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현주엽 감독 13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부산 kt 소닉붐의 경기. LG 현주엽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LG 현주엽 감독 LG 현주엽 감독 ⓒ 연합뉴스


'돌아온 매직히포' 현주엽의 감독 데뷔 첫 시즌은 끝내 참담한 실패로 기억될 전망이다. 현주엽 감독이 이끄는 창원 LG는 10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의 올시즌 마지막 홈경기마저도 72-86으로 패했다. 창원은 이날 경기를 끝으로 올시즌 홈 27경기를 12승 15패로 마무리했다.

13일 안양 KGC인삼공사와 원정경기만을 남겨놓은 가운데 창원은 17승 36패(승률 .321)로 9위에 머물며 6강 플레이오프에서 일찌감치 탈락한 상황이다. 같은날 고양 오리온이 4연승 행진을 내달리며 창원을 끌어내리고 8위로 올라섰다. 설사 창원이 최종전에서 안양을 이기고 고양이 서울 삼성에게 패하여 두 팀이 동률이 되더라도 상대 전적(3승 3패)은 같지만 득실마진에서 고양이 3점 앞서기 때문에 순위를 뒤집을수 없다.

창원의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은 2004-05시즌이었다. 당시 4대 박종천 감독이 이끌던 창원은 17승 37패(.315)로 9위를 기록한 바 있다. 박감독은 불과 1년만에 자진사임 형식으로 물러나야했다. 올시즌 창원이 최종전마저 패한다면 13년만에 불명예스러운 타이 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선수구성의 차이나 기대치를 놓고보자면 사실상 올해가 더 최악의 시즌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슈퍼스타 출신인 현주엽 감독의 명성이나 현역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다수 포진한 창원의 '이름값'에 어울리는 성적과는 거리가 멀다. 창원은 현주엽 감독이 현역으로 뛰던 시절부터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으로 꼽혔다. 비록 챔피언결정전 우승과는 아직 인연이 없지만 올해 포함 총 20시즌간 12차례나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것만 7회나 된다.

창원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현주엽 감독을 창원 LG의 7대 사령탑으로 영입하며 화제를 모았다. 현 감독은 90년대 농구대잔치 세대의 주역 중 한 명으로 프로무대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농구의 슈퍼스타 출신이다. 창원은 현감독이 현역 시절 말년을 함께했던 친정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팬들을 정말로 놀라게 한 것은 현주엽 감독의 명성이 아니라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인물'을 감독으로 선임했다는 파격 때문이었다. 현 감독은 은퇴 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가 2014년부터 MBC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농구계에 복귀했지만 지도자 경험은 전무했다.

코치 경험도 없이 감독직에 오른 것은 2005년 허재 전 전주 KCC 감독(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에 이어 두 번째였다. 하지만 허재 감독의 경우 현역 시절 말년에 플레잉코치로 활동했던 경험도 있었고 은퇴 이후 지도자 연수를 거쳐 일년만에 전주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현장에 빠르게 적응할수 있었다. 반면 현감독은 은퇴 이후 지도자 수업을 받지않았고 아에 농구계를 떠나있던 기간도 길었다. 최근까지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고 해도 현장 경험이 중요한 지도자의 역할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현주엽 감독도 김영만 전 원주 DB 감독을 비롯하여 강혁, 박재현 등 자신보다 지도자 경험이 더 풍부한 선배급 코치들을 영입하며 나름 자신의 경험부족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현실과 이상의 벽은 높았다.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던 시절에는 재치있는 예능감 못지않게 농구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력과 전술적 안목으로 호평받았지만 정작 '감독님'이 된 이후에는 우려한대로 용병술과 경기운영 면에서 '초짜 감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몰락했다는 평가다.

