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DB 정규리그 우승 11일 오후 강원 원주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원주 DB와 서울 SK 경기. DB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지은 뒤 선수들이 모자를 던지며 축하하고 있다. 2018.3.11

▲ 원주 DB 정규리그 우승 11일 오후 강원 원주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원주 DB와 서울 SK 경기. DB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지은 뒤 선수들이 모자를 던지며 축하하고 있다. 2018.3.11 ⓒ 연합뉴스


프로농구 원주 DB가 6시즌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원주는 11일 홈구장인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서울 SK와의 경기에서 69-79로 패했지만 경쟁자인 2위 전주 KCC가 같은 시간 서울 삼성에 패하면서 극적으로 우승을 확정했다. 원주 구단 역사상 5번째 정규리그 우승이다.

원주의 반전은 올시즌 최대의 이변이라고 할 만하다. 2000년대 이후 프로농구 전통의 강호로 군림해온 원주였지만 2017-2018시즌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 때보다 낮았다. 주득점원이었던 허웅이 군에 입대했고, 은퇴를 앞둔 김주성과 아킬레스건 부상에 시달린 윤호영은 노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시즌간 뚜렷한 전력보강 요소도 없었고 벤치멤버들은 10개구단중 가장 허약한 편에 속했다. 연봉총액 최하위인 원주의 2017-2018시즌 샐러리캡 소진율(총액 23억원)은 10개팀 가운데 가장 낮은 73.9%에 그쳤다. 사실상 6강 플레이오프도 힘들다는 비관적인 전망과 함깨 '리빌딩'에 무게가 쏠렸다.

반전의 시작은 이상범 신임감독의 등장에서부터였다. 이상범 감독은 2013-14시즌 안양 KGC 감독직을 끝으로 프로농구 현장을 떠나 재야에 머물러왔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유재학 감독으 보좌하는 국가대표팀 코치로 금메달에 기여하기도 했으며, 최근까지 한국과 일본 학원농구를 오가며 기술 자문을 맡기도 했다.

사실 이상범 감독은 원주의 지휘봉을 잡을 무렵만 해도 크게 주목을 받지못했다. 안양 KGC 시절 구단 사상 첫 우승을 이끌기도 했지만 당시만 해도 오세근-이정현-양희종-김태술 등 호화멤버를 보유한 '선수빨'이라는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창원 LG가 슈퍼스타 출신 현주엽 감독을 선임한 것이 큰 화제가 되며 상대적으로 이상범 감독의 원주행이 묻힌 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범 감독은 부임 첫 해만에 노쇠했다는 평가를 받던 원주를 환골탈태시키며 지도자로서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디온테 버튼과 로드 벤슨이라는 수준급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며 전력을 끌어올렸고, 어정쩡한 듀얼가드라는 평가를 받던 두경민을 에이스로 각성시켰다.

전성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코트 위에서의 존재감이 뛰어난 김주성과 윤호영의 출전시간을 조절하여 '식스맨'으로 쏠쏠하게 활용하면서 벤치의 무게도 높였다. 김태홍, 박병우, 서민수, 김현호 등 다른 팀에서 거의 주목받지못하던 '롤 플레이어'들은 이상범 감독의 지도력 하에서 확실한 역할을 부여받고 당당히 팀전력의 한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원주는 2000년대 이후 전성기를 호령하던 시절에도 김주성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다는게 약점으로 지적받아왔다. 강력한 높이와 수비의 농구를 상징하는 '동부산성'이라는 수식어는 원주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지만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이미지도 강했다. 이상범 감독은 언뜻 소소해보이지만 전임 감독들이 시도하지못했던 용병술과 소통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작지만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이상범 감독이 '총연출자'라면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주연'은 역시 디온테 버튼이다. 올 시즌 KBL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선택을 받았던 버튼은 경력자를 선호하던 국내 외국인 선수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데다 KBL이 첫 프로 무대인 어린 선수라는 점에서 모험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버튼을 영입한 원주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단신선수로 분류되는 193cm의 작은 신장에도 내외곽을 넘나드는 '팔방미인'으로서 1-4번까지 소화하는 다재다능함과 승부처에서의 클러치 능력은 단연 올해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손색이 없었다.

버튼의 활약상은 유능한 외국인 선수 한 명의 가세만으로 팀전력이 전혀 달라지는 KBL의 현 주소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올시즌 원주의 성공이 폄하될 이유는 없다. 애런 헤인즈(서울 SK), 안드레 에밋(전주 KCC) 등 버튼 못지않은 쟁쟁한 경력자들이 버틴 경쟁팀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단순히 외국인 선수 개인의 능력만으로 단정할수 없는 문제다. 이상범 감독과 버튼 둘 중 한 명만 없었어도 올시즌 원주의 1위 등극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원주의 1위 등극 과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시즌 종반까지 전주 KCC, 서울 SK의 끈질긴 추격에 진땀을 빼야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에이스로 활약하던 버튼이 체력적인 문제와 향수병이 겹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로드 벤슨은 경기중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고 유니폼을 찢었다는 이유로 KBL의 징계를 받으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가장 큰 고비는 역시 토종 에이스 두경민을 둘러싼 태업 논란이었다. 한때 MVP 후보까지 거론되던 두경민은 지난 2월 경기력 저하와 함께 경기중 불성실한 태도와 사생활을 둘러싼 구설수까지 겹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상범 감독과도 불화설에 휩싸였다. 이상범 감독은 팀내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던 두경민을 한동안 전력에서 배제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동안 국내 프로농구 역대 1위팀에서 보기힘든 초유의 사태였지만 이 감독은 단호했다. '어떤 선수라도 팀보다 위에 있을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원주는 두경민 없이도 승승장구하며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두경민은 대표팀 합류를 전후하여 이상범 감독과 선수단에 사과하고 백의종군하며 갈등을 봉합했다. 팀내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오히려 '원팀'으로 똘똘 뭉친 원주는 마침내 1위를 완성하며 그간의 노력에 대하여 보답을 받았다. 아직 플레이오프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장기레이스인 정규시즌에서 정상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존중받아야할 업적이다.

원주의 종전 마지막 정규리그 우승은 2011~2012시즌이었다. 당시 원주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챔피언전에서 2위 안양 KGC 인삼공사의 벽에 막혀 통합우승에는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원주의 우승을 가로막은 안양의 사령탑이 바로 이상범 감독이었으니 묘한 인연이다.

이상범 감독은 이제 원주에 2007-08시즌 이후 10년만의 통합우승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두고 도전해야한다. 2002년 프로 데뷔 이후 오직 원주를 위해서만 헌신해온 '원클럽맨' 김주성의 은퇴를 앞둔 마지막 시즌이라는 점에서도 올시즌 통합우승은 더욱 간절하다. 이상범 감독의 원주가 플레이오프에서도 반전드라마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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