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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 어른들끼리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일들을 겪습니다. 오직 육아하는 이때만, 부딪칠 수 있습니다. 애 키우는 동안 나를 흘려보내는 것 같아 좌절감에 글을 씁니다. '너희만 크냐? 엄마도 같이 크자'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육아일상 속 메시지를 담아 글을 씁니다. [편집자말]
"우리 연재~ 어서와! 아이고, 벌써 이렇게 컸니. 너무 이쁘다. 또릿또릿한 눈빛 좀 봐!"


큰 딸, 작은 딸 동시 입장이건만, 스포트라이트는 목 가누고 눈맞춤 시작한 둘째 차지다.

"안녕~하세~요!"

가락을 넣어가며, 폴더폰마냥 허리를 180도 굽혀,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인사한다. 외할머니에게 인사 특훈을 받은 보람이 있다. 씩씩한 4살이 혀짧은 소리로 인사를 외치니, 어른들은 귀엽다며 다시 관심을 준다.

"연우야, 반가워~ 어서와. 인사를 어쩜 그렇게 잘 해."

하지만 이내 관심 순위는 역전이 되고 만다. 신발을 벗자마자 혼자 둥실둥실 노는 큰 딸. 원래 그 집에 살던 아가처럼 자연스럽다. 배경처럼 흡수되는 큰 딸과 달리 작은 딸은 보여줄 재롱을 남겨뒀다.

아기띠에서 풀어 바닥에 눕힌다. 등이 땅에 닿는 것을 용납 못 하는 작은 딸. 감히 나를 눕히다니! "잉!" 하며 휘리릭, 순식간에 뒤집는다.

"어머, 뒤집네! 잘 뒤집네~ 뒤집기 선수다."

뒤집기 묘기를 보여주면서 또 한 번 칭찬 세례를 받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큰 꾀순이.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는가 싶더니 동생 옆으로 와서 슬쩍 눕는다. '얍!' 하며 대수롭지 않게 뒤집는다(아니, 엎드린다). 너무 티나게 샘을 내니, 다들 귀엽다며 큰 애 머리를 한 번 씩 쓰다듬는다.

그동안 둘째를 몰래 사랑했다. 사랑을 독차지 해 온 큰 딸이, 행여 상처받을까 봐 그랬다. 그러다 둘째가 6개월 즈음 되니, 조심스레 애정을 밖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첫째의 촉은 빠르고 예민했다. 자신만을 향하던 어른들의 시선이, 동생에게 향하는 것을 눈치채 버렸다.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한 큰 딸의 분투는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어린 동생과 좁힐 수 없는 간극에 좌절했나보다. 4살 수준으로 최대한 꾀를 낸다. 동생만큼 관심 받기위해, 동생'처럼'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큰 딸은 퇴행을 선택했다.

동생 따라 뒤집는 첫째
 동생 따라 뒤집는 첫째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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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엄마가 먹여주세요!

뭐든지 입에 넣고 보는 동생을 흉내내면서 퇴행을 시작했다. 요즘 두 녀석이 동시에 퍼즐 조각을 입에 넣는다. 치발기도 같이 쓰고 있다. 언니 침을 먹지 않도록, 자주 치발기를 씻어야 할 정도다. 물기를 말려 소독기 돌릴 틈도 없이!

혼자 잘 놀 수 있는 30개월이건만, 뭐든지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한다. 혼자 둥실둥실 너무 잘 놀아서, '우리 둥실이'로 통했던 시절이 그립다. 퇴행을 시작하고부터 그림을 그릴 때나, 퍼즐을 할 때나, 심지어 침대에서 이불 휘감고 놀 때도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한다. 물도 엄마가 준 것만 마신다. 아빠가 물을 떠줘도, 엄마 손을 거치지 않으면 거부한다. 밥도 엄마가 떠 먹여줘야 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떼쓰며 울어버렸다. 마치 어린 아기가 된 것 같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안쓰러울 뿐더러, 양치질 한 번 시킬 때마다, 밥 한 술 떠먹일 때마다 전쟁이니, 부모가 살기 위해서였다.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막연히, '큰 아이를 더 사랑해주세요'라는 메아리 뿐이다.

