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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할 때 입는 작업복입니다. 저 3개 배지를 달고 일하고 있지요. 6,000명 정규직 시켰듯이, 3,500명 정규직 시켜줄 것이듯이, 촉탁직도 정규직 시켜 주세요.
▲ 촉탁직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 해주세요! 제가 일할 때 입는 작업복입니다. 저 3개 배지를 달고 일하고 있지요. 6,000명 정규직 시켰듯이, 3,500명 정규직 시켜줄 것이듯이, 촉탁직도 정규직 시켜 주세요.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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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돼 보는 게 소원이에요."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촉탁직(계약직) 노동자와 이야기 나누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더는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직접고용 촉탁 비정규직 노동자는 곧 근무한 지 1년 6개월이 되어 계약해지 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안쓰럽기도 하였고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엔 비정규직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제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한 게 2000년 7월초. 3년 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서 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서를 올립니다. 그 때 우리도 알게된 게 현대차에서 100여개 하청업체 1만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법파견' 형태로 간접고용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표소송으로 간 판결이 일부 승소하면서 대대적인 불법파견 소송이 진행됐습니다. 2년 후 대법원 최종판결로 현대차의 불법파견 문제는 노동자의 승소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 후 진행된 현대차 정규직 채용으로 2017년 말까지 6000명의 사내하도급 비정규직이 노사합의로 정규직 채용되었으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사내하도급 노동자 3500명이 추가로 정규직으로 채용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불가 항목이라 알려드릴 수 없고요. (3500명이) 2021년까지 채용규모의 상한선이라 보시면 될 겁니다."

노조간부에게 공장별 채용규모를 문의하니 그렇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정규직 전환 규모는 모두 9500명으로, 2003년경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노동부가 판정한 불법파견 인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정규직 돼보는 게 소원이라는 촉탁직 노동자들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 파견이고, 파견 노동자가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인정한다고 최종판결을 내린 가운데, 2012년 2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와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 파견이고, 파견 노동자가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인정한다고 최종판결을 내린 가운데, 2012년 2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와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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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공장 안에는 1차업체도 있고 2차업체도 있습니다. 불법파견 판결로 인한 정규직 채용은 1차업체에 국한됩니다. 2차업체에 다니는 비정규직 조합원에게 물으니 2차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700여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중 노조에 가입한 인원은 100명 조금 넘는 수준인데 대부분 불법파견 소송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닐 때는 직영촉탁직 뿐이었는데 지금은 촉탁직도 여러 부류가 생겼더라고요."

박아무개(29)씨는 현대차 촉탁직으로 23개월간 15차례나 쪼개기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23개월 출근하다가 정규직 전환 시점인 2년을 25일 남짓 남겨두고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너무 억울해 시작한 복직 투쟁이 햇수로 4년째 되어 버렸습니다.

지난 2015년 해고되고 시작된 해고거부운동. 갓 스물넷에 시작했는데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현재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지회 조합원인 박씨는 매주 월,수,금 오후 3시경부터 출근하고 퇴근하는 노동자를 향해 선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박씨의 계약해지에 대해 중노위는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지만,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결하며 판단이 엇갈린 상황이다-편집자 주).

박씨로부터 촉탁직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는 직영촉탁직이 대략 1500여 명 수준, 업체파견 촉탁직이 대략 1500여 명 수준으로 약 3000여 명의 촉탁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1개월짜리 3개월짜리 촉탁직도 많다고 하네요. 한시 하청 촉탁직이란 게 있는데 6개월 일 시키고 출근을 중단 시킨다고 들었습니다. 또, 직영촉탁 하다가 업체촉탁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일할 땐 (정규직 전환 시점인) 2년 전에 계약해지 되었는데 요즘은 회사에서 1년 6개월 일 시키고 계약해지 들어가고, 그렇게 나간 경우는 다시 쓰지 않는다네요."

제가 일하는 곳에서 만난 촉탁직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계약한 지 1년 6개월이 되고,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그렇게 일하다 나가고 나면 다시는 들어오기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벌써부터 어디가서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지켜보는 저도 안쓰러운 나머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2차업체 노동자와 촉탁직은 정규직 채용에서 제외된다는 직영노조간부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촉탁직도 2차업체 노동자도 모두들 성실하게 일 잘하는데 왜 직접고용 또는 정규직 채용 하지 않고 간접고용으로 비정규직으로 일 시키다 계약해지 할까요? 어차피 그자리엔 누군가 와서 일을 해야하는데 말입니다.

현대차 정규직 된 지 9개월

2014년 9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승소 판결이 난 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창근 부장판사)는 "원고들이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2014년 9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승소 판결이 난 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창근 부장판사)는 "원고들이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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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제 이야기를 곁들일까 합니다. 저도 9개월 전까지 "나도 현대차 정규직 되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현대자동차라는 대기업에서 정규직이 된 지 9개월째 넘어가고 있습니다.

회사가 저를 정규직 시켜주고 싶어 직영으로 채용했을까요? 아닙니다. 2000년 7월초에 사내업체에 입사해 10여년 일다니다 2010년 3월경 사직서 내고 나간 저라고, 절대 채용 못 시켜준다고 했었습니다. 그렇게 7년을 끌어오다 끝내 정규직 시켜준 이유가 뭘까요? 바로 불법파견 소송 때문이었지요.

