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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이던 시절, 야당에 새로운 힘과 참신한 이미지를 불어넣기 위해 인재 영입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거리의 변호사 박주민, 국정원 출신의 김병기, 사업가 김병관 등이었다. 영입인재들은 민주당에 신선한 이미지를 보탰고, 도시 지역에서 당선되면서 박근혜 정부에 타격을 주었다.

그 당시 민주당에 들어온 정치인 중 하나가 표창원이다. 그는 경찰 출신으로,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회 활동을 했던 것도 아니고, 부천에서 형사 업무를 맡은 후에 경찰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그럼에도 정치에 발을 들여놓아 지금은 용인시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경찰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던 그가 정치인이 되기까지 겪었던 자신의 역정을 책으로 펴냈다.

 표창원의 정면돌파
 표창원의 정면돌파
ⓒ 표창원,신사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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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의 정면돌파>는 표창원 의원의 다른 책인 <왜 나는 범죄를 공부하는가>의 후속작 격인 자서전이다. 표창원 의원은 이전에 자신의 자서전인 <왜 나는 범죄를 공부하는가>에서 '인간 표창원'과 '경찰 표창원'에 대해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어릴 때부터 정의에 대한 생각이 강했던 자신이 어떻게 경찰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경찰 생활을 하면서 정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다소 거치면서도 신념이 강한 모습이 잘 드러나는 책이었다.

한편 <표창원의 정면돌파>는 '정치인 표창원'의 길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정의를 좋아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는 표창원이라는 사람은 그대로지만, 직업 정치인의 길을 걸은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내용이 <왜 나는 범죄를 공부하는가>보다는 약간 더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책을 열면 독자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선거가 있던 12년으로 들어간다. 당시만 해도 경찰 표창원은 정치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공무원의 신분이었고, 경찰로서의 직분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경찰 표창원이 정치적인 사건에 얽혀 들어가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국정원 댓글' 사건이었다. 경찰대학 행정학과 소속이던 표창원 교수는 2012년 12월,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이 제기된 현장인 오피스텔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는 수사과장의 사진을 목격했다. 그는 '경찰상 즉시강제'에 기반한 현장 진입과 증거인멸 방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SNS에 기재했다.

국가적 대사인 대통령 선거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국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해하는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후 경찰청과 경찰대학에는 표창원 교수를 징계하라는 의견이 빗발치고 심지어는 파면하라는 요청서도 게시물로 올라왔다.

결국 표창원 교수는 2012년 12월 16일 경찰대학 교수직을 사퇴한다. 그리고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고,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서 토론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가 바랐던 엄정한 수사와 국정 개혁은 아쉽게도 당시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강하게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했던 이유는, 어서 이 유치하고 바보 같은 잘못된 대응을 멈추고 진심으로 대응하고 소통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한 권력과 정당이라 해도 결국 국민을 이길 수는 없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시민일 뿐이었다. 혹시라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내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제2, 제3의 비판적 시민의 목소리가 더 강하게 터져나올 것이다." -100P


표창원 의원 자신은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경찰대학 졸업 후 전경대에서 근무하기도 했었고, 형사와 외사 업무 등을 수행하며 질서 안전을 위해 노력해온 그다. 그는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이념론과 색깔론이 싫었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로서 화가 나서 정치적 공격을 받을 위험을 무릅썼다. 하지만 이후 야인이 된 표창원 의원은 종북주의자로 몰리는 고난을 겪는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발생하고 3년 후인 2015년 12월, 표창원 의원은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한다. 그는 정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안전'을 확보하고,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함'을 갖춘 참신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경찰 표창원이 정치인 표창원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정치인 표창원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계기가 있었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의 사무실에 인질극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앵커가 문 대표의 책임을 묻자 표창원 의원은 날카롭게 반박했고, 이는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앵커_ 야당을 비판하는 분들을 대표해 질문하겠습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무실 인질극에 대해 문 대표는 제1야당의 대표로서 이 사실을 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문 대표의 잘못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표창원_ 제가 역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앵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앵커_ 제가 답하기는 곤란합니다. 하지만 저 분의 이상한 행동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며 문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표창원_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6년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정신이상자에게 테러를 당한 것도 박 대통령의 잘못입니까
?

앵커_ 네? 그건…. (179~180P)



하지만 당시 인재영입으로 들어왔던 정치인 표창원은 신참인데다가 인맥도 없고 정치 기반도 없어서 갈 곳이 없었다. 살고 있던 곳이자 경찰대학 입학 후 청춘을 바친 용인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이미 활동중이던 비례대표 의원 2명과 예비후보 1인이 있는 상황이었다. 놀랍게도, 이 세 명의 정치인은 다른 지역으로 활동을 옮기고 표창원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표창원 후보가 용인에 출마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지지자들이 자신이 아는 용인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투표를 독려했다. 표창원 본인이 직접 사진과 글을 조합해서 선거포스터를 제작했지만 포스터 상태가 형편없다고 여긴 지지자들이 새로 포스터를 만들어주는 일도 있었다. 결국 표창원 의원은 51.4%의 득표율로 넉넉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렇게 의원이 된 표창원 의원은 안전행정위원회에 배속되었다. 그는 시위 현장에 나가서 경찰과 시위대 간에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했고, 전현직 검사의 수사에 검찰이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전관예우를 방지하는 변호사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하이라이트는 일명 '표창원 리스트'였다.

표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회의원 300명을 탄핵 찬성, 주저 혹은 눈치, 탄핵 반대로 구분해 공개했다. 그는 이로 인해 많은 비판과 공격을 당했지만 탄핵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점점 늘었고 마침내 탄핵이 가결된다. 이후 그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당선에 손을 보탰고 새로운 정부를 여는 사람이 되었다.

국회의원 표창원은 아직도 정치인 티가 덜 난다. 좋게 말하면 아직도 정치인으로서 때가 덜 묻었고, 나쁘게 말하면 다소 프로답지 못할 때가 있다. 경찰 출신이라는 정체성도 강해 보인다. 장제원 의원과 설전이 있었고, 당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열정과 정의에 대한 신념이 있어 보인다. 아직도 적폐를 보면 분노하는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정치권 인사에 대한 냉담한 여론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하는 말을 좋아하고 그를 지지한다. 이 책은 정의에 관심이 많은 초선의원과 그를 좋아하는 지지자들의 선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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