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로렌스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 1990년생인 제니퍼 로렌스는 한국 나이로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았다. 16세 TV 영화 < Company Town >으로 데뷔한 그녀는, 곧 영화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신인 시절부터 연기로 인정 받으며 상업영화를 넘나들었는데, 영화 <엑스맨> 시리즈와 <헝거게임> 시리즈가 그것이다. 이 두 강력한 흥행 시리즈로 그녀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 <조이> 등에 출연하며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러브에서 주조연상을 놓치지 않았다.

북미에서 2010년 개봉한 영화 <윈터스 본>은 그녀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감독들의 등용문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 받았다. 특히 이 영화는 제니퍼 로렌스의 제니퍼 로렌스에 의한 제니퍼 로렌스를 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아빠의 실종, 가장이 된 열일곱 소녀


미국 중남부 미주리주 오자크 산골에 사는 열일곱 살 소녀 리 돌리(제니퍼 로렌스 분). 그녀는 아픈 엄마와 어린 두 남매를 책임지고 있다. 아빠는 가석방 중이고 말이다. 어느 날 경찰이 찾아와선 '아빠가 다시 약을 만드는 것 같다'며, 재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보석금으로 집과 땅을 저당 잡고 종적을 감춰버렸다고 알린다.

아빠를 찾아 재판에 출두하게끔 해야 집과 땅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리는 길고 험한 여정을 시작한다. 아빠와 친한 마을 사람들과 친척들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아빠의 종적을 쫓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커녕 친척들까지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아빠가 이미 죽었음을 인지한다.

리로서는 어떻게든 무조건 아빠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 그런 리의 행동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급기야 그녀에게 심한 위협을 가한다. 그때 나타난 삼촌 티어드롭 돌리(존 호키스 분), 마음을 돌려 리의 사투를 도우며 함께 한다. 아빠의 실종, 나아가 죽음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리는 아빠를 찾아내어 집과 땅과 가족을 지킬 수 있을까? 그럼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까.

강대국의 강력함이 독이 되는 이면


영화는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그곳은 얼핏 연방정부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처럼 보인다. 소규모의 목축업이나 마약 제조를 제외하면 도무지 무얼 해서 먹고 사는지 알 수 없는, 무(無) 경제활동으로 일관하는 폐허의 마을이 아닌가.

와중에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국가의 존재는 한 가족의 생존을 위협할 뿐이다. 이 영화의 가난한 배경이 보여주는 강대국 미국의 이면은, 단순히 가난이라는 이면뿐만 아니라 그 강력함이 오히려 독이 되는 이면이다. 그걸 감당하는 자는 장대한 기골의 남성 영웅이 아니라 나이 어리고 여린 열일곱 살 소녀라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제니퍼 로렌스가 어색하지 않게, 흔들림 없이 신인티 없이 완벽하리 만치 연기한 리 돌리는 '영웅적 존재'가 아니라 차라리 '신화적 존재'에 가깝다. 여기서 말하는 신화적 존재란 좀 더 상징적이다. 그녀는 이 거대한 국가와 마을이라는 존재에 뚝심 있게 저항하지만, 그 어떠한 타격을 입힐 수 없다. 그럴 영웅적 힘과 지능이 뒤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해내야 하기에 진실 찾기가 아닌 생존에 포커스를 맞춘다. 반면 그들은 그녀의 생존이 아닌 진실 찾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군인이라는 길을 시도하고, 생존하기 위해 어린 동생들에게 총 쓰는 법을 가르치고, 야생 다람쥐를 사냥해 직접 손질하게 하는 건, 영웅적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차라리 신이 내린 시련을 성장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이겨나가는 신화적 스토리에 가깝다. 그건 미국 신화일까, 반(反) 미국 신화일까.

영화는 리의 영웅적 스토리를 포기함으로써 자연히 미스터리 스릴러도 함께 포기한다. 겉으로 보이는 스토리 성격상 드라마가 가미된 미스터리 스릴러일 게 분명해 보이지만, 실상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주 조금 가미된 드라마이다. 그래서 일면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아니 거의 반드시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윈터스 본>이 개봉한 지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그 명성을 간직하고 있는 건, 제니퍼 로렌스라는 배우의 발견뿐만 아니라 리 돌리의 가족을 향한 끊임없는 전진 덕분일 것이다. 나라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어른들로부터, 가난으로부터 가족을 지켜내려는 그녀의 사투는, 그 양상이 어떻든 진지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한 두 번 더 보면 영화가 더 명확해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