'(근무) 2년 이상 되었으면 고용의제에 의해 사직서를 냈더라도 무효이고 정규직이 된 것으로 간주된다'

대법원에서 판결난 이 간결한 문장 덕분에 저는 정규직으로 채용 될 수 있었습니다. 2016년 11월 중순이 되자 현대자동차 노조 간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입사하라고요. 저는 고민했습니다. 7년 넘게 해고생활하며 가정형편도 어려웠습니다.

고민과 갈등이 된 것은 7년간 체불임금으로 적용받을 금액이 10억이 넘을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에 정규직으로 채용되려면 체불임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지난 2016년 3월 21일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합의서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6~7년을 정규직 되어 다니느냐, 아니면 대법판결 받고 체불임금을 받느냐 고민과 번민에 빠졌었습니다.

"지금 당장 빚이 1억 가까운데 그때까지 어떻게 생계유지 하나. 체불임금 포기하고 오라할때 가라. 나도 힘들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정형편상 대법판결까지 언제될지 모르는지라 체불임금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권고사직이기 때문에 최종 승소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당장에 힘들어하는 가족 때문에 체불임금을 포기하고 정규직 채용에 응하기로 했던 것이었습니다.

우선 하청업체에 들어가 6개월 일했습니다. 재입사 하자 체불임금 포기각서부터 받았습니다. 그렇게 6개월 후 현대차에서 채용공고를 냈고 저는 채용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이것저것 시험도 치르고 면접도 보고 체력검사도 했습니다.

최종합격하고 6주간 채용교육도 열심히 받았습니다. 2개월간 수습기간을 거치고 3개월째 노동조합에서 조합비를 걷어 갈 때까지 숨죽이고 지냈습니다. 또 잘못되어 '짤릴까봐' 잔뜩 겁먹고 있었습니다. 24년 전 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현대차라는 대기업에 정규직 된 지 9개월 째. 한편으로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억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일 정규직. 왜 진작에 안 받아 줘서 날 이렇게 힘들게 살게 만들었노'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24년 전 일이 계속 마음을 누릅니다

24년 전인 1995년경 현대그룹 목재회사가 휘청거렸습니다. 1988년 1월경 입사한 저는 1990년대초가 지나면서 노조활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목재사업이 갑자기 내리막길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그룹사로 전출 보내졌습니다. 조선소로 수리조선소로 자동차로 보내졌습니다. 저는 현대차로 보내졌습니다.

강산이 두번이나 변한 세월이어서 정확하게는 떠오르지 않지만, 간단하게 면접을 보고 3주간인가 교육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원증도 발급받고 다음 날이면 첫 출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다음날 현대차 현장에 출근하여 대기중이었는데 갑자기 현대차에서 저의 노조활동 경력을 문제삼아 "못 받겠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른 몇 사람도 저 때문에 함께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황당하던지요.

저는 다시 목재회사로 쫓겨난 후 3년 정도 더 일하다 미래가 없는 것 같아 그만 두고 다른 일자릴 찾았습니다. 회사는 저를 울산-부산-용인으로 발령을 냈습니다.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1998년경 그만두고 서울로 가서 2년 생활하다 다시 울산으로 내려와 직업을 구하던 중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업체 입사하여 일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내업체 들어가 일하면서 인간차별을 많이 느꼈습니다. 정규직이 청소도 시키고 차 심부름도 시켰습니다. 받아가는 월급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같이 일하니 회비도 같이 내고 회식도 같이 해야한다고 강요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식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였습니다.

3년이 지나자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졌고 5공장 한 노동자가 "우리도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고 비정규직 철폐하자!"고 외치며 조직화를 제안하기에 따라 나섰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불법파견 문제를 거론하며 투쟁에 나섰습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되거나 다치고 벌금도 수백억 맞았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 조직을 정비하면서 불법파견 투쟁에 나섰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공장 25일 점거파업에도 300일 가까이 철탑에 올라 농성을 해도 꿈쩍 않던 현대차가 2012년 3월경 대법원에서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했다'고 최종판결을 내리자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정규직 채용은 2018년 초까지 6000명을 채웠습니다. 사회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저도 포함됐습니다.

처음엔 조마조마 하면서 정규직 채용된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조만간 10개월로 접어드는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 24년 된 지난 일이 자꾸만 마음을 누릅니다. 24년 전 현대목재서 현대자동차로 전출 간 동료들은 24년의 근속을 받고 24년의 예우를 받고 있습니다. 24년 전 사원증까지 발급 받았지만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저의 근속은 업체에서 일한 10여년을 반등분한 6년을 쳐주었습니다.

24년의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급변했습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최종판결이 난 지도 6년이 지나고 있지만 회사는 여전히 1차, 2차 하청업체를 두고 있으며 촉탁직 노동자도 상당히 많이 존재합니다. 노조는 상시 지속업무인 정규직 공정에서 일하는 촉탁직이 2000명에 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회사는 2019년까지 지금의 사내하도급과 촉탁직 수를 절반으로 낮출 것이라 노사협상에서 거론했다고 합니다.

법 너무 따지지 말고 일 잘하는 촉탁직과 2차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도 정규직으로 채용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찌 한지붕 아래서 같이 일하고 같은 식당에서 같은 밥 먹는데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하청과 촉탁직으로 차별대우를 일삼으십니까. 글로벌 시대 노동자를 대하는 회사 입장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그:#비정규직, #촉탁직,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하청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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