 범죄'에 관한 '공포'까지 확산되고 있으며 '비극적' 상황에 대한 분노 반응 등 부정적인 반응이 앞섰다. 또 더욱 거세지는 미투 운동에 대해 '우려된다'는 반응이 57%, '기대한다'는 반응이 43%를 기록했다.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더욱 충격적인 추가 폭로가 나올까 우려된다'는 사람이 가장 많았고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제약이 생길까 우려된다'와 '허위 사실 폭로로 피해자가 발생하게 될까 우려된다'는 반응이 뒤를 이었으며 '기대한다'는 반응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 폭력이 근절되기 기대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오랜 시간 안희정을 지지했던 남편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평소 마시지 않던 술을 꺼내 마셨다. 세상이 너무 혼란스러워 걱정이라 했다. 평소 여성문제에 있어서 화난 표정을 짓고 불만을 토로하던 나지만 요즘은 걱정 말라고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었다. 이는 단순히 남편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넘치는 고발과 사회 각 분야의 혼란 속에서도 나는 '우려'보다는 '기대'감이 훨씬 더 크다.

이경영과 오달수

성폭행 당한 사람이 자살하는 것을 '정조관념'으로 미화하는 뉴스라니
 성폭행 당한 사람이 자살하는 것을 '정조관념'으로 미화하는 뉴스라니
ⓒ MBC 화면캡처

관련사진보기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으로 돌아가 보자. 1997년 9월 11일 MBC 뉴스는 택시운전사에게 성폭행 당한 여대생의 투신자살 소식을 전하며 "수치스러운 삶 대신 죽음을 택한 이양의 선택은 정조 관념이 희박해진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라고 덧붙였다.

성폭행 당한 사람이 자살하는 것을 '정조관념'으로 미화하는 뉴스라니. 순결을 강조하며 순결을 잃은 사람은 자살하는 것이 아름답고 정의로운 선택이라니. 가해자의 '가해'보다 피해자의 '피해'를 죄악시 하는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 성폭행 당하고 당당하게 사는 여성들은 수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건가? 지금 분위기로는 도저히 말이 안 되는 말이다. 가해자가 당당하고 피해자가 욕을 먹어야 했던 시대. 불과 20년 전만해도 우리 사회는 성폭행 가해자에게 관대함을, 피해자에게는 손가락질을 했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성폭행이나 성추행 가해자에게 얼마나 너그러웠는지, 영화배우 이경영의 사례를 보자.

그는 2001년 여고생에게 "제작 중인 영화에 출연시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2002년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의 형을 받았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권력형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부가 나서서 형량을 최고 징역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최근 분위기와 비교하면 그가 받은 형이 얼마나 약했는지 알 수 있다.

이후 공백기를 가진 이경영은 2011년 들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유죄판결 전력 때문에 현재까지도 공중파 출연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대중들에게 그의 성폭력 범죄 사실은 쉽게 잊혀졌다.

현재 이경영은 '충무로 노예'로 불릴 정도로 다작을 하며 '명품 조연'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는 80여편이 넘는다. 2016년에는 백상예술대상 남자 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한마디로 완벽히 재기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남성의 성적 욕망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가볍게 생각해왔다. 연기력이 훌륭하다면 성폭력은 눈감아 줄 수 있는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영화 <강철비>에 출연한 배우 이경영
 영화 <강철비>에 출연한 배우 이경영
ⓒ (주)NEW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2018년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성폭행을 사소한 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신뢰받는 뉴스 프로그램에 피해자가 나와 가해자를 지목하여 피해 사실을 말하고 전폭적인 위로와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가해자를 가해자답게 피해자를 피해자답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영화계는 미투 운동의 확산과 여론의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남성 영화인들의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확산되자, 영화 제작사는 이들을 작품에서 하차시키거나, 대체 배우 섭외, 성폭력 가해 혐의자 촬영 분 삭제, 재촬영 등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여러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천만 요정', 믿고 보는 배우 오달수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맥스무비 설문조사에 의하면 영화 관객 10명 중 8명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영화인의 영화는 거부하겠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유능한 배우나 감독이라 해도 반응은 냉정하다. 2002년 '물의'를 일으킨 이경영은 재기에 성공했지만 2018년 오달수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인 성추행 논란이 되었던 이윤택도 여러 피해자의 폭로가 이어지자 한국 작가협회, 연극연출가협회, 서울연극협회에서 영구 제명되었고, 수행비서를 성폭행 한 혐의로 현재 검찰 조사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 또한 피해자의 폭로 이후 곧장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에 의해 당에서 제명되었다.

