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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고찰 구산선문장흥 가지산 보림사입니다.
 천년고찰 구산선문장흥 가지산 보림사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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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여수 돌산 갓김치 가져왔어요. 어디에 둘까요?"
"(화난 목소리로) 갓은 머리에 쓰는 거지, 먹는 게 아냐."
"(영ㆍ감ㆍ탱, 썰ㆍ렁ㆍ하ㆍ긴) …."

일선 스님, 아직 씩씩거립니다. 왜? 성에 안차다는 거죠. 그 마음 압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합니다. 나그네가 뭐라고 이렇듯 마음 써주시는 걸까. 구경꾼들 슬금슬금 사라집니다. 세계 3대 구경 중 하나가 싸움 구경이라지요. 스님의 대노로, 한바탕 걸판지게 벌어질 싸움판을 기대했는데, 싱겁게 끝난 뒤끝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다행인 듯합니다. 차에서 돌산 갓김치를 가져옵니다.

"어, 갓김치가 두 개네?"
"예. 하나는 일지암 법인 스님 몫이었고, 하나는 보림사 몫이었습니다만, 일지암에 안 가는 통에 두 개 다 가져왔습니다."
"하나는 저기 일하시는 분들 드시게 저기에 놓고, 하나는 공양 간에 주세요."

이ㆍ뭣ㆍ고! 한바탕 난리(?)를 치른 뒤끝이라 술렁입니다. 일하시는 분들에겐, 스님과 나그네의 다정함이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지요. 나그네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어째 곱지 않습니다.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그들 마음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스님이 저 사람을 때리려고 했어..."

"뭘 보시고 '해탈의 길'에 들어섰다고 하신 겁니까?"

 일선 스님께서 대노해 내려치려 했던 쇠스랑이 바닥에 뒹굴고 있습니다. 사랑 가득한 배움이었지요.
 일선 스님께서 대노해 내려치려 했던 쇠스랑이 바닥에 뒹굴고 있습니다. 사랑 가득한 배움이었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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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일하시는 분들께 걸어갑니다. 언제 고래고래 악을 썼냐는 듯, 온화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넵니다. 참~ 나~. 들리는 소리가 어처구니없습니다. 스님의 본래 마음이지요.

"저 사람이 여수에서 돌산갓김치 가져 왔으니, 맛있게 드세요."

스님, 약수터에 앉아 손짓으로 오라 하십니다. 차가운 바람이 어느 새 훈훈한 바람으로 변했습니다. 스님, 걱정 가득한 표정입니다. 그 걱정일랑 오롯이 스님 몫. 나그네가 상관할 바 아니지요. 스님과 약수터에 걸터앉습니다.

"'참 나'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문이 닫혔으니 그렇지."
"왜 그러죠?"
"병들었어. 병들어."
"답은 알고 있습니다."
"알면 됐네. 그대로 하면 되지."

시끄러움을 피해, 스님 거처로 자리를 옮깁니다. 실내가 썰렁합니다. 차를 두고 앉았습니다. 곶감까지 대령입니다.

"스님. 지난해에 뭘 보시고 저에게 '해탈의 길'에 들어섰다고 하신 겁니까?"
"…. 공적영지는 보았나?"
"예. 폭포수 뒤에 숨어 있는 소소 영영한 그 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시 들 수가 없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막힘입니다. 왜 그러죠?"
"막힘이 있으면 좋네. 나도 두 번 막혔네."

자기 안에 있는 답을 또 밖에서 찾고 있다?

 일선 스님과 걸터 앉았던 보림약수입니다.
 일선 스님과 걸터 앉았던 보림약수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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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스님을 부리나케 찾습니다. 삼사순례단이 주지 스님 찾는다고 안달입니다. 스님, 공부하는 사람이 우선이라며 가차 없이 물리칩니다.

"그래서 득달같이 화내신 거 아닙니까? 답은 자기 안에 있는데, 답을 또 밖에서 찾고 있다고. 여기 올 일이 아니라, 스스로 혼자 답 찾을 생각 안하고, 쓸데없이 돌아다닌다고."
"그렇지. 아네."
"근데, 왜 아직 뻥 뚫린 것처럼 속이 시원하지 않죠?"
"…. 스스로 찾아야지."

"요즘 '해탈로 가는 길'이란 소제목으로 글을 연재 중입니다."
"잘했어. 글을 보니 방향을 잘 잡았더라고. 다른 데서 공부하는 건 아니지?"
"예. 혼자 집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불경을 많이 보았을 테니, 이제 그만 봐도 되겠어."

"스님, 호흡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호흡도 방편일 뿐이야.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
"이제 가게."

"머리 잘린 이 부처님이 정답이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일선 스님께서 정답으로 제시한 머리 잘린 부처님입니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일선 스님께서 정답으로 제시한 머리 잘린 부처님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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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법을 배우고 싶은데, 계속 거부합니다. 가부좌 틀고, 차분하게 앉아, 참선과 명상에 빠지고 싶은데, 아직 아니나 봅니다. 물론 압니다. 지금은 외적인 방편보단 '참 나', '진여'의 자리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게 우선이라는 거죠. 호흡법은 뒤에 배워도 된다는 겁니다. 때가 있겠지요. 인연!

밖으로 나옵니다. 바람 속에 봄이 살랑살랑 들어 있습니다. 머문 곳은 보조선사탑 앞. 보물 제157호인 이 승탑은 신라 말 고승인 보조선사 체징의 묘탑입니다. 그 옆으로 머리 잘린 부처님이 자리합니다. 스님, 아무렇지 않게 마음 담아 한 마디 툭 던집니다.

"머리 잘린 이 부처님이 정답이다."

이게 바로 한 번도 스승인 적 없었으나, 진정한 스승인 이유입니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집으로 향합니다. 머릿속은 '머리 잘린 부처님'으로 가득합니다. 갑자기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립니다. '알아차림'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 기러기 소리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고?"
"스님, 주인이 어디 있다고 하십니까."

 삶, 수행은 오롯이 자기 몫입니다.
 삶, 수행은 오롯이 자기 몫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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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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