몇 년째 창원의 발목을 잡고있는 외국인 선수 선발이 올해도 실패한게 가장 치망타였다. NBA 출신 조쉬 파월에서 제임스 켈리까지 나른 개인능력과 이름값을 갖춘 선수들을 잇달아 데려왔지만 이들은 모두 성실함과 팀플레이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국내 선수들과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현주엽 감독은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에 대하여 여러 차례 공공연하게 불만을 드러냈지만, 정작 이들을 확실하게 통제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이들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한 것도 아니었다. 유독 외국인 선수들에게 끌려다닌다는 평가를 받았던 전임 김진 감독과 비교해도 현주엽 감독의 외국인 선수를 보는 안목이나 장악력은 크게 나을게 없었다.

빈약한 수비 전술과 식스맨 활용법 역시 도마에 올랐다. 창원은 올시즌 중요한 고비마다 수비가 무너지며 자멸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장신 가드인 정창영에게 빅맨 수비까지 맡기거나 의도를 알수 없는 스몰라인업으로 미스매치를 초래하기 일쑤였다. 마땅한 외곽 해결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클러치슈터인 조성민을 시즌 내내 거의 제대로 활용하지못했다는 것도 지적해야할 부분이다.선수들이 돌아가면서 크고작은 부상에 시달린 탓도 있지만 이를 감안해도 시즌 종반까지 '도대체 현주엽 감독이 추구하는 농구의 색깔이 무엇인지' 알수 없다는 팬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KBL 역사상 초보 감독들은 대부분 물려받은 기존 전력의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첫 시즌 성적을 거뒀다. 허재 감독은 첫 해였던 2004-05시즌 전주 KCC를 4강으로 이끌었고, 김영만 감독은 2014-15시즌 원주를 정규리그 2위로 올려놓았다. 이상범(현 원주) 당시 안양 KGC 감독은 2008-09시즌 비록 6강진출에는 실패했지만 29승 25패로 5할이 넘는 승률을 거뒀다. 예외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전창진 감독은 2002-03시즌 원주 TG(현 DB)를 부임 첫해부터 우승으로 이끄는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현주엽 감독 못지않게 첫 시즌을 힘들게 보낸 감독들도 있다. 2014-2015시즌 취임한 서울 삼성 이상민 감독은 11승 43패(.204)으로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문경은 서울 SK 감독도 2011-12시즌 19승 35패로 9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들은 부임 당시 암흑기를 보내며 전력이 약한 팀을 물려받아 리빌딩을 진행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면 현주엽 감독이 이끄는 올시즌의 창원은 리빌딩팀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가대표 주전 센터 김종규에, 어시스트 1위 김시래는 한창 전성기에 돌입한 나이고, 노쇠했지만 여전히 한방이 있는 슈터 조성민까지 보유했다. 누가봐도 당장 성적을 내야하는 팀이었다.

상대적으로 벤치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선두 원주 DB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같은 선수라도 감독이 어떻게 활용하냐 나름이고, 창원에도 박인태·최승욱·양우섭 등 확실한 역할만 주어지면 자기 몫은 해낼수 있는 선수들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창원은 개막 초반 2연승을 달리며 반짝한 것을 제외하며 시즌 내내 지리멸렬한 모습을 거듭하며 속절없이 추락했다.

현주엽 감독은 6강행이 좌절된 이후 "나도 선수들도 이번 시즌을 통하여 많이 배웠다."고 감독데뷔 첫 해를 평가했다. 하지만 '프로'무대는 배우러오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배운 능력을 발휘하여 성과를 내야하는 곳이다. 심지어 선수도 아니고 매년 한국에서 단 10명에게밖에 허용되지않은 '프로농구팀 감독'의 자리라면 더 말할나위도 없다.

결과적으로 창원은 '초짜 감독의 수업료'를 위하여 창단 20주년을 맞이하는 시즌을 최악의 성적으로 마감하는 비싼 댓가를 치른 셈이 됐다. 현주엽 감독이 만일 내년에도 여전히 창원의 지휘봉을 잡고있다면 이번 시즌의 경험을 교훈삼아 더 나은 감독으로 돌아올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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