개인의 사생활로 여겨지던 성폭력 문제가 이제는 더 이상 사소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남성들의 태도는 이전과 다르게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을 수 있겠냐는 말로 폄하되고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던 여성문제가 드디어 무시할 수 없는 해일이 되었다. 아무리 세상이 혼란스럽다 해도 어찌 환호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년 전과 지금이 다르듯 이렇게 계속 문제제기하며 인식을 바꿔간다면 지금과 20년 후의 풍경은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아 보이지만 지금처럼 폭발적으로 젠더감수성을 키워간다면 내 딸이 성인이 되었을 때쯤 얼마나 더 좋아져 있을까.

아마 여성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사람대접 받으며 존중받고 있을 테고, 성범죄 처벌도 강화되어 있을 테고, 성평등 지수도 많이 올라가 있으리라. 격변의 시기이긴 하나 우려보다는 '기대'를, 불안보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말하기 더 없이 좋은 기회다.

미투 혁명과 촛불 혁명

#Metoo
 #Metoo
ⓒ 고정미

관련사진보기


미투운동의 핵심은 '미투'에 있다. 미투는 "나도 고발한다" 혹은 "나도 말하겠다"는 연대의 의미다. 혼자 말하면 듣지 않았을 이야기를 여럿이 이야기 하니 그 누구도 더 이상 사소하게 취급하지 못한다. 이건 마치 나 혼자 촛불을 들고 있을 때는 힘이 없지만 여럿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을 때는 대통령도 탄핵시킬 수 있는 엄청난 힘이 되는 것과 같다.

촛불은 대통령을 바꿨지만 미투는 더 많은 것을 바꿀 것이다. 미투 운동을 통해 그간 쌓아왔던 수많은 젠더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성폭행 당했다는 게 말이 되나? 자기도 좋으니까 그랬겠지."
"천재도 아니고 어떻게 몇 년이 지난 일을 정확히 기억해? 꽃뱀 아냐?"
"미투는 공작이래." "OO 사건을 덮으려는 거래."
"마녀사냥이 따로 없다. 미투가 결국 사람을 죽였어. 성폭행이 죽을 만큼 큰 죄야?"

폭발적인 미투 운동에도 불구하고 반성과 성찰은 커녕 여전히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런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무성의한 대응책인 펜스룰과 같은 부작용도 있다.

그러나 괜찮다. 지금의 논쟁과 분위기가 가부장적인 사고로 무장된 사람들의 생각까지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아마 아무리 더 센 바람이 불어와도 이미 견고하게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둔 사람들의 사고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바뀌거나 말거나, 남성은 남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여성도 남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대는 끝나고 있다. 가해자에게 감정 이입하며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긴 하지만 2차 가해가 무엇인지 조차 고민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무지일 뿐이다.

"공작이라는 말로 피해자들의 입을 막지 마라! 그 말 자체가 공작이다!"
"상처받을 아내 걱정은 성폭행을 하기 전에 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가족들이 괴로운 건 당신 때문입니다."
"미투가 남을 자살하게 할 만큼 나쁜 일이 아니라, 그가 한 행동이 더럽고 끔찍한 나쁜 짓이였죠. 가해자 자살의 원인은 가해자의 가해사실에 있습니다"

라고 냉정하게 답하는 시대다. 더 이상의 무지함은 통하지 않는다. 남성들과 남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많은 여성들이 함께 진화할 시기다. 자의든 타의든 이 사회에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가해자 중심의 논리, 남성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상호존중과 배려의 태도를 학습해야 한다. 이제는 젠더감수성 없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평등하고 품위 있는 사회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미투운동의 논쟁이 지금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나타내진 못해도 미투운동 덕분에 10년~20년 후의 우리 사회 모습은 엄청 달라져 있으리라 믿는다. 성폭력 피해자가 자살을 하고 정조관념으로 미화되는 뉴스를 보며 성장한 우리 세대와 피해자가 당당하게 나와 가해자를 지목하여 고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미투운동 이전 세대 여성들이 미투운동을 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지금 튼튼한 기둥을 하나씩 세우는 중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갈 길이 멀지만 우리 아이들은 미투의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에 조금 더 평등한 관계를 맞이하게 되리라. 

미투는 폭로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만큼이나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였다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마다 폭로의 진위 여부를 두고 다투는 것보다 이제 우리는 폭로 이후 평등한 관계를 맺기 위한 자세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 서 있다.

이제 피해자에게 "왜 가만 있었냐" 질문하는 사회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왜 그랬냐?" 묻는 사회로, 성폭력 폭로에서 '성'에 집중하기 보다 '폭력'에 집중하는 사회로, 약한 사람들이 억압받거나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자.

우리 아이들이 '가해'하지도, '피해'받지도 않는 품위있는 사회를 바란다면 듣기 힘들만큼 추악한 폭로가 연일 터져나와도 "지겹다. 그만하자"는 부정적인 말 대신 촛불혁명을 대하듯 미투혁명을 지지하며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태그:#미투, #가해자, #피해자, #미투혁명
댓글2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