사랑을 줄 만큼 주고 있는데, 여기서 더 주었다가는 내가 몸살 나게 생겼다. 좋다. 이제부터 널 진짜 아기처럼 대해주겠다. 엄마, 아빠가 알아서 먼저 퇴행 시켜줄게. '선제퇴행, 우쭈쭈' 작전 개시!

부모 사랑의 고픈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부모 사랑의 고픈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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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어머어머어머! 우리 아기! 감기 걸리면 어떡해~ 어서 옷 입자."
"콜록, 콜록" (감기 걸린 흉내내는 큰 딸)

전쟁 같은 옷 입히기도 한 방에.

"우리 아기, 아~ 옳지 옳지. 잘 먹네! 너무 잘 하네!"

숟가락 내동댕이치는 일도 이젠 끝.

"까꿍~"
"하하하! 엄마 없다!"

18개월 때 하던 까꿍 놀이. 유치해서 외면할 줄 알았는데 깔깔 웃는다.

"아이고, 연우도 아직 아기인데... 동생 챙겨주는 거야? 이렇게 이쁠 수가."

동생이 심심해서 울면, 먼저 달려가 달래주기까지!

요란한 호들갑과 고조된 목소리, 얇은 갈색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 그리고 무한한 애정을 담은 눈빛과 '우리 아기'를 강조하는 한 마디, 한 마디. '선제퇴행, 우쭈쭈' 작전으로 남편과 내가 먼저 아이를 퇴행시켜 줬다. 사랑이 고픈 아이에게 따뜻한 마음을 수북히 담아 건냈다.

큰 딸은 아기 대접을 기꺼이 누리며 행복해했다. 허전했던 마음을 채우고 나니, 요즘에 동생을 돌봐줄 여유도 부린다. 장난감 자동차를 빨고 있으면, '먹지마~ 더러워~' 하더니, 치발기를 가져다준다. 사랑을 받아본 자만이,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영화처럼 큰 딸의 퇴행이 '짠!' 하고 멈추진 않았다. 여전히 울고, 떼쓰고, 엄마 팔베개와 엄마가 직접 덮어주는 이불이 아니면 잠을 안 잔다. 엉덩이 두드리며 재워달라고도 하고, 자장가도 필요하단다.

큰 변화를 바라지 않았다. 동생을 미워하지 않기를 바랐고, 딸의 편안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다행히 자주 웃는다. '선제퇴행, 우쭈쭈' 작전으로 작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부모가 되는 길

육아하면서 아찔한 순간들을 많이 맞딱뜨렸다. 부모 눈길이 고파서 떼쓰고 우는 아이에게, '그만 좀 해!' 인상쓰며 소리쳤다. 그런 나를 보고 움찔하던 그 표정. 설거지 하다가, 세수 하다가, 밥 먹다가 불쑥 떠오른다. 그럴 때면 몸서리 치며 눈을 질끈 감게 된다.

하지만 후회만 하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컸다. 어서 머리를 써 해결 방법을 찾고, 몸을 움직여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두 아이를 모두 만족시키지 못 했던 과거를 곱씹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

모든 동식물이 부모가 되지만, 오직 인간만이 본능을 딛고, 합리적 고민과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최선을 모르지만, 차선을 택한다.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맞는다. 어떻게 하면, 무엇을 하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실천한다.

'매우' 어설프지만 진심과 정성을 다해 아이를 들여다봤다. 책을 읽고, 정보를 뒤졌다. 덕분에 프로 엄마가 될 수는 없지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었음에 만족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등원한 우리 '아기'가 하원하면, 잘 했다고 안아주고, 뽀뽀하고, 노래하고, 춤도 춰야겠다. 합리적 부모라는 거창한 구호 앞에 찾은 '선제퇴행, 우쭈쭈' 작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태그:#퇴행, #동생 샘내는 아이, #주간애미, #육아일기,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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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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